<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가출했을 때</b></div> <div><br></div> <div>나조차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div> <div>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여름 날,</div> <div>남동생이랑 싸웠는데, 부모님이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div> <div>"네가 형인데 참았어야지"라고 나만 혼내셨다.</div> <div>무릎 꿇고 앉아 있는데, 부모님 뒤에 숨어서 메롱하는 남동생이 보였다.</div> <div><br></div> <div>그날 밤 나는 너무 분해서 한밤중에 몰래 가출했다.</div> <div>갈 곳도 없으면서 한밤중의 주택가를 어슬렁 거리다보니</div> <div>사람이 없어서 겁도 나서, 우리 집 창고에 숨었다.</div> <div>그리고 창고에 있던 너덜너덜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분해서 울었다.</div> <div>"우리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닌가 봐. 나만 미워해"</div> <div>숨죽이며 울다가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가 떠올랐다.</div> <div>약간 북쪽 방향에,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편도 2시간 정도 걸리는 산 속에 사셨다.</div> <div>놀러가면 그렇게 예뻐해주셨는데.</div> <div>"할아버지, 할머니는 날 미워하지 않으실 거야"</div> <div>부모님이 남이라면, 당연히 할아버지 할머니도 타인이겠지만</div> <div>어린 나는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진 않았다.</div> <div><br></div> <div>그날 밤엔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 강과 산에서 놀던 작년 여름 추억을 떠올리며 잠들었다.</div> <div><br></div> <div>문득 눈을 뜨고, 먼지투성이 이불을 걷어찼다.</div> <div>?? 처음 보는 곳에 와 있었다.</div> <div>날은 밝은 것 같았다. 하늘에 햇살이 비치며 틈사이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div> <div>난 창고에서 자다가 부모님한테 들키는 바람에</div> <div>그대로 어딘가에 내다버렸다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div> <div>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픈 마음에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갑자기 창고 문이 삐걱하더니 열렸다.</div> <div>반사적으로 열리는 문을 보니, 시골의 할아버지가 거기 계셨다.</div> <div>"이잉?"</div> <div>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시며 다가오시는 할아버지.</div> <div>"할아버지!!"</div> <div>나는 할아버지에게 매달리며 또 울었다. 그 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div> <div><br></div> <div>정신차려보니 할아버지 댁의 툇마루에 이어진 방에 누워있었다.</div> <div>툇마루에서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거려서 멍하게 있었는데</div> <div>갑자기 할아버지가 화내시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부모님이 와 있었고</div> <div>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손을 싹싹 빌면서 사과하고 있었다.</div> <div>날 발견한 부모님이 "미안하다!"하며 울며 날 안길래, 나도 모르게 또 울었다.</div> <div><br></div> <div>어른들은 억울하게 혼난 내가 혼자서 시골까지 찾아와,</div> <div>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매달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div> <div>할아버지 할머니는,</div> <div>"우리가 자는 바람에 너 온 것도 모르고 미안하다.</div> <div> 그런 곳에서 자고 있을 줄이야"</div> <div>라며 나한테 사과하셨다.</div> <div><br></div> <div>그후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까지 물어보셨지만</div> <div>나도 모르는 일이라 "몰라"라고 했더니 그 뒤로는 딱히 묻지 않았다.</div> <div>한밤중이라 지하철도 끊겼고, 돈도 없었을 텐데</div> <div>하룻밤새 공간이동을 했던 셈.</div> <div>지금도 왜 그런지 알 수 없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