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악수</b></div> <div><br></div> <div>아주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한 이야기인데, 한 번 써본다.</div> <div>친구들은 웃어 넘기더라마는.</div> <div><br></div> <div>벌써 8년 전 일이다.</div> <div>당시에 나는 낮엔 일하고, 밤엔 야간 대학을 다니며 내 나름대로 고학생이었다.</div> <div>학교 수업까지 마치 보면 한밤중이었다.</div> <div>평소엔 다음 날 일해야 하니 바로 돌아가서 그대로 자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다.</div> <div>내일은 쉬는 날이니 여기저기 자전거 타고 쏘다녔다.</div> <div>집에 가는 길에, 엄청 시골이라서 논두렁 같은 길이었는데 이 길이 꽤나 을씨년하다.</div> <div>상상해보면 알겠지만, 나무들조차 잠잘 것 같은 새벽 두 시경에 시골 허허벌판에 나 혼자.</div> <div>심지어 주변에는 마네킹 머리 부분을 써서 만든 묘하게 리얼한 허수아비가 내 쪽을 보고 있다.</div> <div>사실 이때 쯤엔 어느 정도 익숙한 광경이긴 했지만.</div> <div><br></div> <div>집에 가는 길에 평소엔 보지도 않던 자동판매기가 내 눈에 들어온 건</div> <div>왠일로 약간 돈이 있어서였을까.</div> <div>딱히 목도 안 말랐으면서..</div> <div>시골에 사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는 회사 자동판매기가 아니라</div> <div>얇고 긴 사이즈의 음료만 파는 자판기다.</div> <div>꽤 아날로그 사이즈에다, 당첨에 걸리면 한 병 더 주는 뽑기권까지 딸려 있다.</div> <div>나갈 듯 말듯 깜빡거리는 전등이 내는 지지지직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div> <div><br></div> <div>시골에선 밤이 되면 지나가는 차도 없어서 매우 조용하다.</div> <div>그런 고요함 속에 동전 들어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div> <div>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니 뽑기 램프가 삐비빅 소리를 냈다.</div> <div>조용하던 주변에 그런 싸구려 전자음이 참 안 어울렸다.</div> <div>당첨된다해도 두 캔이나 마실 생각은 안 드는데.. 라며 쓴 웃음을 지으며 꺼내려 했지만</div> <div>꺼져가는 자판기 불빛 외엔 보이는 게 없어서, 꺼내는 곳은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div> <div>주스가 어딨지?하며 손으로 더듬더듬 찾아보았는데,</div> <div>잡혔다. 손을.</div> <div><br></div> <div>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데, 꺼내는 곳 안에서 누가 내 손을 잡았어. 악수하듯이</div> <div>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분명 사람 손이었다.</div> <div>게다가 점점 힘이 들어가는 거야. 아플 정도로.</div> <div>엄청 세게 잡혀 있었는데 손은 쑥 빠졌고,</div> <div>거의 혼이 나간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div> <div>정신이 나가서 제대로 기억나는 건 아닌데</div> <div>그 손 감촉과 등 뒤로 들려온 삐삐삐비빅하는 소리는 선명히 기억난다.</div> <div>그러고보니 보통 뽑기권 버튼은 5초 정도만 울리고 멈추는데</div> <div>그때는 왠지 삐삐삐삐빅하고 계속 울렸었다..</div> <div><br></div> <div>혼자 사는 집에 가는 것도 무서워서 친구 집에 쳐들어갔다.</div> <div>그리고 정말 그러기 잘했다.</div> <div>혼자 있었으면 아마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div> <div>왜냐하면 손이 원래대로 돌아오질 않는 거다.</div> <div>악수하는 형태 그대로 굳어 있었다.</div> <div>친구도 예삿일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동 틀 때까지 둘이서 염불을 외웠더니</div> <div>해가 뜰 무렵 갑자기 해방된 듯 손이 풀렸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나는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꺼내는 곳에 손을 넣지 않는다.</div> <div>자판기는 당연하고 우편함 같은 것도.</div> <div>또 악수 당할 것만 같잖아...</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