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숯가마</b></div> <div><br></div> <div>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이다.</div> <div><br></div> <div>30년 정도 전, 아버지는 직접 숯을 만드셨다.</div> <div>산 속에 만들어둔 숯가마로 상수리 나무나 삼나무 숯을 구웠다.</div> <div>한 번 굽기 시작하면 한 나흘 정도 작업하는 동안,</div> <div>가마가 있는 산장에서 지내셨다.</div> <div><br></div> <div>그 날은 해질녘부터 불을 넣었는데,</div> <div>구운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가마 안에 좀처럼 온기가 돌지 않았다.</div> <div>이때 당황하면 본전도 안 되니 아버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나뭇가지, 장작을 지피며</div> <div>풀무를 밟으면서 불을 지키셨다.</div> <div><br></div> <div>밤이 깊어지고, 주변은 고요해져서 장작 타는 소리만 울려퍼졌다.</div> <div>타닥... 타닥... 타닥...</div> <div>바스락...</div> <div>뒷 덤불에서 소리가 났다.</div> <div>짐승인가 생각하며 돌아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div> <div>타닥... 타닥... 타닥.. 타닥...</div> <div>바스락.... 바삭바삭바삭.....</div> <div>덤불 안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div> <div>이때 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 직감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div> <div>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 바삭</div> <div>숯가마 주변을 도는 소리가 났다. 예삿일이 아니었다.</div> <div>아버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불만 쳐다보셨다.</div> <div>바삭...</div> <div>"어이.. 뭐하시는가?"</div> <div>소리가 그쳤다 싶었더니, 아버지 어깨 너머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div> <div>친근해보이는 말투였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div> <div>아버지가 아무 대꾸도 없자, 그가 계속 말했다.</div> <div>"혼자 있는가?" "왜 불 옆에 있는가?" "숯을 굽고 있구만?"</div> <div>바로 뒤에서 소리가 났다. 숨결마저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div> <div>아버지는 뒤돌아보고 싶은 본능과 필사적으로 싸우셨다.</div> <div><br></div> <div>소리는 계속 들려왔다.</div> <div>"여기 전화기 있는가?"</div> <div>뭐? 전화기?? 이상한 질문을 받자, 아버지는 살짝 고민했다.</div> <div>휴대전화가 없는 시대이니 이런 산속에 전화기가 있을리 만무했다.</div> <div>멍청한 질문에 아버지는 살짝 긴장이 풀렸다.</div> <div>"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div> <div>"그렇구만"</div> <div>문득 뒤에서 기척이 사라졌다.</div> <div>잠시 간격을 두고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div> <div>적막하고 울창한 수풀이 있을 뿐이었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다보니 새삼 공포가 밀려들었다.</div> <div>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렇다고 불 곁에서 떨어질 수도 없었다.</div> <div>염불을 외며 불을 계속 지키다보니 동쪽 하늘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div> <div><br></div> <div>주변이 식별될 만큼 밝아지자</div> <div>할아버지가 도시락 두 개를 가지고 산에 올라오셨다.</div> <div>"좀 어떠냐?"</div> <div>"어젯밤부터 계속 지피고 있는데 가마 안에 열기가 돌지 않아요"</div> <div>어제 있었던 이상한 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div> <div>"어디 한 번 보자"</div> <div>할아버지가 가마 안을 도시며 굴뚝 연기에 손을 대며 말했다.</div> <div>"머지 않아 열기가 돌겠네"</div> <div>그대로 온도를 확인하려고 가마 위에 손을 대셨다.</div> <div>"여긴 아직 차갑구먼..."</div> <div>그러며 숯가마 천장에 올라타셨다.</div> <div>쾅</div> <div>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마 천장이 무너지고, 할아버지가 숯가마 안으로 떨어지셨다.</div> <div>아버지는 서둘러 할아버지를 구하려고 했지만</div> <div>발 디딜 곳이 없는데다 연기가 자욱하고 재가 타올라 잘 보이지 않았다.</div> <div>아버지는 화상을 입으면서 할아버지를 구하려고 가마 위에 올라섰다.</div> <div>가마 안은 지옥불처럼 새빨갰다.</div> <div>진작부터 불이 가마 안에 다 돌았던 것이다.</div> <div>악전고투하다가 겨우 겨우 할아버지를 끌어냈을 때는</div> <div>얼굴과 가슴까지 새카맣게 타서 이미 숨을 쉬지 않으셨다.</div> <div><br></div> <div>눈 앞에서 벌어진 참극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아버지는 한동안 흐릿하게 계셨다.</div> <div>하지만 곧 정신을 다부잡고 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하셨다.</div> <div>할아버지 시체를 업고 경사진 산길을 내려가는 건 힘들 것 같았다.</div> <div>아버지는 혼자서 한 시간 정도 할아버지 트럭을 세워둔 길가까지 내려왔다.</div> <div><br></div> <div>마을 사람을 데리고 숯가마까지 돌아와보니, 할아버지 시체가 이상했다.</div> <div>새카맣게 탔던 상반신이 백골로 변해 있었다.</div> <div>마치 빨아먹은 것처럼 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div> <div>그와 대조적으로 하반신은 장기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div> <div>일반적으로 곰이나 들개들은 사냥감의 장기부터 먹는다.</div> <div>하지만 이 주변에는 그런 육식 동물 같은 건 살지 않았다.</div> <div><br></div> <div>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시체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div> <div>그럼에도 굳이 그 말을 입에 담는 자는 없었다.</div> <div>묵묵히 할아버지 시체를 옮겼다.</div> <div>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div> <div>아버지는 깨달았다. 이건 터부시 되는 일이구나 하고.</div> <div><br></div> <div>어젯밤 아버지를 찾아온 방문자는 대체 누구였을까.</div> <div>할아버지 시체를 손상시킨 건 누구일까.</div> <div>그 질문에는 아무도 답하지 못 한다. 아무도 입에 담을 수 없다.</div> <div>"말해선 안 되는 게야"</div> <div>라고 마을 노인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한다.</div> <div>할아버지 시체는 들개에게 먹힌 걸로 처리되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