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골동품 수집</b></div> <div><br></div> <div>우리 아버지 이야기 좀 써보겠습니다.</div> <div><br></div> <div>우리 아버지는 방직 공장을 하고 계셨는데,</div> <div>무슨 생각엔지 쉰이 되셨을 때 공장을 접으시더니</div> <div>경영권부터 시작해서 모두 팔아치우셨습니다.</div> <div><br></div> <div>매각 금액으로 당시 금액으로 10억 정도 되는 돈이 생겼고,</div> <div>아버지는 "이 돈으로 손주들까지 먹여 살릴 수 있을 테니 이제 내 맘껏 살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div> <div>하지만 그 나이 되도록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div> <div>갑자기 뭔가 취미를 가지려고 해도 쉬이 찾지 못 하시며 방황하시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이것저것 손은 대봐도 오래 가지 못 하셨는데</div> <div>어느 날부터 골동품 수집을 시작하셨습니다.</div> <div>처음엔 작은 것부터 사들이셨습니다.</div> <div>흔해빠진 술잔이나 담배 끈 같은 것이었습니다.</div> <div>"처음부터 비싼 걸 사다가 사기라도 당하면 큰일이니까 용돈 정도 선에서 그쳐야지"</div> <div>라며 골동품 시장에서 빨간 산호 구슬 몇 알이 달린 담배 끈을 사오셨습니다.</div> <div><br></div> <div>"보다보니 느낌이 딱 오지 뭐야.</div> <div> 이 산호 구슬은 원래 비녀에 달려 있던 걸 지도 몰라"</div> <div>라며 천에 올려서, 서재에 마련한 커다란 유리 진열장에 두셨습니다.</div> <div><br></div> <div>이것이 바로 우리집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의 시작이었습니다.</div> <div>먼저 아버지를 잘 따르던 우리집 고양이가 서재에 들어가려하지 않았습니다.</div> <div>아버지가 안아 올려서 데리고 가도 바로 도망쳤습니다.</div> <div>게다가 집 안의 것들이 쉬이 썩기 시작했습니다.</div> <div>장마철도 아닌데 식빵은 사오고 얼마 안 되어서 곰팡이가 생기고</div> <div>부엌은 언제나 음식물 쉰 내가 폴폴 풍겼습니다.</div> <div>그리고 우리 집엔 자그나마 정원이 있었는데,</div> <div>나무 전체가 기운이 없고, 개중에는 선채로 말라 죽는 것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div> <div>그리고 옥상 위에 어떤 곳에 항상 검은 연기 같은 게 뭉쳤고,</div> <div>지나가는 사람들이 불 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div> <div>하지만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봐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이때 아버지는 지호당이라는 골동품 가게 주인과 사이가 돈독해졌습니다.</div> <div>그 사람은 작은 체구의 노인이었는데,</div> <div>아버지가 돈 깨나 있다는 걸 눈 여겨 본 건지 집에 종종 오곤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아버지가 가족들을 모아놓고</div> <div>"얼마 전부터 우리 집이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았냐.</div> <div> 아무래도 그건 저 산호 구슬이 원인이라는구나.</div> <div> 지호당 주인장 말이 저런 건 원래 유곽 여인들의 원한 같은 게 서려있다지 뭐냐.</div> <div> 그런데 그걸 또 상쇄하는 방법이 있다더라고.</div> <div> 그래서 이번엔 이걸 샀지"</div> <div>라며 한 폭의 족자를 보여주셨습니다.</div> <div>흔히 볼 수 있는 한산습득(중국 당나라 시대 두 선승)을 그린 중국산 그림이었는데,</div> <div>그리 가치 있는 걸로 보이진 않았습니다.</div> <div>그리고 전통식 방에 장식하시겠다고 했습니다.</div> <div>확실히 그 족자를 건 후부터 우리 집의 이상한 일이 멈춘 듯 했습니다.</div> <div>여전히 고양이는 서재 쪽으론 안 들어가긴 했지만</div> <div>나무들은 기운을 차린 것 같았고, 음식이 썩는 일은 사라졌습니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div> <div>"낡은 물건이란 건 자고로 사람의 일생 혹은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라,</div> <div> 개중에는 나쁜 기운을 품은 것도 있단다.</div> <div> 그런 것의 조화를 취하는 것이 골동품의 참 묘미라고, 지호당 주인장이 그러더구나"</div> <div>라며 기뻐하셨습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있었던 일입니다.</div> <div>그 당시 저는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전통식 방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었는데</div> <div>우연히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div> <div>학교에서 응원할 때 쓰는 부채가 창에 끼워져있다는 게 생각나서 가지러 갔습니다.</div> <div>그런데 분명 우리 집엔 아무도 없었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div> <div>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전통식 방에서 들려왔습니다.</div> <div>장지문 앞에서 듣자하니, 이런 소릴 했습니다.</div> <div>"……이걸로 해결되었다 생각하면 오산이지……"</div> <div>"썩은 것을 통에 넣고 뚜껑을 씌운 것에 불과해… 머지 않아 끔찍한 일이…"</div> <div>아무래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목소리가 익살스러웠던 탓인지, 무섭다는 생각은 못 하고 홱하고 문을 열었습니다.</div> <div>그런데 당연히 그 안엔 아무도 없었지요.</div> <div>족자 그림 속 두 승려가 미묘하게 위치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었습니다.</div> <div>그리고 2, 3일 정도 지나서,</div> <div>우리 집에 소형 트럭이 돌진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div> <div>벽과 현관 일부가 무너지긴 했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 이 사고 때문에 여러모로 깊은 생각에 잠기셨는데,</div> <div>그 후 골동품 구매에 한 층 더 열을 올리셨습니다.</div> <div>오래된 향로, 무로마치 시절 것이라는 허리춤에 차는 칼, 타이쇼 시절 유리 그릇 같은..</div> <div>그리고 그럴 때마다 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가 멈췄다가</div> <div>그러다가 더 심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div> <div>골동품 구매에 쓴 돈도 꽤나 들었던 것 같습니다.</div> <div>"저길 막으면 여기 구멍이 나니 원. 생각할 게 끝도 없구만"</div> <div>아버지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골동품 수집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에도 시절의 유령화였습니다.</div> <div>꽤나 고가의 물건이었던 것 같습니다.</div> <div>흰 소복을 입은, 발 없는 여자 귀신이 버드나무 아래에 떠 있는 그림이었는데</div> <div>저명한 화가의 제자가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div> <div>아버지는</div> <div>"너희는 이 그림이 기분 나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실로 힘이 있는 그림이야.</div> <div> 우리 집의 기운을 맑게 해줄 게 틀림 없어"</div> <div>라고 하셨습니다.</div> <div>그리고 그 그림이 우리 집에 온 날부터</div> <div>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여동생이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div> <div>여동생은 부모님과 한 방에서 잤는데, 새벽 2시만 되면 히익하고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습니다.</div> <div>그리고 들어본 적도 없는 외국말 같은 소리를 내뱉고,</div> <div>부모님이 흔들어 깨우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div> <div>당연히 병원에도 데려갔지만, 아무 이상도 없다는 겁니다.</div> <div>우리 가족은 골동품 때문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차마 아버지께까지 말을 꺼내진 못 했습니다.</div> <div>지호당 주인장이 왔을 때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div> <div>"머지 않아 태어나겠군요"</div> <div>라며 이해 못 할 소릴 했다고 합니다.</div> <div>그리고 그날 밤이었습니다.</div> <div>어김없이 새벽 2시가 되자, 여동생이 악몽을 꿨는지 흰자를 드러내머 일어나더니</div> <div>"각.. 각.. 아라호레손가야"</div> <div>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는 어른 주먹만한 희고 투명한 돌을 뱉았습니다.</div> <div>다음 날 지호당 주인장이 오더니 비싼 값을 치르고 그 흰 돌을 사갔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 이 일을 꼐기로 지호당과 연을 끊고, 골동품 수집도 관두셨습니다.</div> <div>"이렇게 가족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쳐선 안 되지.</div> <div>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이제 정원 손질이나 해볼까 해"</div> <div>그리고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은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