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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3024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409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3/17 23:01:46
    http://todayhumor.com/?lovestory_93024 모바일
    [BGM] 나는 애를 써도 잠이 들지 못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최명란, 재




    먼지는 오래될수록 가볍다

    오래 허공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활활 타고 남은 재는 먼지보다 무겁다

    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의사가 하얀 보자기에 곱게 싼 뼈의 재를

    텁석 안겨 주었다

    산사람처럼 뜨끈하고 묵직한 재를 처음 들어봤다

    놀랍다 재는 먼지처럼 가벼울 줄 알았다

    화구 입구에서 밀려나온 망자의 신발을 태우려

    겨울 강 얼음판 가장자리에서

    휘발유를 끼얹고 낯 뜨거운 불을 지핀다

    신발은 타지 않고 얼음만 불에 탄다

    화장장에서 따라온 꽁꽁 언 발이 탄다

    아무래도 신발은 재를 남기지 않는다

     

     

     

     

     

     

    2.jpg

     

    서덕준, 여름 증후군




    여름의 빛깔이 당신을 관통합니다

    여전히 당신의 아름다움은 잦습니다


    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드나들어요

    치맛단처럼 나풀거리는 모습에

    나는 이따금 더워집니다

    더운 마음은 쉽사리 식지 않죠

    나는 여름 탓을 하기로 해요


    밤새 당신을 예찬하는 나의 밤색 스프링 노트처럼

    당신의 눈동자가 붉어요

    당신의 눈빛이 나를 감금하고

    세상의 모든 들꽃들이 당신의 향기를 모방합니다


    여름은 여러모로 당신과 닮았습니다

    어느덧 도둑처럼 찾아든다든가

    아니면 나를 덥게 만든다든가

     

     

     

     

     

     

    3.jpg

     

    진혜진, 수상한 색맹




    그의 눈길에 닳아 사라지는 것들은 살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초록에 묻힌 단풍잎을 여럿의 불면으로 본다


    색이 색을 놓치고

    그는 그림 앞에 서 있어도 그림이 없다

    물방울 눈을 뜨고 있어도 오전 10시의 침실은 캄캄하고


    간밤의 난반사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덧칠하면

    와인을 들고

    체리를 물고

    살바도르 달리는 달리 모르는 달리도 달리


    한 사람의 초록 아침과 또 한 사람의 붉은 저녁이 만나는

    그곳의 색깔이 궁금하다


    색의 앞뒤를 만져볼 수 있을까


    빨강을 해방시키는 햇살이 미술관으로 뛰어든다


    초인종 소리, 고양이 소리, 거꾸로 흐르는 시계 소리, 여자의 서성이는 구두 소리

    초록 초록 사라지면


    그가 빨강 빨강으로 살아지는

     

     

     

     

     

     

    4.jpg

     

    김소연, 편향나무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백년은 살아야겠지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


    용기라는 말을 자주 쓰는 자는 모두 비겁한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잘 읽는 자는 모두 적이 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고쳐 말하고만 싶었고


    작년의 감이 새까맣게 매달려 있는 사월의 감나무를

    빨랫줄을 꽉 물고 있는 빨래집게들을

    등에 난 흉터를

    아까 본 그 사람을

    거북이처럼 걷던 그 사람을


    거북이는 등이 있어서 다행이고

    같은 맥락에서

    거북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고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나를 배웅하기 위하여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얼굴을 버리고 돌아와 얌전하게

    생활을 거머쥐는 나에게로 벚꽃잎들이 달라붙을 때

    얇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다면

    진짜로 미칠 수 있겠니

     

     

     

     

     

     

    5.jpg

     

    유희경, 불면




    그곳엔 벚꽃이 하도 핀다고

    삼사월 밤이면 꿈을 꾸느라 앓고 앓아

    두 눈이 닳을 지경이라고 당신이 그랬다

    경청하는 두 귓속으로 바람이 일고 손이 손을 만났다

    남은 기척 모두 곁에 두고 싶었던 까닭에

    나는 애를 써도 잠이 들지 못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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