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따금 떠오르는 광경</b></div> <div> </div> <div>지금까지 신기한 경험을 몇 번 했습니다.</div> <div>그때 일을 생각 날 때마다 쓰려고 하니, 길고 재미없어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div> <div> </div> <div>제가 초등학교 4학년 떄 일입니다.</div> <div>저는 전부터 이따금 떠오르는 광경이 있었습니다.</div> <div>꿈에서 본 건지 어떤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광경입니다.</div> <div> </div> <div>낡은 집에 있는 전통식 방(불단 모신 방과 거실 두 개 이어진)에서</div> <div>네댓 살 정도 된 여자애 둘이서 사이좋게 놀고 있습니다.</div> <div>그 모습을 할아버지 한 분이 눈가가 접히며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보고 있습니다.</div> <div>할아버지는 안색이 나쁘고 조금 말라서, 툇마루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div> <div>유카타(목욕 후 입는 옷)를 입고 이불을 깔아둔 것을 보니</div> <div>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div> <div>그리고 그 할아버지를 제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div> <div>어디서 만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div> <div>그 할아버지가 여자애들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일어서서</div> <div>불단 구석에 무릎 꿇고, 여자애들을 손짓으로 불렀습니다.</div> <div>둘이 신나서 할아버지 곁으로 달려가더니</div> <div>무릎 꿇은 할아버지를 양 옆에서 들여다봅니다.</div> <div>할아버지는 오래된 통을 들고 있었는데, 뚜껑을 열자 과자가 가득했고</div> <div>여자애들에게 둘 셋 건네주셨습니다.</div> <div>여자애들은 기뻐하며, 다시 뛰어가서 놀기 시작했고</div> <div>할아버지는 또 미소지으며 그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div> <div> </div> <div>이런 별 특별함 없는 일상적인 광경입니다.</div> <div>그런데 그 광경을 대체 언제 본 건지, 대체 누구인건지, 꿈인지 어떤지 모두 수수께끼였습니다.</div> <div>그저 그 광경은 사람 목소리나 어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데</div> <div>가끔 여자 웃음 소리나 "좋겠다~"라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div> <div>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여자 목소리만 들렸는데</div> <div>정말 상냥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목소리라 귓가에 맴돌곤 했습니다.</div> <div>그런 걸 아주 예전부터… 제가 기억하는 한, 유치원보다 더 전부터 떠올리곤 했습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날, 저는 엄마에게 이 광경에 대해 말했습니다.</div> <div>어차피 "그런 건 모르겠는데. 꿈 꾼 거 아냐?"라고 말하실 건 뻔했는데</div> <div>달리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엄마에게 말한 거지요.</div> <div>엄마는 제 예상과 달리</div> <div>"네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아니?!"라며 깜짝 놀라 저에게 말했습니다.</div> <div> </div> <div>엄마 말로는, 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병에 걸리셔서</div> <div>거의 일도 못 나가시는 바람에</div> <div>부인인 할머니가 가난해도 어떻게든 가게를 꾸려나갔고,</div> <div>할아버지는 집 안에서 조용히 매일매일 시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div> <div>할머니는 상냥하고 조용한 성격의 할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좀 엄한 분이었는데</div> <div>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노가다까지하는 남자보다 씩씩한 여자였는데</div> <div>(아마 남편 대신 일부러 더 엄하게 굴었겠지요)</div> <div>쉬는 시간에 받는 과자를, 피곤하고 배가 고파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집에 가져와서</div> <div>우리 집의 가장인 할아버지에게 건네주었습니다.</div> <div>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그 과자에는 입도 대지 않고</div> <div>평소엔 과자 구경도 못 하는 아이들(엄마와 형제들)을 위해 통에 넣어두었다가</div> <div>아이들이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조금씩 과자를 주었다고 합니다.</div> <div>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이 크고, 장남이 집을 잇게 되었고</div> <div>딸(우리 엄마)도 시집 가고, 다른 형제들도 독립해서 집이 가난을 벗어나고</div> <div>할머니가 힘들게 일하실 필요가 없어졌지만,</div> <div>할아버지는 여전히 통 안에 과자를 넣어두었다가 귀여운 손주들에게 과자를 주셨습니다.</div> <div> </div> <div>제가 철이 들 무렵엔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생각도 못 했지만</div> <div>엄마 말로는 아마 제 기억 속 할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인 것 같았습니다.</div> <div>그리고 제가 터울이 좀 있는 언니가 둘(언니들끼리는 연년생)있는데</div> <div>아마 제 기억에 떠오르는 두 여자애는 언니들의 어린 시절 모습인 것 같습니다.</div> <div> </div> <div>그 외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div> <div>제가 태어나 얼마 안 되었을 때 계속 고열을 내는 바람에</div> <div>모유도 다 토하면서 먹지 않다보니, 점점 쇄약해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라</div> <div>의사 선생님을 포함해서 다들 포기하던 차</div> <div>엄마만큼은 매일 매일 병원에 와서 절 보시면서 유리 너머에 있는 절 보며 울곤 했답니다.</div> <div>그리고 그러다보니 엄마도 말라가고, 모유도 안 나올 정도로 몸이 약해졌습니다.</div> <div>할아버지는 그런 딸 모습이 안타까웠겠지요.</div> <div>병원에서 우는 엄마에게</div> <div>"너는 할 만큼 다 했어. 그러니 널 책망하지 말고</div> <div>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네가 그러고 있으면 그 애들은 어쩌냐.</div> <div> 그리고 얘는 괜찮다. 분명 살 게야"</div> <div>라고 말하시더니 집으로 가셨다고 합니다.</div> <div>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외할아버지 병세가 심해져 바로 입원하셨습니다.</div> <div>그런데 극증 간염이라는 병이었는데, 순식간에 돌아가셨습니다.</div> <div>할아버지의 너무나 허무한 죽음과 반대로,</div> <div>생사를 헤매던 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회복하더니</div> <div>아팠던 게 거짓말같을 정도로 건강해져서 퇴원했습니다.</div> <div> </div> <div>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할아버지가 저 대신 희생해주신 거란 생각이 들어</div> <div>지금까지 아무 것도 모르고 제대로 성묘하기는 커녕</div> <div>불단에 합장조차 하지 않았던 게 죄송해서</div> <div>외가에 가자고 졸라, 일단 불단에 인사를 올리기로 했습니다.</div> <div>불단이 차려진 할아버지 초상화를 보니, 분명 제 기억 속의 그 분이셨습니다…</div> <div> </div> <div>이때는 이 일로 제 기억 속 수수께끼가 다 풀린 것 같았습니다.</div> <div>그런데 어째서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외할아버지에 대해서</div> <div>마치 제 눈으로 본 것처럼 알고 있었을까요?</div> <div>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목소리의 여자는 누구였을까요…?</div> <div>역시 근본적인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