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커텐 너머</b></div> <div><br></div> <div>중학생 시절 겪은 일인데, 그닥 무섭지는 않고 그냥 신기한 일입니다.</div> <div><br></div> <div>중학교 2학년 2학기에,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div> <div>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에 언제인지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div> <div><br></div> <div>새벽에 복통이 일어 구급차에 실려갔다가 바로 입원하고 수술 준비했습니다.</div> <div>수술은 그 다음 날 하기로 하고, 우선 진통제를 먹은 후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div> <div>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입원 환자는 저와 옆자리 사람 뿐이었습니다.</div> <div>저녁에 일 마치고 오신 엄마가 갈아입을 옷과 이것저것 챙겨와주셨습니다.</div> <div>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60 정도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오셨습니다.</div> <div>아마 옆 자리 분을 병문안 오신 것 같았습니다.</div> <div>엄마가 "앞으로 일주일 정도 잘 부탁 드립니다"하고 인사했더니</div> <div>그 분도 "젊으니 금방 건강해지겠죠. 저희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웃는데</div> <div>정말 좋아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할머니는 옆 자리 침대 커튼 안으로 들어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시더니 돌아가셨습니다.</div> <div>면회 시간이 지나서 엄마도 집에 돌아가셨습니다.</div> <div>그날 밤, 저는 다음 날 수술 때문에 약간 흥분되어 잠에 들지 못 했습니다.</div> <div>그러자 옆 자리 커튼 안에서 말을 걸어왔습니다.</div> <div>"이 병실에 입원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몇 달 동안 혼자여서 정말 지루했거든.</div> <div> 왜 온 거니?"</div> <div>하고 묻는데 목소리로 유추하건대 아까 오신 할머니 남편분인 것 같았습니다.</div> <div>상냥한 목소리였습니다.</div> <div>"맹장염이에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시험 기간인데 큰일이에요"</div> <div>라고 학교 이야기, 부활동 이야기를 했습니다.</div> <div>엄마가 돌아가셔서 왠지 쓸쓸했기 때문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하던 차였고,</div> <div>할아버지 목소리가 너무 상냥해서 저도 모르게 줄줄 이야기를 했습니다.</div> <div>할아버지는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셨는데</div> <div>"젊음은 그 자체로도 멋진 거지.</div> <div>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잖니"</div> <div>라고 했습니다.</div> <div>저는 왠지 죄송스러웠지만 할아버지께도 왜 입원하셨는지 여쭤봤습니다.</div> <div>"너무 여기저기 아파서 말이야.</div> <div> 어디가 아프다는 것도 아니고, 수명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만족스럽지 뭐.</div> <div> 아마 퇴원은 못 할 거야"</div> <div>라고 하셨습니다.</div> <div>내장 쪽 병이 병발했다며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저는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어서</div> <div>그렇지 않아요, 제가 비록 먼저 퇴원해도 병문안도 올 거고, 분명 퇴원하실 수 있을 거에요"</div> <div>라고 했습니다.</div> <div>제가 아프고보니 얼마나 마음이 허한지를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에</div> <div>기운 차리셨으면 하는 마음에 말했습니다.</div> <div><br></div> <div>할아버지는 웃으며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div> <div>그리고 다음 날, 수술에 들어갔고</div> <div>전신 마취를 했기 때문에 그날은 반나절 내내 잠든 채 지냈습니다.</div> <div>눈을 떠보니 날이 저물어서 침대 옆에 아빠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div> <div>일주일 정도 더 입원해서 보다가 상태가 괜찮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div> <div>그런데 옆의 할아버지 침대가 비어 있던 게 신경이 쓰여서</div> <div>병실을 이동하셨나 생각하며 퇴원할 때 인사드리러 갈 생각을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아서 5일 정도 지나자 퇴원해도 좋다고 했습니다.</div> <div>제가 물건을 정리하는데, 그 할머니가 찾아오셨습니다.</div> <div>저는 할아버지에 대해 여쭤보려고 했는데</div> <div>할머니 눈에 맺힌 눈물을 보니 동요되었습니다.</div> <div>그러자 그 할머니는</div> <div>"그 사람이 편지를 썼구나. 늦게 건네줘서 미안하다"라며</div> <div>저에게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div> <div>편지 안에는</div> <div>"마지막 밤에 혼자 보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고맙구나.</div> <div> 건강하게 잘 자라렴"</div> <div>그런 내용이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습니다.</div> <div>말을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제가 수술한 날 오전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div> <div>그대로 돌아가셨다는 겁니다.</div> <div>저는 울면서 "저도 그 날 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서 정말 안심할 수 있었어요.</div> <div>많이 불안했는데, 상냥하게 말을 받아주셨거든요"</div> <div>하고 할머니께 말씀 드렸습니다.</div> <div>그런데 할머니가 의아하단 표정으로</div> <div>할아버지는 목에 종양이 생겨서 제거하다가 성대가 다치는 바람에</div> <div>말은 물론이고 거의 아무 소리도 못 내셨다고 하셨습니다.</div> <div>마지막 편지는 아마 돌아가시기 전날 밤 죽을 때를 깨닫고 쓰신 거 아닐까 생각하셨답니다.</div> <div><br></div> <div>지금도 그날 밤 할아버지와 대화 나누었던 일이 떠오릅니다.</div> <div>대체 그건 무엇이었을까요.</div> <div>신기한 것도 신기하지만, 그 상냥한 목소리는 결코 잊지 못 할 겁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