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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panic_90158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7
    조회수 : 2048
    IP : 128.199.***.6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08/20 21:23:53
    http://todayhumor.com/?panic_90158 모바일
    [오컬트학] 할머니가 한 일
    <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할머니가 한 일</b></div> <div><br></div> <div>내가 기억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세 살 때 일이다.</div> <div>찬 바람이 불던 무렵의 저녁, 혼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div> <div>손발 모두 꽁꽁 얼었다.</div> <div>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엄마가 혼낼 게 뻔했다.</div> <div>할머니가 데리러 오셨으면 좋겠다.</div> <div>여긴 내가 항상 오는 공원이니까 바로 아실 수 있을 거다.</div> <div><br></div> <div>바람에 흔들리는 건지, 그네가 흔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div> <div>나는 엄마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div> <div>물을 흘리거나, 발소리를 약간 내며 걷거나, 소리를 내며 웃는 그런 이유로 혼나곤 했다.</div> <div>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거나, 안전핀으로 엉덩이를 찌르거나, 겨울에 차가운 물에 들어가게 했다.</div> <div>담배를 피우고 등에 비벼 끄거나, 식사 굶기기, 집에 못 들어오게 하기.</div> <div>나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엄마 표정은 즐거운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아빠는 보고도 못 본 척을 했다.</div> <div>혼나며 걷어차이는 내 옆에서 TV를 보며 식사하셨다.</div> <div>끝나면 "엄마 말 잘 들어야지"라고 하셨다.</div> <div>할머니만이 날 도와주셨다.</div> <div>혼나고 남은 상처도 치료해주고, 같이 자주셨다.</div> <div>날 감싸다가 대신 차이시기도 했다.</div> <div>그 장면을 봤을 땐 무서워서 울고 말았다.</div> <div>너 때문에 내가 아팠잖아라며 혼내시지 않을까 생각했다.</div> <div>이제 날 미워하시진 않을까 하고 무서워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div> <div>둘이 방에 돌아가서 울면서 할머니 발에 파스를 붙여드리며</div> <div>나는 맞아도 괜찮으니까 그러지 말라고 할머니에게 말했다.</div> <div>할머니에게 미움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div> <div>할머니는 날 안으시며 우셨다. 그리고 그대로 같이 잤다.</div> <div><br></div> <div>아마 5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div> <div>밤에 눈을 떠보니 옆에서 주무시던 할머니가 안 보였다.</div> <div>화장실 가셨나보다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div> <div>그런데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셨다.</div> <div>행여나 엄마한테 엄한 꼴을 당하신 게 아닌가 싶어 살짝 일어나 문 밖 소리를 들어봤다.</div> <div>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div> <div>소리 내지 않게 조심하며 문을 열고, 할머니를 찾아다녔다.</div> <div>어두운 집 안에서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했다. 들키면 또 맞을 게 뻔하니까</div> <div>화장실, 부엌, 거실 어디에도 안 계셨다.</div> <div>어쩌면 날 버리고 나가신 게 아닌가 싶어,</div> <div>거실을 지나 현관에 구두가 있나 없나 보러 가려고 했다.</div> <div>정원 쪽 창문 커튼이 조금 열려 있었다.</div> <div>밖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아서 틈새로 엿봤다.</div> <div><br></div> <div>할머니셨다. 내 쪽을 보며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div> <div>다행이다. 날 버리고 가지 않았어.</div> <div>가슴 가득 안심하며 커튼을 열려고 했다.</div> <div>그러다 멈췄다. 어딘가 이상했다. 할머니가 평소와 달랐다.</div> <div>저렇게 이상한 할머니는 본 적 없었다.</div> <div><br></div> <div>어디가 이상한 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div> <div>할머니는 개 목을 들고 있었다.</div> <div>어기서 잡아왔는지 옅은 갈색의 개에, 혀를 길게 빼고 있었다.</div> <div>아마 중형견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목을 자르긴 힘들었을 거다.</div> <div>개 머리, 발치에 굴러다니는 몸통, 할머니 모두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div> <div><br></div> <div>한참 서계시던 할머니가 피곤한 듯 개 몸과 머리를 들고 어디론가 가버리셨다.</div> <div>봐선 안 되는 걸 본 것 같아, 떨면서 이불 안에 들어가</div> <div>할머니를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div> <div>신이란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div> <div><br></div> <div>눈을 떠보니 할머니는 내 곁에서 주무시고 계셨다.</div> <div>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셨으면 어쩌지 싶어서 안 깨우고 계속 바라봤더니 눈을 뜨셨다.</div> <div>"잘 잤니? 배 안 고프니?"라며 웃으시는 할머니는 평소 그대로였다.</div> <div>아, 다행이다. "응, 배고파"라고 답했다.</div> <div>할머니 곁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div> <div><br></div> <div>집 안에 여우, 너구리, 개 같은 게 어슬렁거리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div> <div>아빠와 엄마 둘 다 신경 안 쓰는 것 같아서 나한테만 보이는구나 했다.</div> <div>어느 날 할머니에게 그 말을 했더니, 매우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그것이 무얼 하든? 하고 물으시기에 그대로 대답했다.</div> <div>아빠와 엄마 곁에서 붙어 있으니, 둘 다 표정이 안 좋았다고.</div> <div><br></div> <div>밤중에 엄마가 소리치는 일이 잦아졌다.</div> <div>낮에도 서슬이 퍼랬다. 수면 부족이라고 하는 듯 했다.</div> <div>엄마 몸 상태가 안 좋아진 후, 체벌은 많이 줄었지만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 같다.</div> <div>온 몸을 라이터 불로 지지거나, 손바닥에 뾰족한 연필을 몇 자루나 찔러대곤 했다.</div> <div><br></div> <div>그때부터 할머니가 현관으로 드나들지 말라고 하셨다.</div> <div>왜 그런지는 여쭤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가 시키신 일이니까.</div> <div>할머니와 나는 뒷문에 신발을 두고, 거기서 집으로 드나들었다.</div> <div><br></div> <div>집안에 비린내가 났다. 특히 엄마 아빠에게서 심하게 났다.</div> <div>둘 다 깔끔떠는 사람들인데, 점점 차림새가 흐트러졌다.</div> <div>손톱을 기르고, 그 안에 검은 때가 끼었다.</div> <div>옷도 지저분하고 젓가락질도 안 했다.</div> <div><br></div> <div>아빠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div> <div>무슨 소리인지 들어보려고 뒤에 다가가봤지만 알아듣지 못 했다.</div> <div>냄새가 심했다. 짐승 냄새인지 아빠 속옷에 묻은 배설물 냄새인지 모르겠다.</div> <div><br></div> <div>엄마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둘렀다.</div> <div>그러고보니 요즘 안 맞았다.</div> <div>엄마에게 내가 안 보이는 것 같다.</div> <div><br></div> <div>7살 무렵, 시청 사람, 병원 사람들이 와서 아빠와 엄마를 데려갔다.</div> <div>할머니는 잘 부탁 드린다며 고개를 조아리셨는데</div> <div>사람들이 가자, 날 돌아보며 웃으셨다.</div> <div>나도 웃었다. 사랑하는 할머니와 둘이서 산다. 이제 무서울 게 없었다.</div> <div><br></div> <div>열세 살 무렵에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몸이 꼼짝도 않으셨다.</div> <div>집에 있던 짐승들은 다들 할머니에게 붙어 있었다.</div> <div>그렇게 말했더니,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돌아왔나보구나'라고 하셨다.</div> <div><br></div> <div>그리고 2년, 치매로 천천히 아이로 돌아가더니 타계하셨다.</div> <div>온 몸에 원인 불명의 습진과 두드러기가 퍼져서 마구 긁으시다가 돌아가셨다.</div> <div>시체를 해부해보니, 사인은 두드러기로 목이 부어서 질식사하셨다고 했다.</div> <div><br></div> <div>원인불명의 습진과 두드러기는 동물 알러지 때문이라고 했다.</div> <div>동물을 키운 적은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div> <div><br></div> <div>나는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다.</div> <div>여전히 쪽문으로 드나들고 있다.</div> <div>짐승들 모습과 함께, 짐승처럼 변한 할머니도 보인다.</div> <div>할머니가 뭘 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날 위해 하신 것일 거다.</div> <div>어떤 모습이건 할머니가 곁에 계신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div>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287777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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