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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2968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295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2/28 17:35:33
    http://todayhumor.com/?lovestory_92968 모바일
    [BGM] 내가 혼자가 아니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유현서, 능소화에 부치다




    수직의 낭떠러지를 맨주먹 맨발로 오른다


    당신에게 가는 길, 혹은 내게로 오는 외골목을

    주황나팔 내어 불며 간다

    독을 품고 온다


    방향없이 가두는 독, 나는 불륜이라 명명했고

    당신은 사랑이라 칭했다


    소문은 누구에게나 치명타다


    내게서 찾는 것일까

    담 너머 금낭화 씨앗이 영글다 떨어지고

    함께 거닐던 샛길이 폭풍우에 짓밟힌다


    어쩌면 한 잎

    어쩌면 한 줄기

    어쩌면 한 뿌리


    통꽃으로 이우는 당신, 황홀한 잠시잠깐의 흡반이다

    늘 꼿꼿한 슬픔 하나가 나를 주저 앉힌다

     

     

     

     

     

     

    2.jpg

     

    박지혜, 여름




    기억나지 않는다

    얼어가는 사람을 끌어안는다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얼어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움만 보여주었다

    예감에 휩싸였던 시간

    정말 신비였을까

    검은 길을 걷는다

    그와 함께 걷는다

    단단하고 축축한 밤공기

    텅 빈 그림자새

    기억나지 않는다

    멀리 있는 것들이 되살아난다

    무슨 계절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여름

    죽음처럼 분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너와 나의 아름다움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해도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3.jpg

     

    이인주, 깊이




    당신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길이 있다


    바늘구멍에서 시작된

    심방을 엿보는 각방


    구멍은 소문이라는 배율을 낳고

    구멍은 자해라는 무덤을 낳고


    주둥이 터진 말이 밑 빠진 독과 등가일 때

    고독은 늙어간다 오독으로 불어난 허기가

    굴참나무 가지 끝 하늘마당에 걸리면

    온갖 별들이 공중돌기를 한다

    질시와 편견 사이 나무를 흔든다


    빠지면 죽는 절구통인 줄 모르고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도토리


    그 무구를 흠모라 부르는가

    당신도 견디고 나도 견디는


    서로 놀란 등을 맞대고

    깎고 또 깎아 만드는 자수정

    가장 깊은 밤의 광채를


    나는 알지만 당신은 모르는 길이 있다

     

     

     

     

     

     

    4.jpg

     

    이승희, 캐치볼




    공을 던진다

    어디에도 닿지 않고

    그만큼씩 나의 뒤는 깊어진다

    내가 혼자여서 나무의 키가 쑥쑥 자란다

    내가 던진 공은 자꾸만 추상화된다

    새들은 구체적으로 날아가다가 추상화되고

    생기지 않은 우리

    속으로 자꾸만 공을 던진다

    거짓말처럼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오는 것들은 일렬로 내 앞을 지나간다

    칸칸이 무엇도 눈 맞추지 않고

    잘 지나간다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추상적이다

    나는 불빛 아래에서 살았다 죽었다 한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공을 던진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5.jpg

     

    신승근, 상처



    밭고랑에 엎드려 풀을 뽑는다

    버티려는 뿌리와

    뽑으려는 내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가까스로 삐져나온 풀뿌리에서

    안쓰럽게 매달린 상처를 본다


    우리네 가슴 속에도

    뽑히지 않고 남은 응어리들이 있을 것이다

    때론 기억의 한 모서리에서 튀어나와

    정강이 뼈를 호되게 걷어찰 때에도

    풀들이 아픔을 내뱉지 않듯

    끝내 비명을 안으로 삼키는, 그런


    나는 그것을

    그리움의 상처라 부를 것이다


    아득한 기억 속 어느 길모퉁이에서

    스치며 지나갔던 아픔들이

    쌓이고 쌓여 응어리가 된, 그런

    그러나 지금은 그리워지기도 하는, 그런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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