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마주보게 한 거울 속의 악마</b></div> <div><br></div> <div>밤 12시, 거울을 서로 마주보게 하면 악마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div> <div>나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서로 마주보게 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div> <div><br></div> <div>다섯 살 때였다. (한국 나이 6~7살)</div> <div>악몽을 꿨다.</div> <div>너무 무서워서 눈이 떠졌다.</div> <div><br></div> <div>어슴푸레한 방 안에, 천장에 매달린 전구가 보였다.</div> <div>그리고 어린 마음에 조금 전의 것이 꿈이라는 사실에 안심되어 긴 숨을 내쉬었다.</div> <div>그때 꾼 꿈 내용은 바로 잊어버렸다.</div> <div>그저, 무서운 꿈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다.</div> <div><br></div> <div>정신이 들고보니 발치에 무언가가 소근거리고 있었다.</div> <div>눈을 내리깔고 보니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div> <div>뭐지 싶어서 상반신을 일으켜봤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가 일으켜세웠다는 게 오히려 더 타당한 것 같다.</div> <div>그리고 그 곳에는 "그 놈"이 있었다.</div> <div>이때부터 수십 년 동안이나 싸우고 있는 악마가.</div> <div><br></div> <div>나는 30센티 정도 눈 앞에서 그 놈을 보고 말았다.</div> <div>몸을 일으킨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div> <div>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였다.</div> <div>머리카락은 엉망으로 자라나 있었고,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녀석이었다.</div> <div>옛날 그림에 나오는 아귀 같은 인상이다.</div> <div>당시 다섯 살인 내가 아귀를 알 턱은 없고,</div> <div>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아귀와 인상이 닮았구나 생각한 거지만.</div> <div>옷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div> <div>그런데 손에 들고 있던 것만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 난다.</div> <div>낫이었다.</div> <div>벌초같은 걸 할 때 쓰는 낫을 오른손에 들고, 눈을 치켜뜨고 날 빤히 보고 있었다.</div> <div>나는 너무 무서워서 발을 뻗은 채로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div> <div>그 녀석은 내가 꼼짝 못 한다는 걸 깨닫자</div> <div>손에 쥐고 있던 낫을 자랑스러운 듯 휘둘렀다.</div> <div>"히히히힛"하고 날카로운 웃음 소리를 내더니, 쭉 뻗은 내 발을 노리고 낫을 내리쳤다.</div> <div>콰직하고 무릎 아래부터 발이 잘려나갔다.</div> <div>피는 안 났는데, 잘린 부분에 빨간 살점이 보였다. 그런데 아프진 않았다.</div> <div>비명을 지르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div> <div>그 녀석은 다시 낫을 내리쳤다.</div> <div>다른 한쪽 다리의 무릎 부분이 싹둑 잘려나갔다.</div> <div>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내 앞으로 다가왔다.</div> <div>이번엔 팔을 자르기 시작했다.</div> <div>나는 결국, 오뚝이 인형처럼 팔다리를 잃었다.</div> <div><br></div> <div>그때 눈이 떠졌다.</div> <div>아아, 꿈이었던 것이다. 그 흉칙한 아귀같은 놈은 꿈이었던 것이다.</div> <div>이제서야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div> <div>문득 발치에서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div> <div>이상하다 싶어서 몸을 일으키니</div> <div>있었다.</div> <div>꿈에서 빠져나와 내 눈 앞에 있는 것이다.</div> <div>손에 낫을 들고, 꿈처럼 날 노려보고 있었다.</div> <div>다시 내 몸은 굳었고, 또 그 녀석이 낫으로 내 몸을 조각조각 냈다. 히히힛하고 웃으면서.</div> <div>꿈이 아니었어?!</div> <div><br></div> <div>다시 눈이 떠졌다.</div> <div>나는 머뭇거리며 발치를 쳐다봤다.</div> <div>이번엔 괜찮겠..지.</div> <div>아니었다. 역시 있었다. 손에 낫을 들고.</div> <div>그리고 아까처럼, 내 팔다리를 잘랐다.</div> <div>내가 이렇게 무서워 벌벌 떠는 게, 너무 재밌어서 죽겠다는 듯이.</div> <div><br></div> <div>그리고 다시 눈이 떠졌다.</div> <div>또 그 녀석이 있었다.</div> <div>또 내 팔 다리를 잘라냈다.</div> <div>대체 얼마나 더 이어지는 걸까. 마치 늪에 빠진 것만 같다.</div> <div><br></div> <div>꿈에서 깨어 악마를 만나고, 팔 다리를 잘리고, 꿈에서 깬다.</div> <div>몇 번이나 반복되었다.</div> <div>마치 꿈 속에 꿈이 몇 겹이나 있는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div> <div>벗어날 수 없었다.</div> <div>이윽고 나는 포기하는 마음이 들면서, 잠에 빠졌다.</div> <div>실신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div> <div><br></div> <div>그 악몽은 그 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div> <div>문득 눈이 떠졌다.</div> <div>내 다리는 괜찮나? 또 그 녀석이 있는 거 아닐까?</div> <div>살짝 손을 뻗어 다리를 만져봤다. 허벅지가.. 있었다.</div> <div>몸을 굽혀 조금 더 아래를 만져봤다. 무릎이.. 있었다.</div> <div>안도의 한숨이 나왔다.</div> <div>그럼 종아리는.. 없다.</div> <div>내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div> <div>벌떡 일어나보니 내 눈 앞에는 역시 또 그 녀석이 있었다.</div> <div>눈을 뜨기 전에 내 다리가 잘려나간 것이다.</div> <div>히히힛. 잔인한 희열에 가득찬 그 웃음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div> <div><br></div> <div>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일주일이나 그 악몽이 이어졌다.</div> <div>같은 꿈, 같은 내용.. 마치 내 몸에 각인을 새기듯 수 차례 이어졌다.</div> <div><br></div> <div>나는 자는 게 무서웠다.</div> <div>밤 중에 눈이 떠지는 게 무서웠다.</div> <div>문득 눈을 뜨면, 그 녀석이 내 발치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게 아닐까.</div> <div>그런 공포에 사로잡혀, 밤에 눈이 떠져도 내 발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div> <div>만져서 확인해보는 것도 무서웠다.</div> <div>그대로 눈을 다시 감고 필사적으로 다시 자려고 노력했다.</div> <div>그게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하지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div> <div>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나에겐 공포 그 자체였고 결국 그것은 트라우마가 되었다.</div> <div>잠드는 게 무서워졌다. 지금도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div> <div>그 뿐 아니라, 언젠가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하다.</div> <div>그 악귀가 가지고 있는 낫은 사신을 뜻하는 걸지도 모른다.</div> <div><br></div> <div>내 주변에 불길한 일이나 불행이 닥치면, 검은 그림자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div> <div>무언가가 날 감시하고 있다.</div> <div>내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며, 호시탐탐 날 노리는 검은 그림자의 존재.</div> <div>조금이라도 틈을 보일라손 치면, 그 즉시 내 마음을 유린하려고.</div> <div>그 검은 그림자는 때때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빙의하여,</div> <div>순식간에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하여 날 괴롭히려 한다.</div> <div>그렇게 의심이 끝없이 의심을 낳았다.</div> <div>나 외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div> <div>언제 날 해할 사람으로 변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div> <div>어린 아이임에도 어른처럼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div> <div><br></div> <div>내 생애를 뒤돌아보니, 억지스러우면서도 불합리한 불행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div> <div>세상 만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외려 그러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방향으로</div> <div>반드시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인생은 그렇게 움직여갔다.</div> <div>그것은 내 정신이 피폐해지고, 붕괴되는 것을 노리는 것만 같았다.</div> <div>너무나 명백하게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div> <div>꿈에서 본 그 악귀가 검은 그림자가 되어 내 주변을 배회하고,</div> <div>사람을 매개로 간접적인 공격을 하고,</div> <div>내가 잠시라도 주의력이 태만해지면 그 틈을 노려 직접적으로 공격했다.</div> <div>정신적으로 코너에 몰아 붙여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div> <div>그런 정신적 압박에 악의마저 느껴졌다.</div> <div>때로는 내가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div> <div>(*욥 : 모든 것을 빼앗기는 악마의 시험에 빠지는 인물)</div> <div><br></div> <div>겹겹이 쌓인 꿈의 세계. 공포 속에 또 다른 공포가 숨어 있었다.</div> <div>마치 마주보게 둔 거울 속 세상과도 닮았다.</div> <div>거울의 세상에 또 하나의 세상.</div> <div>그 안에 또 거울 속의 세상.</div> <div>그것이 무한대로 이어져 있다.</div> <div>내가 꾼 악몽은 그야말로 그러했다.</div> <div>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마주보게 한 거울처럼 악마를 소환한 걸까?</div> <div>그것이 바로 저 악귀인지 요괴인지 알 수 없는 저 녀석의 정체일까?</div> <div><br></div> <div>이따금 생각한다.</div> <div>지금 현실이라 생각하는 이 세상이, 실은 꿈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고.</div> <div>나는 켜켜이 쌓인 꿈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그 곳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div> <div>한단지몽이라는 말처럼, 문득 눈을 떠보면 나는 아직 다섯 살 어린아이가 아닐까.. 싶다.</div> <div><br></div> <div>겹겹이 쌓인 내 꿈은, 기억하고 있다.</div> <div>꿈 게시판에 써도 좋았겠지만, 이 이야기는 후일담이 있다.</div> <div>그건 다음 기회에 계속 써보겠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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