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난간의 소녀</b></div> <div><br></div> <div>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유서 깊은 학교였다.</div> <div>지금 고등학생인 내가 다닐 때도 이미 개교 110년 이상 되었었고,</div> <div>아마 잘못 세지 않았더라면 올해 개교 126주년이 되었을 거다.</div> <div>그런 낡은 학교에도 다른 학교와 똑같은 괴담이 있었다.</div> <div><br></div> <div>뭐, 음악실에 있는 웃는 베토벤 괴담,</div> <div>과학실에 있는 뛰어다니는 인체 모형 인형 등등</div> <div>어느 학교에나 다 떠도는 그런 괴담도 있었는데</div> <div>그 중에서 우리 학교 오리지널 괴담이 딱 하나 "난간의 소녀"라는 게 있었다.</div> <div><br></div> <div>괴담 내용은 이렇다.</div> <div>우리 학교에서는 이젠 사용 금지시킨 바깥 계단이 있다.</div> <div>말 그대로 벽 밖에 붙어 있는 계단인데 콘크리트로 대충 발라서 만든 계단이다.</div> <div>그리고 낮고 허술한 난간이 달려 있다.</div> <div>원래는 지진이나 화재 발생 시에 피난용으로 만들어졌고, 그렇게 사용되었는데</div> <div>행여나 애들이 떨어지면 큰일나지 않겠냐는 말이 나와서,</div> <div>학교 안에 따로 피난 계단을 만든 이후부터는 아무도 쓰지 않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예전에 학교가 나무로만 지어져 있을 때, 바깥 계단은 누구나 쓰던 계단이었고</div> <div>학생들도 오르락 내리락했다고 한다.</div> <div>그런데 어느 반에 심한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이 있었다.</div> <div>그 아이는 쉬는 시간에 반에 남아 있으면 너무 힘드니까</div> <div>바깥 계단 난간에 기대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div> <div>그 당시에 이미 학교는 꽤 많이 낡았던 때인데, 심지어 나무로 지은 건물이다 보니</div> <div>여기저기 많이 상해서 부숴지기도 했다.</div> <div>어느 날, 평소처럼 바깥 계단에 나간 그 여자 아이는</div> <div>난간이 썩은 것도 모르고 기대고 말았다.</div> <div>콰직. 몸이 앞으로 쏠리는 걸 느꼈을 때 이미 학교 4층에서 공중으로 내던져졌다.</div> <div>갑작스럽게 몸이 붕 뜨는 것도 순간, 그 소녀는 땅에 추락하고 말았다.</div> <div>즉사였다고 한다.</div> <div>피투성이로 소녀는 죽었다.</div> <div><br></div> <div>그 이후부터 "바깥 계단"에 피투성이 소녀 귀신이 나타나서</div> <div>바깥 계단에 다가오는 사람들을 밀쳐서 죽인다고 한다.</div> <div>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사람이 새로 '난간의 소녀'가 되어 지박령이 되는 것이다.</div> <div><br></div> <div>이런 소문을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들었다.</div> <div>냉소적인 어린이였던 나는, 그런 괴담은 손톱만큼도 안 믿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역시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난 일이다.</div> <div>"그래서 말이야, 그 피투성이 난간 소녀는 바깥 계단에 온 사람을 떨어뜨려 죽인대"</div> <div><br></div> <div>그날도 반에선 난간 소녀 이야기로 떠들썩했다.</div> <div>학교 건물 뒤에 있는 바깥 계단에 출몰한다는 난간 소녀.</div> <div>우리 학교 7대 괴담 중 하나인데,</div> <div>다른 학교에도 떠도는 그런 흔한 괴담이 아니라 우리 학교에만 있는 괴담이란 점에서 인기가 많았다.</div> <div>하지만 나와 우리 무리는 그 괴담을 전혀 믿지 않았다.</div> <div>왜냐하면 그 바깥 계단이 우리 아지트였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바깥 계단은 학생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고, 자물쇠가 걸려 있을 뿐이라</div> <div>자물쇠를 빼내기만 하면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div> <div>학교 건물 뒤이기도 하고, 난간의 소녀 괴담도 있어서</div> <div>바깥 계단 쪽에는 아무도 얼씬도 하지 않았다.</div> <div>선생님들도 딱히 감시하는 것도 아니라서 딱 좋은 아지트였다.</div> <div>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바깥 계단에서 놀곤 했다.</div> <div>매일 그렇게 놀아댔는데도 난간 소녀는 그림자도 못 봤고</div> <div>애당초 냉소적이라 귀신 같은 건 없다고 믿던 우리는</div> <div>무섭다며 꺅꺅 시끄럽게 구는 여자애들을 무시하곤 했다.</div> <div><br></div> <div>그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바깥 계단에 모여서 별별 이야기를 다 하고 있었다.</div> <div>우리는 항상 4층 난간에서 놀곤 했다.</div> <div>우리 반이 3층이기 때문에 3층에서 바깥 계단으로 나간 후, 한 층 올라가서 놀았다.</div> <div>왜 굳이 한 층 더 올라갔냐면, 그냥 경치가 예뻐서...인 것 같은데</div> <div>잘 기억은 안 나지만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올라갔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div> <div><br></div> <div>막 떠들다가 한 두 사람씩 집에 돌아가고</div> <div>마지막에 나와 단 둘이 남은 친구도 돌아가겠다고 말했다.</div> <div>문득 보니 하늘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div> <div>내려다보이는 학교 앞 거리 가로등도 불이 켜져 있었다.</div> <div>나는 혼자 남아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div> <div>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에 가는 게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div> <div>조금만 더 어둑해지면 그때 가야지 하고 노을 진 하늘 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학교에서 울려퍼지는 떠들썩한 소리가 전연 들리지 않았다.</div> <div>교실 마다 불이 다 꺼지고, 가끔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만 울렸다.</div> <div>그런 정적 속에서 문득 "난간 소녀" 괴담이 떠올랐다.</div> <div>소문이 맞다면 그 소녀는 죽던 그 순간 여기 있었던 셈이 된다.</div> <div><br></div> <div>4층 난간. 바로 여기.</div> <div>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 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div> <div>귀신 같은 건 안 믿어도, 역시 혼자 있다보면 어딘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div> <div>그래서 나는 그 소녀 시체가 곤두박질 친 땅을 난간에서 내려다봤다.</div> <div><br></div> <div>털이 쭈뼛 섰다.</div> <div>아래에 어떤 소녀가 서 있었다.</div> <div>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 1층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div> <div>어쩌다보니 집에 안 가고 남은 학생이, 어쩌다보니 아무도 없는 학교 건물 뒷편에 와서</div> <div>어쩌다보니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div> <div>하지만 학교에 있던 학생은 거의 없었고,</div> <div>이런 시각에 학교 건물 뒷편에 오는 학생도 없을 뿐더러,</div> <div>행여나 있다손 치더라도 우연히 내 쪽을 올려다 볼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div> <div>내 마음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div> <div>"저건" 그런 게 아니라고.</div> <div><br></div> <div>나는 자석에 끌리듯 문에 착 달라붙어서 손잡이를 돌려댔다.</div> <div>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div> <div>아아, 여긴 4층이었다. 문을 따고 나온 건 3층이었다.</div> <div>아래로 내려가려다 나도 모르게 주저 앉았다.</div> <div>혹시나, 저 소녀가- "난간의 소녀"가 올라오면 어쩌지?</div> <div>딱 마주치는 거 아냐? 저 붉은 옷을 입은 소녀가..</div> <div>아니, 원래는 붉은 색 옷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div> <div><br></div> <div>-피투성이의 난간 소녀가 바깥 계단에 있는 사람을 떨어뜨려서 죽인대-</div> <div><br></div> <div>무서워. 무섭지만 여기 계속 있을 수도 없다.</div> <div>그런 생각에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옮겨 계단을 내려갔다.</div> <div>3층 난간 역시 고요했다.</div> <div>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쳐다봤지만 누가 올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div> <div>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3층 문고리를 잡았다.</div> <div>바로 그때였다.</div> <div><br></div> <div>사람의 눈이란 신비해서, 주변 시야라는 게 있다.</div> <div>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 주변에 있는 것도 또렷하진 않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 말이다.</div> <div>문고리를 바라보던 내 시선 한 구석에 계단을 끼고 바로 옆에 사람이 있었다.</div> <div>붉은 옷을 입은 실루엣이 보였다.</div> <div>조금 전에 볼 때 분명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div> <div>안개처럼 홀연히 실루엣이 나타났다.</div> <div>문고리를 잡은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div> <div>내 눈이 바라보는 건 문고리였지만, 내 뇌는 그 실루엣을 보고 있었다.</div> <div>실루엣은 꼼짝하지 않았다. 내 쪽을 향하며 멈춰 있었다.</div> <div>오랫동안 꼼짝 못 하다가, 큰 맘 먹고 문을 열고 후다닥 도망쳤다.</div> <div><br></div> <div>다음 날 내가 겪은 일을 친구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div> <div>그 후로도 몇 번 바깥 계단에 가봤지만, 다신 그 소녀와는 만나지 못 했다.</div> <div>그게 정말 '난간 소녀'였다면, 왜 날 밀어 떨어뜨리지 않았던 걸까?</div> <div><br></div> <div>소문에 따르면 "난간 소녀"에게 떠밀려 죽은 사람은, 다음 "난간 소녀"가 된다고 했다.</div> <div>그럼 내 생각에 "난간 소녀"가 떠밀어야 하는 건, 일단 '소녀'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div> <div>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내가 그 날 본 게 정말 '난간 소녀'였다면</div> <div>그 소녀는 아직도..</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