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옥상 공포증</b></div> <div><br></div> <div>고소공포증이 아니라, 옥상 공포증이라는 게 있을까?</div> <div>내가 약 10년 이상 그런 공포증이 좀체 낫질 않는다.</div> <div>딱 고등학생 때 어떤 일을 하나 겪었는데, 그 트라우마를 가진 어른이 된 셈인데.</div> <div>이런 곳에 내 체험을 써보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써본다.</div> <div><br></div> <div>아 괜히 쓸데 없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제가 체험한 이야기를 읽으시고</div> <div>정말 무서운 곳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div> <div><br></div> <div>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div> <div>자연스럽게 부활동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던 친구들 넷이 모이게 되었는데</div> <div>매일 매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렸습니다.</div> <div>다들 돈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는 놈들이라 가진 거라곤 젊음 뿐이었고</div> <div>그렇다고 헌팅이나 음주, 흡연 이런 걸 할 체질은 아니었습니다.</div> <div>뭐,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있는 애도 있었는데,</div> <div>그렇다고 고백할 용기도 없어서 그냥 뜬소문이나 망상을 하곤 했습니다.</div> <div>"우리들 끈기라곤 요만큼도 없는 듯"</div> <div>다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div> <div>어느 날 타나카(가명)가 담력 시험하지 않겠냐고 갑자기 말했습니다.</div> <div>장소는 ○○맨션이었는데, 매년 투신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div> <div><br></div> <div>교외에 있는 신흥 주택지 변두리의 11층 짜리 건물이었습니다.</div> <div>산의 언덕을 조성한 곳에 있었고, 지은지 15년 이상 지난 건물인데다</div> <div>주변에는 밭이나 잡목림이 가득했고</div> <div>편의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것도 없는 고즈넉한 곳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저녁 8시 쯤 도착해서 넷이서 건물을 올려다봤더니</div> <div>반 정도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div> <div>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윗층으로 갔더니</div> <div>좌우로 다섯 가구 정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었고,</div> <div>개방형 복도에 줄지어 집이 있는지라, 한 층이 전부 보이는 구조였습니다.</div> <div>조명도 있어서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습니다.</div> <div>"옥상"</div> <div>우리 셋이 약간 실망하자, 타나카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div> <div>"자살한 사람이 있으니까 당연히 잠겨있겠지"</div> <div>문 손잡이를 돌리며 이토(가명)가 투덜거렸습니다.</div> <div>이제 그만 가자며 다들 문을 등지던 순간, 계단 불이 팍 꺼졌습니다.</div> <div><br></div> <div>이건 다들 쫄았지요.</div> <div>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흥분하며 꺼들어댔습니다.</div> <div>타나카만 쉿하며 입술에 손가락을 대면서 우리를 진정시켰습니다.</div> <div><br></div> <div>결국 그 날 밤은 그럭저럭 재밌었다며 다들 각자 집으로 갔는데</div> <div>그러고 이틀 뒤가 문제였습니다.</div> <div>평소대로 모여서 놀다가 야마다(가명)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div> <div>"이번에 또 가보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div> <div>그러니까 그 조명이 갑자기 꺼진 건 뭔가 사인이라는 겁니다.</div> <div>그건 찾아온 우리 넷에게 인사한 거였다며 말하는데</div> <div>저는 저도 모르게 반박했습니다.</div> <div>그건 인사가 아니라 경고였다고요.</div> <div><br></div> <div>이토는 우연이라고 했고, 타나카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div> <div>다음 날 다시 그 맨션에 가기로 했습니다.</div> <div><br></div> <div>계단은 어두컴컴했는데 각자 손전등을 가지고 가서 괜찮았습니다.</div> <div>지난 번처럼 이토가 문에 손을 댔습니다.</div> <div>"열려 있는데?"</div> <div>다들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뛰어내려갔습니다.</div> <div>"위험하니까 관두자"</div> <div>제가 그렇게 말했는데 야마다가 절 도발했습니다.</div> <div>"쫄았냐? 그게 무슨 담력 시험이야?"</div> <div><br></div> <div>"그치만 저 문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div> <div>이토가 그렇게 말하자 타나카도 동의했습니다.</div> <div>일단 가위바위보로 문 열 사람을 정하게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옥상 펜스 같은 것도 괜찮으니까 제일 먼저 말한 사람이 잠그는 거야"</div> <div>타나카는 저에게 작은 자물쇠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div> <div>"그리고 그 다음에 가는 사람이 자물쇠를 풀고 가지고 오고.</div> <div> 그 다음은 또 풀고, 마지막 사람이 가지고 오기"</div> <div><br></div> <div>밖으로 열리는 문을 천천히 여는데</div> <div>순간적으로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손잡이를 당기는 것 같아서</div> <div>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습니다.</div> <div>이토가 문을 손으로 눌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div> <div><br></div> <div>문 너머에는 달빛 때문인지 생각보다 밝았고, 훤히 둘러보이는 겁니다.</div> <div>수조 탱크와 공동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펜스로 울책을 쳐놓았습니다.</div> <div>"어디에 걸어서 잠궈야 해?"</div> <div>타나카에게 물었더니 아무데나 하라고 했습니다.</div> <div>저는 제일 가까운 곳을 선택해서 걸어갔습니다.</div> <div>입구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펜스에 자물쇠를 잠그고</div> <div>날 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전등 불빛을 비췄습니다.</div> <div>약간 무섭긴 했지만 다음에 할 야마다를 견제해야하나 갈등했던 것 같습니다.</div> <div>아무래도 자살한 사람이 뛰어내린 장소에 오래 있는 건 꺼름칙했지만요.</div> <div><br></div> <div>그리고 재빨리 벗어나려던 그때였습니다.</div> <div>갑자기 목과 양쪽 어깨가 무거워진 것 같았습니다.</div> <div>앗 하고 생각한 순간 발을 잡혀서 쓰러지듯 힘이 빠졌습니다.</div> <div><br></div> <div>타나카와 이토가 소리치며 제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이는 순간</div> <div>제 등이 펜스 쪽에 붙어버렸습니다.</div> <div><br></div> <div>목과 양쪽 어깨, 그리고 두 팔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고</div> <div>마치 끌려가듯 내 몸이 하늘에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제 양쪽 다리에 타나카와 이토가 들러붙는 모습은 마치 꿈에서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div> <div>"야, 장난 치지 마"</div> <div>이토가 계속 소리치며 나타카는 불경을 외고 있었습니다.</div> <div>나중에 달려온 야마다가 저에게 들러붙으며 넷이 싸움하듯 굴렀습니다.</div> <div><br></div> <div>제 몸이 움직인 순간 저는 제정신이 들었습니다.</div> <div>그리고 다 같이 넘어지면서 도망쳤습니다.</div> <div><br></div> <div>모두 약간 진정하며 냉정해진 건 날이 밝을 때쯤이었습니다.</div> <div>심야 영업을 하는 식당에서 이토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div> <div>"네 어깨에서 위쪽에 검은 연기 같은 게 덮기 시작하는 거야"</div> <div>타나카는 다른 걸 봤다고 합니다.</div> <div>흰 연기 같은 게 바람에 나부끼듯 날아오더니 제 주변을 빙글빙글 소용돌이 쳤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나는 정확하진 않은데 사람이 보였어. 두 남자랑 한 여자"</div> <div>야마다가 꺼질 듯한 소리로 말했습니다.</div> <div>"여자가 날 노려봤어"</div> <div><br></div> <div>저는 아무 것도 못 봤습니다.</div> <div>그저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은 다신 보고 싶지 않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