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퍼석퍼석</b></div> <div><br></div> <div>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div> <div>뇌일혈이라면서, 한 번 쓰러지신 후 병원에 입원하신 채 돌아가셨다.</div> <div>장례식 때 내가 고별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div> <div>잠도 설치며 쓴 원고도 흐느끼느라 제대로 읽지 못 한 게 천추의 한이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날 밤은 우리 아버지가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날이었는데</div> <div>다음 날 준비도 해야 하고, 병원 뒷정리도 하셔야 해서</div> <div>친척들도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는지 대신할 사람도 안 정하고</div> <div>불 지키는 사람 없이 그 날 밤을 보내고 말았다.</div> <div>그런데 실제로 촛불이 꺼지고 말고 그렇게 큰 일이 나는 건 아닌데다</div> <div>밤새도록 안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던 지라</div> <div>불이 날 일은 없겠다 싶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이튿 날, 장례식 본식이 이뤄지는 날이라 아침부터 매우 바빴다.</div> <div>엄마를 비롯해서 여자들은 모두 요리하느라 바빴고</div> <div>나는 친척 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장례식 자체는 별 일 없이 잘 끝났고,</div> <div>조문객들도 각자 돌아간 후 다함께 식사를 했다.</div> <div>그런데 나는 왠지 식욕이 없어서 가족들이 거실에서 식사하는 동안</div> <div>할머니 관 옆에서 울고 있었다.</div> <div>마치 주무시는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만져보니 엄청 차가웠다.</div> <div>그렇겠지.. 드라이아이스 같은 걸로 식혀두니까..</div> <div><br></div> <div>그날 나는 밥은 안 먹고, 불단 모신 방에서 제일 가까운 방에서 혼자서 잤다.</div> <div>핢니 집은 오래되긴 했지만 큰 편이라서 집 앞에 작지만 단풍과 소나무가 심어진 정원도 있었다.</div> <div>나는 그 방에서 툇마루 쪽으로 머리룰 두고 자기로 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좀처럼 잠 이루지 못 하고</div> <div>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시간이 흘러, 괘종 시계가 3번 울렸다.</div> <div>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라도 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div> <div>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div> <div><br></div> <div>처음에는 내 기분 탓이겠지 했는데 점점 소리가 커졌다. 발 소리였다.</div> <div>창 밖에서 모래를 자박자박 밟는 소리가 났고,</div> <div>내 머리 쪽을 향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러던 중 짤랑짤랑하고 작은 종이 굴러가는 소리도 나고</div> <div>나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만나러 와주셨나보다"하고 생각했다.</div> <div><br></div> <div>나는 일가 친척 중에서 할머니가 제일 아껴주신 아이였던데다가 병문안도 자주 갔었다.</div> <div>그런데 "여자친구 생겼냐?" "공부는 잘 되어가니?" "친구들과는 사이 좋고?"하고</div> <div>나에 대해 걱정도 해주셨지만, 아프신 할머니를 걱정 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div> <div>대충 거짓말로 둘러댔다.</div> <div><br></div> <div>모쏠이면서, 여자친구들이랑 데이트했다, 친구들이랑 낚시하러 갔었다 라고 했다.</div> <div>그랬더니 할머니는 같은 병실에 누워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기쁜 표정으로 자랑하시는 거다.</div> <div>"우리 손주가 드디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구랴. 분명 예쁠 거야.</div> <div> 우리 손주는 어릴 때부터 패기는 부족했어도 정말 마음이 상냥한 애니까"</div> <div><br></div> <div>할머니는 내 거짓말이 진짜인지 알지도 못 하신 채 병원에서 돌아가셨으니</div> <div>할머니 가시는 길에 속 썩이는 손주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는 안도감과</div> <div>마지막까지 진실을 말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복잡한 심경이었다.</div> <div><br></div> <div>할머니는 죽어서도 그런 내가 걱정되셔서 이렇게 작별인사 하러 오셨구나 생각하니</div> <div>기쁘기도 하고, 내가 한심하기도 해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울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창 밖에서 자박자박하던 소리가 그쳤다. 풍경 소리도.</div> <div>나는 할머니가 천국으로 돌아가신 줄 알고,</div> <div>이불에서 얼굴을 떼려던 순간 귓가에서 짤랑하고 풍경 소리가 들렸다.</div> <div>핢니는 한참 동인 발을 질질 끌며 내 머리맡에서 오가셨다.</div> <div><br></div> <div>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던 걸까.</div> <div>나도 할 말이 있었다. 속여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이제 걱정 안 해도 된다고.</div> <div>나는 괜찮다고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안심 시켜 드리고 싶었다.</div> <div>그래서 이불 안에서 "할머니.."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다.</div> <div><br></div> <div>목소리를 낸 순간, 할머니가 이불에 손을 집어 넣더니 내 머리를 꽉 쥐었다.</div> <div>억지로 내 머리를 이불에서 꺼내려고 잡아당겼고</div> <div>내가 필사적으로 이불을 쥐고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뚜둑뚜둑 뜯겼다.</div> <div><br></div> <div>할머니가 아니구나 생각한 순간, 무서워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div> <div>너무 무서웠고, 왠지 밖으로 끌려나가면 죽을 것 같았다.</div> <div>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내 위에 덮고 있던 이불이 걷어지면서</div> <div>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div> <div><br></div> <div>피부가 퍼석퍼석하고, 온 몸이 딱지인지 비늘 같은 걸로 뒤덮힌 사람이</div> <div>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div> <div>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div> <div>"아앗... 허악..."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div> <div>팔을 온힘을 다해 휘두르며 불단을 모신 방으로 도망쳤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그대로 날이 밝을 때까지 할머니 관과 벽 사이에 끼여들어가서</div> <div>미처 닫지 못 한 장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div> <div>아까 본 사람이 언제 들어올 지 모르니까 죽을만치 무서웠다.</div> <div>어쩌면 잠이 덜 깼던 걸 지도 모르겠다.</div> <div>날이 밝아 엄마가 일어나서 다니는 소리가 들리길래 방에 돌아가보니 없었다.</div> <div><br></div> <div>솔직히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든다.</div> <div>이 게시판에서도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었다라고 쓰인 글에는</div> <div>그건 다 꿈이야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도 봤었고.</div> <div>하지만 정말 꿈이 아니었다.</div> <div><br></div> <div>화장을 하고, 납골까지 마친 후</div> <div>한참 지나 할머니 댁에, 할머니를 모신 불단에 인사 겸 갔더니 무언가가 있었다.</div> <div>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귀신 같은 건 한 번도 본 적도 없고</div> <div>그런 기척을 느낀 적 조차 없는 사람이라</div> <div>그 퍼석퍼석하던 놈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div> <div>그 놈이 할머니 불단 옆에, 내가 도망쳤을 때 있던 그 장소에</div> <div>마치 날 흉내내듯 같은 모양새로 앉아 있었다.</div> <div>여전히 퍼석퍼석한 피부였다.</div> <div>눈, 코, 입은 잘 모르겠다. 탈피하기 전의 뱀같은 비늘 인간.</div> <div><br></div> <div>좋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만 빤히 보고 있는 것이다.</div> <div>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 놈 옆에서 불단에 인사하고 있고..</div> <div>할머니는 안 계셨다. 우리 집 불단에는 그 퍼석퍼석한 놈 뿐이었다.</div> <div>나는 무서워서 결국 불단에 인사하지 못 했다.</div> <div><br></div> <div>이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약간 정신이 나간 걸까?</div> <div>어차피 미칠 거면 할머니 귀신을 보고 싶었다.</div> <div>하지만 가족들에게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div> <div>우리 집 불단엔 터무니 없는 것이 살고 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