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방공호 흔적</b></div> <div><br></div> <div>어느 날 친구 몇몇과 우리 집 근처에서 놀다가</div> <div>숨바꼭질을 하게 되었는데 N이 술래가 되었습니다.</div> <div>사실 전 저만의 비밀 장소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 숨기로 했습니다.</div> <div><br></div> <div>비밀 장소란 건 다름 아닌,</div> <div>논두렁에 있는 낡은 방공호였습니다.</div> <div>그 방공호는 땅을 파서, 나무를 엮어 단단히 해둔 것 뿐이었는데</div> <div>부모님은 항상 거기 들어가지 말라고 했었지만</div> <div>사실 전 그 안에 양초도 갖다 놓고, 만화책도 몇 권 갖다 놔서</div> <div>완전 저만의 비밀 기지였거든요.</div> <div><br></div> <div>낡아서인지 입구 쪽은 좀 무너져서</div> <div>저 같은 어린 애도 쭈그려서 들어가지 않으면 못 들어갈 정도였습니다.</div> <div>입구에서 2미터 정도 안으로 가면 1평 조금 넘는 공간이 있는데</div> <div>거기 제가 양초라 만화책을 넣어뒀지요.</div> <div><br></div> <div>겨우 겨우 안으로 들어가서 양초에 불을 켜서 만화책을 봤습니다.</div> <div>방공호 안은 흙을 잘 밟아서 단단하게 만들어둔 지라</div> <div>여름에도 시원하고, 서늘한 땅의 기운이 스며나와 상쾌할 정도였습니다.</div> <div>한참 지나자 저 멀리서 N 목소리가 들렸습니다.</div> <div><br></div> <div>"내가 졌어! 못 찾겠다 꾀꼬리!"</div> <div>저는 승리에 도취되어 양초의 불을 끄고 방공호에서 나가려고 했습니다.</div> <div>그때 갑자기 바삭바삭바삭소리가 나더니</div> <div>등에 갑자기 묵직한 게 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div> <div>갑작스런 일에 당황했습니다.</div> <div>입구가 약 1미터 앞이었는데, 저는 흙 속에 파묻혀 꼼짝도 못 할 상태가 되었습니다.</div> <div>앗, 큰일이다.</div> <div>저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큰 소리 쳤습니다.</div> <div>"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나 여깄어!!!"</div> <div>무서워서 거의 비명 같은 목소리로 미친 듯이 소리쳤습니다.</div> <div>하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제 목소리만 들릴 뿐, 방공호 안은 고요할 뿐이었습니다.</div> <div>아무리 소리쳐봤자 밖에서 제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아서,</div> <div>친구가 제발 어른들을 데리러 갔기만을 빌면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어둠과 흙 무게로 인한 공포심은 의외로 없었습니다.</div> <div>그보다 숨이 좀 막혀서, 어린 마음에 '이러다 죽나..' 싶었습니다.</div> <div>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div> <div>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div> <div>그때까진 제 희미한 숨소리와</div> <div>몸을 움직이다보니 흙더미가 조금 무너지는 소리 밖에 안 들렸는데</div> <div>분명 다른 소리가 섞여 들려온 겁니다.</div> <div>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아이 목소리 같았습니다.</div> <div><br></div> <div>"다 숨었니?"</div> <div>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아이 한 둘이 아니라, 수 많은 아이가 일제히 말하는 느낌이었어요.</div> <div>"이제 다 숨었니? 다 숨었니?"</div> <div>한참 더 그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순간 딱 멈췄습니다.</div> <div>바로 제가 마음 속으로 "다 숨었다~"라고 생각했을 때였습니다.</div> <div>그러자 이번에는 누가 제 발을 만졌습니다.</div> <div>발만 만진 게 아닙니다. 몸, 팔, 얼굴..</div> <div>온 몸을 차가운 손 같은 게 더듬 더듬 만지는 겁니다.</div> <div>그 손도 점점 늘어났습니다.</div> <div>이건 정말 무서워서 비명을 꽥 질렀습니다.</div> <div>제가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도 손이 점점 늘어나더니</div> <div>방공호 안으로 절 잡아당기려는 겁니다.</div> <div>그 손은 절 흙더미에서 쑥 잡아 빼내더니 제 몸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그리고 제 귓가에 속삭였습니다.</div> <div><br></div> <div>"찾 았 다"</div> <div><br></div> <div>저는 기절했던 것 같습니다.</div> <div>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집 거실에 있었습니다.</div> <div>제 곁에는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가 걱정하고 계셨습니다.</div> <div>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안 보이니까, 친구가 집에 가서 말했나 봅니다.</div> <div>혼구멍이 낫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div> <div>입구가 무너져서 못 나왔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입구가 멀쩡하다는 겁니다.</div> <div>분명 입구가 무너져서 전 흙더미에 파묻혔는데 말이에요.</div> <div><br></div> <div>이튿 날, 확인하러 가보니 정말 입구는 멀쩡한 게 아니겠어요.</div> <div>마치 입을 쩍 벌리고 절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div> <div>그 후 다신 그 방공호 근처에 가지 않았습니다.</div> <div><br></div> <div>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전쟁 중에 식량을 모두 군대에 빼앗긴 적이 있었는데</div> <div>입을 줄이기 위해 그 구멍에 아이들을 가둬서 아사시켰다고 합니다.</div> <div>아이 몇 명을 그 구멍에 가뒀다가 한 달 정도 방치한 후 시체를 꺼내고</div> <div>다시 다른 아이들을 가두고..</div> <div>계속 그랬다고 합니다..</div> <div>제 사고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구멍은 완전히 막아버렸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