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행방불명된 큰할아버지</b></div> <div><br></div> <div>내가 겪은 이야기인데, 쓰다보니 좀 길어졌다.</div> <div><br></div> <div>벌써 100년은 지난 일이다.</div> <div>우리 할머니는 두 살 터울의 오빠(내 큰 할아버지)가 있었다.</div> <div>그 큰 할아버지는 산 하나 너머에 있는 마을의 친척 집에</div> <div>부모님 심부름으로 뭔가를 가져다 주러 가셨다.</div> <div>산 하나라고 했지만, 어린이 다리로 아침 일찍 출발해도 밤에 겨우 돌아올 거리였다.</div> <div>익숙한 산길을 지나 큰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서서 해가 살짝 진 무렵에 돌아오곤 했다.</div> <div>그런데 그 날은 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div> <div>혹시나 너무 늦어 친척 집에서 재워달라고 하나보다하고</div> <div>부모님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는데</div> <div>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자</div> <div>밭일도 해야 하는데 왜 안 오나 싶어서 친척 집에 큰 할아버지를 데리러 갔다.</div> <div>그런데 큰할아버지는 친척 집에는 없었다.</div> <div>없는 게 아니라, 오지도 않았다고 했다.</div> <div>부모님은 당황해서 자기 마을과 친척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서</div> <div>양쪽에서 산을 골골샅샅이 뒤졌다.</div> <div>하지만 큰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고,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div> <div>당시 할머니는 10살이었고, 큰할아버지는 12살이었던 해의 여름이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가 코흘리개이던 시절,</div> <div>패밀리 컴퓨터가 발매되기 조금 전의 어느 여름 날.</div> <div>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친구 셋과 아침부터 산에 투구벌레를 잡으러 갔다.</div> <div>그 일대 산은 우리 집안(아버지를 포함해서 형제들) 소유지였다.</div> <div>그래서 평소에 종종 놀러가곤 했다.</div> <div>길을 헤맨 적도 한 번도 없었고, 그 날도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div> <div>처음엔 우리 넷이 사이좋게 잡고 있었는데,</div> <div>잡다보니 내 게 크네, 니 게 크네 하며 경쟁심이 불타올라서</div> <div>나 혼자 힘으로 큰 걸 잡아서 코를 눌러줘야지!하는 마음에</div> <div>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투구벌레를 잡기 시작했다.</div> <div>나무를 발로 차기도 하고, 나무 타기도 하고, 뿌리를 헤집기도 하면서</div> <div>벌레 잡기에 열중했다.</div> <div><br></div> <div>태양이 중천에 떴을 때, 배도 고프고 해서 집에 잠깐 갈까하고 둘러봤는데</div> <div>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div> <div>작은 산인데다, 내려가다보면 아는 길이 나오겠지하며 내려가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해가 기울도록 산에서 내려가지도 못 하고</div> <div>계속 걸어서 다리는 아프고 배는 고파서 그 자리에 서서 엉엉 울었다.</div> <div>그러자 갑자기 눈 앞에 남자애가 나타났다.</div> <div>정말 홀연히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일 거다.</div> <div>놀라긴 했지만,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심도 됐다. 보기에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div> <div>"뭐야, 너 길 잃었냐"</div> <div>그렇게 말하더니 그 남자애가 내 손을 잡아 끌며 걷기 시작했다.</div> <div>손 잡힌 채로 자기 소개도 하며, 이야기도 나누며 걸어갔더니 아는 길이 나왔다.</div> <div>"여기까지 오면 어딘지 알지?"</div> <div>그 말에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더니</div> <div>"○○(우리 할머니)한테 안부 전해줘"</div> <div>라는 말을 남기고 그 남자애는 산으로 돌아갔다.</div> <div><br></div> <div>왜 다시 산으로 갈까?라는 생각을 하며 어두운 길을 걸어 집에 돌아갔다.</div> <div>집에 돌아오자마자 집 옆에 사시던 할머니한테 달려가 오늘 일을 말했다.</div> <div>그랬더니 이 글 처음에 적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셨다.</div> <div>그리고 다음 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무덤에 인사하러 갔다.</div> <div><br></div> <div>이걸로 이야기 끝.</div> <div><br></div> <div><br></div> <div>이 아니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 작년 여름이었다.</div> <div>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여름 방학이라며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div> <div>더위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마누라가 밖에서 놀라며 꽥 소리를 쳤다.</div> <div>우리 아들은 점심을 먹고 어쩔 수 없이 3DS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div> <div>친구들이 모여있을 도서관에 가려고 했다.</div> <div>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그 산으로 들어갔다.</div> <div>"이름을 부르길래"라고 나중에 아들에게 들었다.</div> <div>그리고 저녁이 되었는데, 오후 5시에도 돌아오지 않았다.</div> <div>친구랑 놀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나보다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지만 없었다.</div> <div>시내도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저녁 7시 경에도 돌아오지 않아서, 경찰에 신고하려던 때 돌아왔다.</div> <div>마누라가 막 화내던 중에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div> <div>"○×(큰할아버지 이름)가 가끔 인사하러 무덤에 안 오냐고 화내셨어"</div> <div>그 이름을 듣자 마자 옛날 기억이 되살아났다.</div> <div>30년 가까이 잊고 지냈다.</div> <div>그리고 우리 아들이</div> <div>"예전에 도와준 은혜도 잊었냐!고 했어.</div> <div> 아빠, 산에서 길 잃어서 콧물 질질 흘리면서 울었다던데? 바보 ㅋㅋㅋ"</div> <div>굳어있는 나에게 아내가 ○×가 누군데?하고 물었다.</div> <div>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은 후</div> <div>오랜만에 아들과 같이 목욕하며 자세히 물어보았다.</div> <div><br></div> <div>아들 말이,</div> <div>집을 나섰더니 산에서 자꾸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뭔가 싶어서 가봤더니 기모노 같은 걸 입은 처음 보는 남자애가 있었다.</div> <div>같이 놀자고 하길래 같이 놀았다.</div> <div>그러자 아빠를 잘 아는 듯한 말투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div> <div>이 산에서 종종 놀았다는 것과,</div> <div>길을 잃고 콧물 흘리며 울던 것,</div> <div>부모님께 반항하면서 산에서 몰래 담배 피웠지만, 역하다며 토했던 것..</div> <div>기타 등등 내가 산에서 했던 짓을 이것저것 들은 것 같았다.</div> <div>재밌어서 들으며 질문도 하다보니 늦게 왔다는 것이다.</div> <div>그 애랑 만난 곳까지 바래다주면서 마지막으로</div> <div>"○○가 우리 손주는 아무도 무덤에 와주질 않는다며 슬퍼하잖아.</div> <div> 내가 도와준 거 안 잊었으면 ○○ 무덤에 좀 가보라"고 했어.</div> <div><br></div> <div>그러고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무덤에 안 간 게 생각났고</div> <div>그날 밤에 꿈에 큰할아버지가 나왔다.</div> <div>12살 모습의 큰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div> <div>혼구멍이 나면서 울먹이던 40세의 남자.</div> <div>다음 날 늦게나마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성묘하러 갔다.</div> <div><br></div> <div>이제 진짜 끝.</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