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방에 있다</b></div> <div><br></div> <div>일주일 전부터 내 방에 있다.</div> <div>어디 쓰기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미칠 것 같다.</div> <div>길이는 170cm보다 조금 길다. 나와 비슷하려나.</div> <div>몸무게는 나보다 훨 가벼운 것 같다. 말랐다.</div> <div>머리카락은 긴 편이다. 엉망진창으로 기른 것 같은 느낌이다.</div> <div>나이는.. 23정도인가? 잘 모르겠다.</div> <div>광어 같은 얼굴에 눈이 작고, 사이가 넓다. 그리고 입술이 얇다.</div> <div>긴팔 폴로셔츠 안에 티셔츠, 청바지, 양말차림이다.</div> <div>나도 패션 센스는 꽝이지만, 내 눈에도 썩 잘 입은 것 같진 않다.</div> <div>옷 색은 잘 모르겠다.</div> <div>얼굴, 몸, 옷 모두 뭔가 파란 느낌이라 농도만 알 수 있는 정도다.</div> <div>흑백 같은 느낌이랄까.</div> <div>아마 티셔츠는 검은 색 아니면 빨간 색에, 폴로셔츠는 옅은 갈색인 것 같다.</div> <div>청바지는 파란 색일테고, 양말은 검은 색으로 추측된다.</div> <div>빛이 비치면 거의 안 보이지만, 커튼을 닫고 불을 켜면 또렷하게 보인다.</div> <div>어두컴컴해지면 아예 안 보인다.</div> <div>손전등을 비추면 그 부분만 옅어지는 느낌이다.</div> <div><br></div> <div>빛 차단 커튼이라서 내 방은 낮에도 커튼을 닫으면 꽤 어두운데</div> <div>밤에 농도가 더 선명히 보이는 것 같다.</div> <div>그리고 그것은 투명하게 살짝 비쳐보인다. 약간의 가림막이 되긴 해도 몸 너머가 보인다.</div> <div>성별은 남자다. 확인할 순 없지만 외견 상 일반적인 남성으로 보인다.</div> <div>아마도 일본인이다. 재일 한국인일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런 특징 같은 건 안 보인다.</div> <div>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봤지만 찍히지 않았다.</div> <div>아니, 거울에도 안 비치고 꺼져 있는 TV 브라운관에 반사되어 보이지도 않는다.</div> <div>캠코더로 찍어봐도 안 찍힌다.</div> <div>스승 시리즈 만화에서 봤는데, 안경을 벗고 봐도 똑같다.</div> <div>말은 못 한다.</div> <div>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div> <div>내가 항상 앉아 있는 의자와 코타츠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만 나타난다.</div> <div>가부좌를 하고 있거나, 구부정하게 서 있거나 둘 중 하나다.</div> <div>그리고 만질 수 없다.</div> <div>직접 만져보려고 한 건 아니고, 코타츠로 밀어보려고 했더니 그냥 슥 지나쳤다.</div> <div>물건을 집어 던져봐도 청소기로 밀어봐도 별로 부딪힌다는 느낌이 없었다.</div> <div>지금도 있다. 뭔가 굉장히 우울해하기 시작했다.</div> <div>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라 게임 센터에 가기로 했다.</div> <div><br></div> <div>게임 센터를 갔다 왔지만 여전히 있다. 앉아 있다.</div> <div>내일 이사를 통보하려고 한다.</div> <div>딱히 해를 입히는 건 아니지만 기분 나쁘다.</div> <div>친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은데, 지금 사는 곳 근처에 사는 친구가 없다.</div> <div>게다가 나쁜 존재면 친구한테 해악을 끼치는 거니까 좋지 않기도 하고.</div> <div>지난 주 목요일에 내가 질색팔색하는 상사를 데리고 와서</div> <div>상사한테 들러붙길 바랐지만, 효과가 없었다.</div> <div>심지어 상사한테는 안 보인다고 했다.</div> <div>그 놈이 있는 곳에 상사를 앉게 했는데, 겹쳐 보이는 게 토나올 것 같았다.</div> <div>따분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상사.</div> <div>얼굴과 몸이 그 놈이랑 계속 겹쳐 보였다.</div> <div>마치 그 놈이랑 이야기 나누는 것 같아서 더 싫었다.</div> <div>심지어 상사를 따라가지도 않았고.</div> <div>귀신이라기보다 환각이라는 게 더 맞는 것 같다.</div> <div>그런데 난 저 놈이 누군지 모른다. 대체 누구지.</div> <div><br></div> <div>그 놈이 있으면 기분은 나쁘지만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div> <div>일단 신체 건강하고, 피곤하면 잠도 잘 잔다.</div> <div>하지만 내내 저 놈 생각이 떠올라서 피곤하다.</div> <div>누구에게 상담도 할 수 없다.</div> <div>남에게 말했다가 정신 나간 놈 취급 받기도 싫다.</div> <div>나 말고는 못 보는 셈이니 환각이라고 여겨질 게 뻔하다.</div> <div>환각을 보는 건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테지.</div> <div>나이도 먹었는데 그런 취급 받는 건 질색이다.</div> <div>내일도 쉬는 날이지만 모레부터는 일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바쁘다.</div> <div>이런 비현실적인 현상에 기운을 소모할 여력이 없는데.</div> <div><br></div> <div>어찌되건 상관없지만 만약 이 놈이 귀신이라면,</div> <div>심령 현상이란 건 거의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div> <div>그걸 정신이 이상한 것과 어떻게 구분지어야 할까.</div> <div><br></div> <div>아까 게임 센터에서 삼국지 대전을 하다가 7천엔이나 썼다.</div> <div>이걸 저주라고 하긴 뭣 하다고 생각하니 난 정상인 것 같긴 한데.</div> <div>혹시 이거 해결 방법 아는 사람 없어?</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