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단지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10층짜리 건물 단지 10층에 살고 있었다.
그 단지는 유명한 곳이었는데,
통칭 "날라리 단지" 혹은 "자살 단지"로 그닥 좋은 평판을 받지 못 했다.
단지는 10층 짜리와 13층 짜리 건물이 있었다.
친구가 들었다는 소문에 따르면
새벽 3시 쯤 13층 짜리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가서
어떤 정해진 행동을 한 후, 5층으로 내려가,
거기서 또 어떤 행동을 한 후 3층으로 내려가고,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가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교길에 덕분에 시끌시끌했다.
그렇게 손쉽게 귀신을 볼 수 있다니.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만큼 갔던 심령 스폿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웃으며 말했더니, 우리 집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야기는 그걸로 끝났다.
친구와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잊고 있던 어느 가을 날,
친구가 "들었냐? 거기 또 자살자 나왔대"라고 말을 걸었다.
우리 건물 쪽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 했기 때문에
13층 쪽인지 물어봤더니, 역시 13층 건물 쪽이었다.
하교길에 친구들과 같이 다섯이서 13층 건물 단지 부근을 지나가는데
자전거 주차장 옆의 자갈밭 쪽에 꽃다발이 두 개 놓여 있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그때 친구 중 한 명이 "그거 한 번 안 해볼래?"하고 말했다.
"그게 뭔데?"하고 되물었더니, "귀신 보자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친구 외에는 다들 꽃다발을 봐서 꺼름칙했는지 그닥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끈질기게
"아 뭐 어때~ 쫄았냐?
전에 갔던 공동묘지나 폭포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잖아.
사람이 사는 곳인데 뭐 어때"
라며 부채질했다.
무시했더라면 좋았을 걸, 괜시리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그래. 한 번 해보자. 대신 네가 말 꺼낸 거니까 네가 다 해봐.
난 그냥 따라가기만 할 거야. 알겠지?"
라고 하자, 친구는 그러자며 다음 주 토요일 밤에 실행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모인 사람은 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인 다섯 전원에,
우리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 둘이 끼여서 총 일곱 명이었다.
여기부터 맨 처음 말을 꺼낸 친구를 S라고 하자.
S 외에 날 포함해서 셋은 10층 건물 단지에 살고 있었고,
나머지 셋은 가까운 다른 맨션에 살고 있었다.
S네 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단독 주택이다.
일단 부모님에겐 "S네 집에 자러 간다"고 말해두었고
담력 시험이 끝나면 실제로 S 네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밤 8시가 조금 지나서 다들 모였고,
자정까지 밖 공원에서 깡통차기나 불꽃놀이를 하며 놀며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 S와 나와 다른 친구 이렇게 셋이 S네 집에가서 필요한 걸 챙겨왔다.
필요한 건 두 가지였다. 소금과 술.
그 외에도 손전등도 가져가기로 했다.
결국 새벽 1시 쯤에나 가게 되었고, 다 같이 13층 건물 단지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가야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 엘리베이터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눌렀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어? 왜 안 움직이지? 궁금하던 그때, 엘리베이터 옆에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새벽 1시부터 5시까지는 열쇠로 엘리베이터를 작동 시켜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열쇠로 작동하라길래 10층 건물 열쇠로도 움직이나 싶어서 한 번 해봤더니 열쇠가 꽂혔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3대 중 왼쪽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 그 엘리베이터는 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오자 마자 7명이 올라탔고, S는 문 쪽에 섰다.
일단 7층을 눌러서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앞은 불이 켜진 곳도 있고 꺼진 곳도 있었는데 7층은 꺼져 있었다.
조금 위축되었지만 S에게 "야, 다 왔어"라고 했다.
일단 7층에서 "어이, 어이, 나 지금 간다"하고 속삭여도 좋으니 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또 "응~ 따라서 와 봐"라고 해야 한다.
다음으로 5층으로 간다. 5층도 불이 꺼져 있었다.
5층에 가서 소금을 뿌린다. 그리고 술을 몇 방울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래로 떨어뜨린다.
이쯤 되니 S도 쫄았는지 "야, 누가 좀 따라와"하며 앞 쪽에 서 있던 친구 둘을 데려갔다.
그러는 동안 날 포함한 친구 넷이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무서웠다. S와 따라간 친구 둘은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앞에 있는 계단 쪽 불을 켜려고 나아갔다.
조금 지나자 지직.. 직하는 소리가 나며 불이 켜졌다.
살짝 잰 걸음으로 가서 술을 떨어뜨리려고 일단 옆으로 ㄱㅆ다.
그리고 S와 친구들이 돌아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올라타고 3층으로 갔다.
그 순간 "쿵.... 쿵- 쿵"하고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가 4층을 지나쳤다.
다들 무서워서 밖을 내다보지 못 했다.
그리고 위잉하는 소리를 내며 3층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3층에 내리면 "어디야? 윗층에 있나?"하고 말한 뒤 계단으로 4층에 올라가면 끝난다.
그런데 S가 내리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 층도 불이 꺼져 있어서 무서웠다.
아무도 S에게 가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친구 중 K라는 친구가 "있잖아.. 다들 눈치 챘어?"라고 말했다.
"뭐?"라고 되물으니 K가 새파랗게 질려서 "몰라?"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난 알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고, S나 다른 친구도 조금 공격적인 말투로 "뭐!!"라고 물었다.
그러자 K가 "우리 처음에 7층에 갔잖아?"라고 했다.
"우리가 7층까지 갈 때 지나간 층이 다섯 층이지?
그 중에 불이 꺼져 있는 층이 몇 층 있었는지 알아?"
하고 K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나는 이 이상 듣기 싫었다.
"없었어. 마지막으로 4층에 가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3층, 4층, 5층을 자세히 내다봤는데
4층만 꺼져 있고, 다른 덴 다 켜져 있었어"라고 했다.
몸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갔다.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다.
K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4층은 꺼져 잇었지만, 스위치 켜는 쪽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어.
계속 누르면서 켰다 껐다하는 것처럼 보였어.."
"너 작작 좀 해. 우리 놀리는 거지?"라고 해도 K는 창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나 더 있어. 여기 3층이어야 하는데 2층에 멈췄어"
라며 K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2층 표시가 보였다.
S가 "아.. 잘못 누른 거겠지. 괜히 쫄아서 3층 말고 2층 버튼을 누른 거야"라고 했지만
다른 친구가 "분명 3층 누르는 거 봤어.."라고 했다.
그러던 중 S가 갑자기 "히익"하고 소리를 냈다.
엘리베이터 입구 쪽으로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쿵-하고 소리가 다가왔다.
무서워서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다른 층을 누르지 않아서인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았다.
무서워서 아무도 문 밖을 내다보지 못 했다.
"빨리 1층 눌러!"라고 소리쳤더니 S가 당황하며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쾅!!! 쿵 쾅!! 쿵 쾅!!!! 쿵하고 소리가 커지며 다가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며 다들 서로 얼굴만 볼 뿐 밖을 내다보지 못 했다.
1층에 도착한 순간 다들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1층인데 어딘가 달랐다.
서둘러 내려보니 층 표시는 3층이었다.
S가 "어? 나 1층 눌렀는데? 나 1층 누르는 거 봤지?"하며 울먹였다.
K는 또 K대로 "왜??? 뭣때문에??"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열쇠를 꽂았지만 엘리베이터가 윗층으로 올라가다가
4층에 잠시 멈췄는지 4층 표시가 계속 나더니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오길 기다렸다.
다른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던 그 때
쿵!!!!! 콩. 쾅. 쾅하고 큰 소리가 났다.
계단 부근에서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오는 소리가 났다. 다들 무서워서 얼어붙었다.
S가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하고 미친 듯이 말했다.
나는 "일단 저쪽 계단으로 도망치자"라고 S를 잡아 뜰며 뒤로 뛰기 시작했더니
다들 그쪽으로 향했다.
3층에서 2층으로.
그때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휙~하고 떨어지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이었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우리 모두 봤다.
빙긋 웃는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쿠우웅!!!!하고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러자 콩.. 콩..하는 소리가 2층에서 다가왔다.
다시 다들 패닉 상태에 빠졌다.
분명 소리가 2층에서 다가오고 있어서, 서둘러 3층으로 올라가 다른 동 계단으로 향했다.
거기서 단숨에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나와서 바로 빛이 밝은 곳을 찾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그리고 출구로 나가려던 순간 날 포함한 네 명이 보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게단에서 사람 목 같은 걸로 공놀이를 하면서
질퍽한 무언가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바로 밖으로 도망쳤다.
일단 편의점까지 도망쳤다.
알바하는 형이랑 면식이 있어서
"투신 자살했을 지도 몰라. 경찰 부르는 게 좋을까?"라고 물었다.
"너희 고등학생이면서 이 시각에 어딜 쏘다니는 거야?"라고 했다.
"일단 정말 떨어졌는지 봤어? 아니면 떨어진 후에 본 거야?"라고 묻는 말에
친구 중 하나가 "됐어.. 상관하지 않는 게 좋겠어"라며 우리 모두에게 말했고
우리도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까지 편의점에서 만화책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날이 밝자 S 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낮까지 자다가 일어난 후 이야기를 나눴다.
"진짜 무서웠어. 출구에서 본 거 기분 나빠서.."라는 이야기를 하자
나머지 셋은 보지도 못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S가 "그거 좀 못 생긴게, 어쩌면 나였을 지도 모르겠다"라고 웃으며 말해, 다들 웃었다.
그리고 1년 후, 수험 공부를 하던 중 13층 단지 건물에서 S가 자살했다.
S 장례식엔 갔는데, 유서에 뭐라 쓰여 있었는지
S 어머니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웠고
"인사만 끝내면 얼른 가렴"라고 하셨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은데
K는 "인사라니.."라며
"우리 S랑 친했는데 못 도와준 게 너무 분해.."라며 오열했다.
나는 대학 때문에 이사하게 되었고, 대학 2학년 때 부모님도 이사하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그 동네에 가지 않았다.
최근 K와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다.
나와 K와 그 친구, 그리고 S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그 무언가를 본 네 사람이었다.
그때 우리 셋이 이야기를 하는데, 넷 다 같은 걸 봤다는 걸 알게 되었다.
S가 죽기 전에 "나 일지도 몰라"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게
날 포함한 우리 셋 모두 공처럼 튕겨지던 그 얼굴이 S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 유서는 못 읽었기 때문에 원인을 알 순 없지만
S는 자살하기 바로 전날까지도 우리랑 평소처럼 놀았고, 별 다른 점도 없었다.
재미로 시작한 담력 시험이었지만, 그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때 위에서 떨어진 사람은 정말 자살한 것이었다.
어쩌면 3층에서 도망치려고 할 때
엘리베이터가 멋대로 올라가 4층에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때
그 사람이 안에 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더욱 더 그 곳에는 얼씬도 하기 싫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