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멍이</b></div> <div><br></div> <div>어디에 쓴들 혼날 건 매한가지 같아서, 그냥 여기 씁니다.</div> <div>오컬트 쪽 이야기는 아니니, 흥미 없으신 분은 그냥 넘기셔도 됩니다.</div> <div><br></div> <div>우리 마을에는 "멍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div> <div>멍이는 일년 내내 피부와 같은 색 옷을 입고,</div> <div>펑크가 나서 타이어가 흐물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달리는</div> <div>해는 없지만 득도 없는 괴짜다.</div> <div>나이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이미 6, 70살 정도 되었고</div> <div>시합 후의 복서 같은 얼굴 모양새였다.</div> <div>말버릇은 "야, 너 누구 집 애냐" (나는 사실 저 소리 말곤 들어본 적 없다)이다.</div> <div><br></div> <div>멍이는 외모 때문인지, 우리 사이에 공포와 동시에 비웃음의 대상이었다.</div> <div>일단 소리부터 말하자면,</div> <div>끼익끼익하고 거의 맛이 간 자전거 소리가 들려오면 우리는 그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div> <div>우리는 짐짓 아무 일 없었단 표정으로 저 멀리서 오는 멍이에게 다가갔다.</div> <div>반드시 자전거를 멈춰 세우는 멍이.</div> <div>거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우리 얼굴을 둘러본다.</div> <div>그리고 항상 하는 그 소리를 한다. "야, 너 누구 집 애냐?"</div> <div>웃으면 지는 거다. 그 말이 끝나면 내달렸다. 대부분은 다들 폭소하면서 웃었다.</div> <div>뒤돌아보지 않았다. 멍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div> <div><br></div> <div>나는 이런 멍이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어제 친구와 미술관에 갔는데, 어느 작가의 조각전이었다.</div> <div>친구는 가구 회사에서 일하는 햇병아리 조각가(라고 부르면 친구는 화냄)였는데</div> <div>가끔 친구 손에 끌려서 이런 전시회를 보러 오곤 했다.</div> <div>그 친구는 어릴 때 아줌마가 고추를 만졌다는 슬픈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소꿉친구다.</div> <div>그 친구와 둘이서 미술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div> <div>낡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div> <div>"이봐, 담배 좀 주지 않겠나?"</div> <div>할아버지는 "좋은 담배로구만"라며 내가 드린 담배를 정말 맛있게 피우셨다.</div> <div>헤어질 때 10개피 정도 남은 담배를 드렸더니</div> <div>그 낡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와 친구를 보며 말했다.</div> <div>"너 누구 집 애냐?"</div> <div><br></div> <div>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와 멍이 이야기를 나눴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div> <div>한 번 멍이 이야기가 학교에 파다하게 퍼진 때가 있었다.</div> <div>멍이가 뭔가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div> <div>"멍이"라는 이름이 화제에 오른 것이다.</div> <div><br></div> <div>"멍이"는 멍청이에서 따온 멍이다.</div> <div>다른 곳에서 이사 온 학생 엄마가 학부모회에서 난동을 피웠다고 한다.</div> <div>"저는 별로 상관 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담임이 밑밥을 깔고 말했다.</div> <div>앞머리는 까졌으면서 머리는 길고, 수염이 덥수룩했다.</div> <div>학부형들 사이에서 인기는 없었지만, 나는 우리 담임이 좋았다.</div> <div>"일단 회의에서 나온 문제니까"</div> <div>집에서 고양이를 14마리나 키우는 우리 담임은</div> <div>우리에게 앞으로 멍이를 '본명'으로 부르고, 끝에는 "씨"를 꼭 붙이라고 했다.</div> <div>미래의 햇병아리 조각가가 손을 들었다.</div> <div>"우리는 멍이 본명을 모르는데요"</div> <div>고양이 때문에 이웃들과 다툼이 잦아 이사 생각이 가득한 우리 담임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div> <div>"그럼 알아내야지"</div> <div>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먼저 물어봤지만 "몰라"라며 갑자기 화를 냈다.</div> <div>이웃 아줌마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표정이 안 좋았다.</div> <div>할아버지는 아실 것 같아서, 또 여쭤봤더니</div> <div>"멍청이할 때 멍이지"라고만 할 뿐 그 외엔 모르시는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친구가 조수석에 앉아서 말했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면..</div> <div> 이름이 없다니 대단한 일이야"</div> <div>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멍이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div> <div>멍이라는 별명과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 뿐이었다.</div> <div>우리 사이에서 멍이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였다.</div> <div><br></div> <div>멍이는 냇가에서 가재를 잡아 먹는다.</div> <div>멍이는 달팽이나 벌레도 먹는다.</div> <div>멍이는 떠돌이개나 길고양이도 먹는다.</div> <div>멍이는 길고양이, 떠돌이개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보건소에서 돈을 받는다.</div> <div>멍이는 예전에 천재였다.</div> <div>멍이는 배가 고프면 사람들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납치해서 먹는다.</div> <div>멍이는 강간범이다.</div> <div>멍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자기가 잡아 먹었다.</div> <div>멍이는 사실은 부자다.</div> <div>멍이는..</div> <div><br></div> <div>우리 둘이서 멍이 소문을 기억나는 대로 끄집어내봤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웃기지만, 사실 당시엔 소문 중 몇 개를 믿었고</div> <div>그 때문에 멍이를 무서워하기도 했다.</div> <div>그리고 평소에 우리가 보는 멍이와 소문 속 멍이의 차이가 참 우스웠다.</div> <div>맹세컨대 멍이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아니었고,</div> <div>적어도 내가 아는 한 멍이가 사건을 일으킨 적도 없다.</div> <div>그저 우리는 이 소문 중 딱 하나, 진상을 알게 된 게 있다.</div> <div><br></div> <div>우리가 고등학생일 때 일이다.</div> <div>그리고 이것은 멍이와의 마지막 기억이기도 하다.</div> <div>친구는 고등학생 때, 마을 편의점에서 알바했었다.</div> <div>알바하다가 보면 가끔 멍이가 오기도 했다는 것이다.</div> <div>멍이는 항상 커다란 설탕을 사 갔다.</div> <div>많을 때는 5키로 짜리, 적을 때도 3키로는 사갔다.</div> <div>시간이 남아돌던 내가 친구 말을 듣고 멍이 뒤를 쫓자고 했다.</div> <div>친구도 그러고 싶었는지 다음 날 학교 땡땡이치고 그 부근을 돌아다녔다.</div> <div>멍이는 금방 보였다. 그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div> <div>그때 나는 내가 멍이에 대한 일을 잊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div> <div>친구가 말했다.</div> <div>"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나 멍이 집 몰라"</div> <div>멍이 집은 마을을 지나가는 도랑 위에 있었다.</div> <div>땅쪽으로 뻗은 부분은 1/3 정도 되고, 나머지 2/3 정도는 도랑 위에 얹어져 있었다.</div> <div>정말 작은 오두막이었다.</div> <div>멍이는 길 위(현관 나오면 바로 길)에서 화덕에 가재를 굽고 있었다.</div> <div>노인이 길바닥에서 가재를 굽는 현실적이지 않은 풍경이었다.</div> <div>나는 봐선 안 될 걸 본 기분이 들어서 "그만 가자"고 친구에게 말했다.</div> <div>그때 멍이가 우리 쪽을 봤다.</div> <div>"야, 너 누구 집 애냐"</div> <div>우리는 뛰어서 도망쳤다.</div> <div>항상 하는 말에, 항상 하던 뜀박질. 그런데 이번에 우리는 웃지 못 했다.</div> <div>우리 주변 공기에는 가재 굽고 있던 그 도랑 냄새가 났다.</div> <div><br></div> <div>2년 정도 지나서 해외에서 지내던 때가 있었다.</div> <div>그 사이에 멍이가 죽었다고 했다.</div> <div>멍이는 혼자 살았고, 친인척도 없어서 장례식 때도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div> <div>그때 내가 거기 살았더라면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div> <div><br></div> <div>어릴 때, 어른들이 멍이 이야기를 입에 담는 걸 꺼리던 이유도 모르겠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div> <div>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div> <div>도랑에 세운 오두막에 멍이를 살게 하고, 가재를 먹으며 살게 한 것은 아마 우리들 때문이다.</div> <div>누군가가 나에게 멍이 이야기를 물으면, 나도 밝은 표정을 짓긴 힘들 것이다.</div> <div>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과연 어떻게 하면 좋을까.</div> <div>학부형 때처럼 본명 뒤에 ~씨를 붙여서 부르면 됐던 걸까?</div> <div>"멍이 같은 존재도 있는 법이지"라고 말하며 친구가 내렸다.</div> <div>우리는 여전히 생각이 짧다.</div> <div>나는 적어도 멍이를 마지막까지 기억해주고 싶어졌다.</div> <div>차 안에 남겨진 그리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다가</div> <div>나는 내일 발렌타인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