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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2933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341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2/18 14:33:28
    http://todayhumor.com/?lovestory_92933 모바일
    [BGM]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기연, 소리에 젖다




    오지게도 내린다


    삼월 한밤 내내

    두터운 침묵을 두드리는

    푸른 빛소리

    안으로 동여맨 섶 풀어내어

    차박차박 적시고 있다

    부풀리고 있다


    꿈속까지 찾아와

    하염없이 수런대는 댓잎같은

    그대처럼


    지금 지상은

    제 소리에 겨워 우는

    타악기이다

     

     

     

     

     

     

    2.jpg

     

    정영선,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비 온 뒤 말갛게 씻겨진 보도에서

    한때는 껌이었던 것들이

    검은 동그라미로 띄엄띄엄 길 끝까지 이어진 것을 본다

    생애에서 수없이 맞닥뜨린, 그러나 삼킬 수 없어 뱉어버린

    첫 만남의

    첫 마음에서 단물이 빠진 추억들

    첫 설렘이 시들해져버린 것은 저런 모습으로

    내 생의 길바닥에 봉합되어 있을지 모른다

    점점으로 남겨진 검은 동그라미 하나씩을 들추면

    가을잎 같은 사람의 미소가 여직 거기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너무 다급해서

    차창의 풍경을 보내듯 흘려버린 상처들

    비 맞으면 저리 깨끗하게 살아난다

    씻겨지지 않은 것은 잊혀지지 않은 증거이다

    어떤 흉터 속에 잠잠한 첫 두근거림 하나에 몸 대어

    살아내느라 오래 전에 놓아버린

    건드리기만 하면 모두 그쪽으로 물결치던

    섬모의 떨림을 회복하고 싶다

    단물의 비밀을 흘리던

    이른 봄 양지 담 밑에서 돋던 연두 풀잎의 환희를

    내 온몸에서 뾰죽뾰죽 돋아나게 하고 싶다

     

     

     

     

     

     

    3.jpg

     

    안시아, 길 위의 사람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을 옮기며

    광고전단을 떼어내고 있다

    골목마다 햇살이 창가로 향하고

    누군가 그 끝을 잡으며 기지개를 켠다

    채 녹지 않은 눈 속 발자국은 아직 발이 시리다

    빅토리아나이트를 소문내느라

    밤새 퍽이나 후끈했을 벽 한켠

    잘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을 긁어내고 있다

    종이 한 장도 버티기 위해

    벽에 오래 배기는 부분이 있듯

    발을 디딜 때마다 그의 한쪽 다리가

    바닥을 지그시 밟는다

    햇살이 햇살을 끌어당길 무렵

    계단에 걸터앉은 그가 담배를 꺼낸다

    태어나 한 걸음도 떼어보지 못한

    눈사람 하나가 묵묵히 그 앞에 서 있다

    보일러 연통이 날숨을 피워올릴 때마다

    숭숭 뚫린 중심을 온기로 채우는 눈사람

    계단 아래로 천천히 녹아내린다

    비로소 온몸으로 길을 걸어간다

    그의 발이 서서히 땅에 젖는다

     

     

     

     

     

     

    4.jpg

     

    김소연, 빛의 모퉁이에서




    어김없이 황혼녘이면

    그림자가 나를 끌고 간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

    자세만이 남아 있다


    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

    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그의 충고를 따르자면

    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은 국화 그림자를 완성하는 취미가 있었다지만

    내 그림자는 나를 완성하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커다란 건물 아래에 서 있을 때

    그는 작별도 않고 사라진다


    내가 짓는 표정에 그는 무관심하다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에 그는 관심이 있다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

    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지금은 길을 걷는 중이다 순순히

    그가 가자는 곳으로 나는 가보고 있다

     

     

     

     

     

     

    5.jpg

     

    이설야, 겨울의 감정




    당신이 오기로 한 골목마다

    폭설로 길이 가로막혔다

    딱 한 번 당신에게

    반짝이는 눈의 영혼을 주고 싶었다

    가슴 찔리는 얼음의 영혼도 함께 주고 싶었다

    그 얼음의 뾰족한 끝으로 내가 먼저 찔리고 싶었다


    눈물도 얼어버리게 할 수 있는

    웃음도 얼어버리게 할 수 있는

    겨울이라는 감정

    당신이라는 기묘한 감정


    눈이 내린다

    당신의 눈 속으로

    눈이 내리다 사라진다


    당신 속으로 들어간 눈

    그 눈을 사랑했다

    한때 열렬히

    사랑하다 부서져 흰 가루가 될 때까지

    당신 속의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첫눈이 내리고

    눈처럼 사라진

    당신의 심장


    내 속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이 게시물을 추천한 분들의 목록입니다.
    [1] 2022/02/18 19:57:52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2] 2022/02/19 00:18:21  222.117.***.178  볼빵빵고양이  5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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