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규칙</b></div> <div> </div> <div>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집안 이야기이다.</div> <div>조금 긴 편입니다.</div> <div> </div> <div>세토 내해에 접한 곳에, 지역 내에서는 조금 알려진 대대로 장사하는 집안이 있었다.</div> <div> </div> <div>하지만 왠일인지 그 집은 후계자로 키울 사내 아이 복이 없어서</div> <div>남아가 태어나도 금방 죽는데다, 다른 집에서 양자로 들여도 단명하고,</div> <div>결국 마지막 후계자도 죽는 바람에 대가 끊어졌다.</div> <div> </div> <div>집안에서는 핏줄 관계는 전혀 없는 죽공예를 하는 집의 아이를 양자로 들여서</div> <div>새로 집안을 일으켜보려고 했다.</div> <div>양자가 된 소년은 근면 성실하여 장사를 열심히 하여 가게가 번창했다.</div> <div>소년이 청년이 되어 아내를 맞이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 하고 아내가 죽었다.</div> <div>다시 아내를 맞이했지만, 변사하고 말았다. 역시 결실은 맺지 못 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세 번째 아내를 맞이했다.</div> <div>그 아내는 집에서 지참해온 부처님을 모시는 신앙심이 싶은 미인이었는데</div> <div>꽤나 드센 면도 있었다.</div> <div>양자로 온 그 사내는 드세면서도 아름다운 아내에게 반해서,</div> <div>좋을 대로 하라고 두었다.</div> <div>세 번째 아내는 죽는 일 없이 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를 낳았고</div> <div>그 중 두 명이 남아인지라 양자로 온 사내는 후계자가 생겼다며 기뻐했다.</div> <div>하지만 행복이 그리 이어지지는 않았다.</div> <div> </div> <div>양자로 온 사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 병으로 죽고 말았다.</div> <div>주인을 잃은 가게 고용인들은, 금품을 훔쳐 달아났고</div> <div>이름 날리던 가게는 온데간데 없이 황폐해지고, 그 일가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다.</div> <div> </div> <div>남겨진 처는 굳건한 불심이 있어,</div> <div>이렇게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건 먼 옛날 안 좋은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div> <div>본토에서 떨어진 어느 곳에, 신통력이 있는 승려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집으로 초대하였다.</div> <div> </div> <div>한 장년의 승려가 그 집으로 찾아왔다.</div> <div>승려가 불경을 다 외자, 처에게 말했다.</div> <div>"패배하고 도망친 무사 귀신이 있네. 겐페이 전쟁 시절 도망친 무사인 것 같은데</div> <div> 이 곳이 예전에 전쟁터가 아니었는가?"</div> <div>그 말을 들은 처는 새파랗게 질렸다.</div> <div> </div> <div>이 지역 일대는 예전 겐페이 전쟁 때</div> <div>빈사 상태의 무사들이 육지에 올라오게 된 땅이었는데,</div> <div>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div> <div>"아마 이 땅에서 죽은 패잔병일 걸 세. 공양받고 싶어서 그러는 게야"</div> <div>처는 얼른 물리쳐달라고 했지만, 승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div> <div> </div> <div>"물리친다는 건 귀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꼴일세.</div> <div> 나는 성불하지 못 한 귀신을 많이 봤지만, 액풀이를 당한 귀신은 많은 상처가 몸에 남네.</div> <div> 그저 성불하고 싶을 뿐인데 그렇게 하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닌가.</div> <div> 자네는 부처님을 섬기는 사람 아닌가.</div> <div> 어디 한 번 공양해보는 건 어떠신가? 덕행 쌓는 셈 치고.</div> <div> 나도 되도록 도와줌세"</div> <div> </div> <div>원래 불심이 깊었던 처는 그 말씀을 이해하고,</div> <div>집 정원에 패잔병들을 공양하는 공양탑을 세웠다.</div> <div>처는 불경을 외며 패잔병들의 귀신을 계속 공양하였고,</div> <div>그 후 그 일족에 나쁜 일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div> <div> </div> <div>세 번째로 맞이한 불심 깊은 처는 예전에 노쇠하여 죽었지만,</div> <div>그녀는 생전에 몇 번이나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div> <div> </div> <div>"내 말 잘 듣거라. 집을 다시 세우게 되더라도</div> <div> 반드시 공양탑은 옮겨서라도 계속 공양하려므나.</div> <div> 행복하고 평온하게 살고 싶다면 반드시 그리하거라.</div> <div> 세상에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은 법이란다.</div> <div> 우리의 상식이 모든 것에 통한다는 여기지 않도록 하렴"</div> <div> </div> <div>이윽고 세토 내해 근처에 살던 패잔병 귀신을 공양하는 일가의 집을 새로 세웠지만,</div> <div>돌아가신 세 번째 처의 말대로, 옥상으로 공양탑을 옮겼다.</div> <div>다들 일족이 번영한 것은 그 세 번째 처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지키고 있다.</div> <div>그리고 또한 일족은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다.</div> <div>하지만 태어나는 아이들은 남자보다 여자아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경향이 있다.</div> <div> </div> <div>같은 지역 일대에는 상업을 하는 그 일족 집안 외에도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났고,</div> <div>그 집들 역시 공양탑을 세워 자손들이 공양을 계속 하고 있다.</div> <div>미신이라고 치부하여 선대의 말을 듣지 않고 공양을 관둔 집은</div> <div>신기하게도 가세가 기울어 파산하거나, 병으로 즉사하는 등</div> <div>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div> <div>패잔병 귀신을 공양하는 것이 바로 편안하게 사는 법이었다.</div> <div>그것이 세토 내해의 잔잔한 바다가 보이는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div> <div>재앙을 피하기 위한 규칙인 셈이다.</div> <div> </div> <div>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다시 참극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div> <div>하지만 사람이란 태평성대가 이어지면 그것이 당연한 줄 아는 경향이 있으니</div> <div>이 규칙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모르겠다.</div> <div>하지만 재앙의 원흉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div> <div> </div> <div>이것이 내가 아는 일족 이야기이다.</div> <div>그 일족은 우리 아버지 본가 이야기입니다.</div> <div>세 번째 처는 아버지의 어머니, 즉 제 할머니이십니다.</div> <div>긴 이야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div> <div> </div> <div>덧.</div> <div>실은 엄마 선조 중 패잔병이 있었다고 합니다.</div> <div>전쟁에 져서 산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엄마 본가는 산속에 있습니다.</div> <div>칼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합니다.</div> <div> </div> <div>엄마 집안에도 사내 아이는 요절하여 대를 이을 후계자가 적은 집안 입니다.</div> <div>기묘하게도 비슷한 집안끼리 인연을 맺고, 그 혈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div> <div>저로서는 이것이 우연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