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초이렛날 밤에 생긴 일</b></div> <div><br></div> <div>지금으로부터 2년 정도 전 Y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div> <div>Y는 할아버지가 바람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아껴주시던 애라</div> <div>장례식 때 나이도 잊고서 눈물콧물 흘리며 엉엉 울었다.</div> <div>이 일은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초이렛날이 되던 때 일이다.</div> <div><br></div> <div>그날은 Y 네 지역에 광풍 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는데도</div> <div>학교에서 집에 갈 버스비가 없어서, Y는 어쩔 수 없이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div> <div>도중에 몇 번이나 날아갈 뻔 하는 바람에 생사를 넘나들며</div> <div>겨우 저녁 7시 반 쯤 집에 도착해서,</div> <div>가방에서 열쇠를 꺼내들고 현관 문을 열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마치 Y가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 앞에 있는 Y의 방문이 열렸다.</div> <div>방 안에 불도 켜져 있고, 텔레비전도 켜져 있는데다가 히터까지 켜져 있었다.</div> <div>엄마가 바람 많이 분다고 내 방을 미리 데워주셨구나</div> <div>하고 Y는 기쁜 마음에 밝은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div> <div><br></div> <div>그런데 평소 같으면 '다녀왔니'하고 인사에 답해주는데,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div> <div>이상하다 싶어, 조금 전에 벗은 구두를 돌아보니</div> <div>현관에는 지금 자기가 벗은 구두만 어지럽혀져 있고,</div> <div>엄마와 아빠, 누나 구두도 없는 것이다.</div> <div>그러고보니 오늘은 자기 빼고 가족들이 모두 할아버지 제 때문에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었다.</div> <div>문득 Y의 머리 속에 영화 같은 데서 봤던</div> <div>어두운 방에 서 있는 긴 머리카락 여자 귀신이 있는 광경이 떠올랐다.</div> <div><br></div> <div>설마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귀신이 아니면 도둑일 가능성도 있었다.</div> <div>Y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방문까지 가서 안을 살짝 들여다봤다.</div> <div>방 안에 며칠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등지고 앉아 계셨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무서움이 싹 달아났다.</div> <div>예전부터 공포 영화도 누가 옆에 없으면 보지도 않을 정도로 겁이 많았지만</div> <div>진짜 귀신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할아버지 귀신이라면 괜찮았다.</div> <div>Y는 그리운 마음과, 돌아가셨는데도 자기를 만나러 와주셨다는 기쁜 마음이 동시에 들어</div> <div>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div> <div>할아버지는 생전의 버릇이시던 기침을 두 세 번 하시고,</div> <div>어색하게 머리털이 없는 머리를 쓸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div> <div><br></div> <div>Y가 부르자 할아버지는 일어서더니 뒤돌아보셨다.</div> <div>기분탓인지 돌아보시는 할아버지의 실루벳이 어딘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div> <div>뒤돌아보신 할아버지 얼굴은 잉크를 뒤집어쓴 듯 새빨갰다.</div> <div><br></div> <div>"어... Y, 우리 Y냐"</div> <div><br></div> <div>할아버지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div> <div>익숙하고도 그리운 할아버지 목소리.</div> <div>그런데 어딘가 억양이 이상했다.</div> <div><br></div> <div>너무 평탄했다.</div> <div>생전에 할아버지는 사투리가 심하셨는데</div> <div>지금 말하는 소리는 마치 컴퓨터가 만들어낸 목소리 같았다.</div> <div>할아버지가 불쑥 이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셨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 왜 그래요?"</div> <div><br></div> <div>너무 이상하니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자, 할아버지는 아까와 똑같이 기침하고 머리를 긁었다.</div> <div>"할아버지, 우리 집에 돌아오신 거에요?"</div> <div><br></div> <div>Y가 그렇게 여쭤보자,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듯 눈알이 위로 향하더니</div> <div>"어... Y, 우리 Y냐"</div> <div><br></div> <div>아까와 똑같은 말을 아까와 똑같은 발음과 억양으로 반복했다.</div> <div>그때 Y는 조금 무섭다고 느꼈다.</div> <div>이건 할아버지가 아니지 않을까.</div> <div>할아버지는 다시 천장 쪽을 바라봤다.</div> <div>손가락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검붉은 액체가 방에 깔린 카페트 위에서 고여 있었다.</div> <div>자세히 보니 이상한 곳에서 팔꿈치가 굽어 있었다. 아니, 팔뚝이 무지 길었다.</div> <div>할아버지는 이렇지 않았다.</div> <div>할아버지 흉내를 내는 이상한 존재인 걸까.</div> <div>Y는 조금씩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뒤로 물러섰다.</div> <div>그걸 깨달았는지 할아버지 흉내를 내던 그것은 목을 길게 빼고 Y를 쳐다봤다.</div> <div><br></div> <div>앗, 들켰다.</div> <div>그런 생각을 한 순간, 눈 앞에 그것의 얼굴이 있었다.</div> <div>어깨에서 윗부분이 쭈욱 늘어나 있었다. 마치 고무 같았다.</div> <div>눈 앞에서 입으로 검붉은 거품을 내뿜더니</div> <div><br></div> <div>"어... Y, 우리 Y냐"</div> <div><br></div> <div>Y는 비명을 질렀다.</div> <div>그리고 Y는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div> <div>집에 혼자 있기 무서웠다.</div> <div><br></div> <div>9시가 지나서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div> <div>그리고 그날 Y는 가족에게 말해봤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div> <div>결국 그 날 밤, 그 빨간 할아버지가 나온 방에서 자게 되었다.</div> <div><br></div> <div>Y는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div> <div>눈을 감고 있으면, 눈을 뜬 순간 그 빨간 얼굴이 눈 앞에 있는 것만 같아서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div> <div>조금 지나자, 공포와 긴장도 잠에 졌는지 결국 잠들고 말았다.</div> <div><br></div> <div>아침에 일어나보니 뭔가 얼굴이 간지러웠다.</div> <div>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에 검붉은 물 같은 게 잔뜩 묻어 있었다.</div> <div>그날부터 Y는 자기 방에서 자지 못 했다.</div> <div>다음에 만나면 도무지 도망치지 못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