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무인 언덕</b></div> <div><br></div> <div>중학 시절 이야기를 써 본다.</div> <div>스압에 약간 글재주가 없으니 양해 바란다.</div> <div><br></div> <div>나는 주말에 중학 시절 사이좋던 친구 A 네 집에 자러 가기로 했다.</div> <div>A 집은 I야마라는 산 중턱에 있고, 우리 집은 산기슭에 있다.</div> <div>두 집 다 제일 가까운 편의점까지 가려면 차타고 30분이나 걸리는 곳에 있다.</div> <div>자러가기 전날, A 집이 어딘지 모르니까 산 지도를 들고</div> <div>A에게 집이 어느 쯤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div> <div>지도 상에서 보면, 우리 집과 꽤나 가까웠다.</div> <div>하지만 A 집까지 가려면 산 주변에 있는 도로를 통해서 가려면 멀리 삥 둘러가야 한다.</div> <div>그 거리가 10km였다.</div> <div>한여름 대낮에 10km나 가야 하다니...</div> <div>벌써부터 진이 빠진 나는 지도 안에 그려진 어떤 길을 하나 발견했다.</div> <div>그 길은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어져 있었는데</div> <div>산을 일직선으로 올라가서, A 집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div> <div>길이는 한 5km 정도 되어 보였다.</div> <div>바보도 아니고, 가까운 길이 있다면 가야지.</div> <div>나 : 이 길이 가깝잖아</div> <div>A : 아, 근데 그 길은.. 포장도 안 되어 있고 급경사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안 가는 게 좋을 걸</div> <div>나 : 지나갈 순 있지?</div> <div>A : 응.. 그렇긴 한데.. 뭐 어때, 그 길로 오던가</div> <div>라고 해서 나는 그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div> <div>그날 밤, 가족들에게 "이런 길 처음 봐"라며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div> <div>부모님은 그런 길이 다 있구나 라고 했나 뭐 그러셨는데</div> <div>할아버지가 혼자서 미간을 찌푸리시고 계셨다.</div> <div>이 길을 아시는 것 같았다.</div> <div>이 길에 정식 이름은 없지만, 주변에서 무인 언덕이라 불린다 하셨다.</div> <div>이름에 뭔가 연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몰라도 상관 없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이튿 날, A 집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div> <div>집을 나서려는데 할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셨다.</div> <div>"B야, 그 길은 밤엔 절대 지나가면 안 돼. 절대로.</div> <div> 이 할비랑 약속하자꾸나"</div> <div>라며 완전 걱정하시는 게 아닌가.</div> <div>알겠다고 일단 답은 하고, 궁금해서 이유를 여쭤봤다. 그랬더니</div> <div>"그 언덕에는 옛날부터 괴물이 살거든.</div> <div> 낮엔 괜찮지만 밤이 되면 괴물이 밖으로 나와. 그러니 절대 밤엔 지나면 안 돼"</div> <div>노인들이 믿는 미신이구나하고 생각했다.</div> <div>나는 귀신 같은 걸 믿는 사람도 아니었고, 괴물이나 요괴 같은 건 다 미신이라고 생각했다.</div> <div>마음 속으로 살짝 할아버지 말을 무시하며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니 무인 언덕이 나왔다.</div> <div>정말 왜 지금까지 이렇게 가까운 길을 몰랐을까?</div> <div>약간 급경사이긴 했는데 일직선이었다. 땅은 비포장이었다.</div> <div>좌우 길 끄트머리에는 무성히 풀이 자라나 있어서 그 옆 경치가 안 보였다.</div> <div>하지만 울창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고,</div> <div>한여름 태양 빛을 반사하는 땅이 외려 상쾌하기까지 했다.</div> <div>한참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다보니 터널이 나왔다.</div> <div>높이는 2, 3m 정도 되어 보였는데, 폭은 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정도였다.</div> <div>짧은 터널이어서 7~8m 정도 길이 밖에 안 되었다.</div> <div>터널 건너 편이 바로 보였다.</div> <div>멈춰서는 일 없이 그대로 지나갔다.</div> <div>터널 안은 어두컴컴하고 약간 습해서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서 좋았다.</div> <div>그리고 별 일 없이 A 집에 도착해서 놀다가 잤다.</div> <div>다음 날에도 A 방에서 한참 게임하며 놀다가 저녁 식사까지 얻어먹었다.</div> <div>정신차려보니 저녁 8시였다.</div> <div><br></div> <div>큰일이다. 오늘 9시까지 학원에 가야 한다. 지각하면 부모님께 혼날 텐데.</div> <div>나는 서둘러 A에게 인사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div> <div>돌아가는 길에 아무리 내리막길이지만 10km나 가다간 늦을 지도 모른다.</div> <div>그래서 무인 언덕길로 지나가기로 했다.</div> <div>할아버지랑 약속한 게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div> <div>괴물도 아마 미신일 게 뻔하다.</div> <div>달빛을 받으며 밤길에 브레이크 걸지 않고 쭈욱 내려왔다.</div> <div>이대로 가면 학원 지각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div> <div>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제 낮에 지나갔던 좁은 터널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div> <div>약간 무서웠지만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가속된 상태라 금세 지나갈 게 뻔했다.</div> <div>들어간 터널 안은 칠흙같은 어둠 속.</div> <div>앞이 보이는 부분은 자전거 라이트 뿐이었다.</div> <div>빨리 터널을 벗어나고 싶어서 열심히 패달을 밟았다.</div> <div>그런데 이상했다. 터널 끝이 나오지 않았다.</div> <div>낮에는 금세 빠져나왔는데 30초나 터널 안에서 달리고 있었다.</div> <div>생각해보니 오늘 밤은 보름달이라 바깥 길에는 달빛이 반사되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div> <div>이렇게 짧은 터널인데, 푸르스름한 길이 터널 안에서 보여야 마땅한데..</div> <div>칠흙같은 어둠이 깔릴 리가 없다.</div> <div>길은 하나 뿐이라 잘못 들 리도 없다.</div> <div>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무서워</div> <div>거기까지 생각하는데 갑자기 자전거 체인이 끊어졌다.</div> <div>어쩌지 어쩌지 어저찌!</div> <div>멈춰서서 식은 땀을 흘렸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div> <div>그런데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었다.</div> <div>뭔가 둥둥 떠서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div> <div>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것이 무엇인지 보였다.</div> <div><br></div> <div>소복 차림의 여자였다.</div> <div>그런데 굉장히 컸다.</div> <div>이상하리만치 팔 다리가 길었다.</div> <div>처음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네 다리로 터널 벽에 붙어있었다.</div> <div>그리고 천천히 내쪽을 향해 다가왔다.</div> <div>스윽스윽 소리를 내면서.</div> <div>머리카락은 땅까지 닿았고, 얼굴도 무진장 컸다.</div> <div>눈과 입. 그것 뿐이었다.</div> <div>입에서 뭔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div> <div>내 머릿속에 저 입에서 나오는 건 피겠지.. 난 여기서 죽나보다.. 그런 생각만 떠올랐다.</div> <div>여자가 앞까지 다가왔다. 1미터도 채 안 남았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div> <div>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절규에 가까웠다.</div> <div>사람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div> <div>그 순간 뒤로 돌아 되돌아갔다.</div> <div>입구가 보였다. 바로 앞에. 곧 나갈 수 있어.</div> <div>뒤돌아보니 그 여자가 빠른 속도로 터널 안을 기어오고 있었다.</div> <div>따라잡힐 것 같은 순간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div> <div>터널에서 나온 후에도 뒤도 보지 않고 언덕을 뛰어 올라갔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별로 기억 나지 않는다.</div> <div>부모님 말에 따르면 A 집 앞에서 기절했었다고 한다.</div> <div>눈을 뜨니 할아버지께 혼쭐이 났다.</div> <div>나중에 할아버지께 터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게 뭔지 알고 싶었다.</div> <div>할아버지도 자세한 건 모른다고 하셨다.</div> <div>하지만 예전부터 저 터널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막은 거라고.</div> <div>괴물이 있다고 한 건, 사람이 사라졌을 때 찾아보니</div> <div>그 사람의 우산이나 짚신 같은 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div> <div>그래서 괴물 같은 것에게 먹힌 게 아닌가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div> <div>실제로 괴물이 있었지만.</div> <div>그런 일이 겹치면서 그 언덕은 "무인 언덕"이라 불리게 되었다.</div> <div><br></div> <div>무인 언덕에 있는 터널은 작년에 산사태가 나면서 막혔다.</div> <div>그 괴물은 아직 터널 안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졌을까?</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