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치즈에</b></div> <div><br></div> <div>꽤 긴 이야기다.</div> <div><br></div> <div>아버지는 원래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div> <div>내 고모인 셈인데, 고모는 태어나고 몇 달 안 되어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div> <div>원인은 알 수 없다.</div> <div>태어나길 바라고 바라던 딸이 죽는 바람에 할머니는 많이 힘드셨다.</div> <div><br></div> <div>그걸 보다 못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프랑스 인형을 선물해줬더니</div> <div>할머니는 그 프랑스 인형에 고모 이름인 '치즈에'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끼셨다.</div> <div>매일매일 쓰다듬어주고, 옆에 두고, 예쁘게 꾸며주며 함께 잤다고 한다.</div> <div><br></div> <div>그 습관을 바꾼 건 내 여동생이 태어난 후부터였다.</div> <div>여자애가 태어났다고 할머니가 매우 좋아하셨다.</div> <div>부모님은 맞벌이라서 대신 할머니가 동생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다.</div> <div>나도 귀여워해주시긴 했지만.</div> <div>그래서 지금까지 사랑받던 치즈에는 할머니 옆이 아니라 불단에 놓이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사진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그냥 불단만 있다.</div> <div>나한테는 조상님께 인사해야 한다고 해서 저녁 식사 전에 술을 들고 가곤 했다.</div> <div>어둡고 약간 싸늘한, 으시시한 방.</div> <div><br></div> <div>초등학교 고학년 떄, 평소대로 술을 바치러 가서 불단 앞에서 합장했다.</div> <div>그때 누군가가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div> <div>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div> <div>핑크 드레스를 입은 치즈에 밖에 없었다.</div> <div>그때 묘하게 무섭기도 했고, 민감한 나이대라</div> <div>나도 모르게 "뭐야. 불만 있으면 덤벼"라며</div> <div>치즈에를 도발했다. 정말 바보 같으니..</div> <div><br></div> <div>거실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치즈에가 날 깨려봤어!"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div> <div>평생 할머니가 그렇게 화내시는 걸 처음 봤다.</div> <div>아빠도 화를 내며 주먹질 하셨다.</div> <div>그날은 사과하고 용서해 주셨다.</div> <div><br></div> <div>문제는 며칠 후였다.</div> <div>휴일이었는데 아직 해가 떠 있을 때였는데, 불단 방이 뭔가 많이 밝았다.</div> <div>어젯밤에 미처 치우지 못 한 술을 치우려고 불단 방으로 들어갔더니 치즈에가 자리에 없었다.</div> <div>평소에 두는 떨어져서 방바닥 위에 떨어져 있었다.</div> <div>손목이 떨어져 있었다.</div> <div>솔직히 나한테 덤비려고 기려고 움직인 걸 지도..</div> <div><br></div> <div>겁이 나서 가족들이 모여 있는 거실에 갔더니</div> <div>할머니가 계셨고, 혼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div> <div>정말 무서웠기 때문에 할머니께 말씀드렸다.</div> <div>내 상태가 보통이 아니었는지 할머니도 걱정이 되어 같이 거실에 가보았다.</div> <div>그랬더니 치즈에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손목도 붙어 있었다.</div> <div>내가 거짓말 한 거라고 혼나려고 할 때 아버지가 오셔서</div> <div>"아 미안. 그거 내가 떨어뜨렸어. 화장실 다녀온 후 돌려놨는데"</div> <div>범인이 저기 있었다!</div> <div>무서워서 울먹거리던 날 보면서 아빠가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div> <div>이번에는 할머니가 날 위로해주고 넘어갔다.</div> <div><br></div> <div>그런데 그날 밤, 할머니가 주무신 후에 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오셨다.</div> <div>"낮에 그 인형 말이다. 내가 되돌려 놨어.</div> <div> 그런데 떨어뜨리진 않았거든.</div> <div> 너 정말 거짓말 한 거 아니지?"</div> <div>아버지 말에 따르면 내가 큰 소리를 내며 불단 방에서 나오는 걸 보고</div> <div>무슨 일인가 하고 불단 방을봤더니 치즈에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단다.</div> <div>다른 식구가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원래 위치에 두었다는 것이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이상한 점은 손목 같은 건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아버지가 말했다.</div> <div>왜 떨어졌고, 왜 손목이 원래대로 붙은 걸까.</div> <div>나는 무서워서 그 후 조상님 사진에 술 올리는 걸 안 하게 되었다.</div> <div>술을 가지고 나와서 객실에서 2,3분 정도 있다가 거실로 돌아갔다.</div> <div>아마 반 년 가까이 술을 올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div> <div>그때 동생이 죽었다.</div> <div>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다.</div> <div><br></div> <div>사인은 원인 불명의 고열이었다.</div> <div>갑자기 열이 확 오르더니 입원하고 돌아오지 못 했다.</div> <div>나는 어쩌면 내가 술 올리는 걸 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지만</div> <div>부모님께도, 할머니께도 말하지 못 했다.</div> <div>죄책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div> <div>동생이 죽은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div> <div><br></div> <div>엄마는 동생이 죽은 게 치즈에 때문이라고 말하기 시작헀다.</div> <div>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이 죽을 때 "치-"하고 울었다고 한다.</div> <div>동생 친구 중에 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없었고,</div> <div>그 이름에 해당하는 건 저 인형 뿐이었다.</div> <div>내가 예전에 한 말 때문일 지도 모르겠지만,</div> <div>엄마도 과민해져서 인형을 버리겠다고 소리쳐서</div> <div>동생 장례식 중인데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div> <div><br></div> <div>그 일이 있은 후, 우리 가족들 사이가 험악해지고 엄마는 친정으로 가버렸다.</div> <div>아버지는 묵묵히 일하고, 할머니는 치즈에를 껴안고 매일 밤 우셨다.</div> <div>아버지는 좀처럼 퇴근하지 않으시고, 할머니는 울기만 하고</div> <div>그때쯤부턴 내가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div> <div><br></div> <div>그러다 할머니가 치매 끼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다.</div> <div>식사 하시고, 방에 틀어박혀서 인형을 껴안고 멍하니 계시며 울고, 울다 지치면 주무시고.</div> <div>식사하세요 하고 부르러 가보니 뭘 드시고 계셨다.</div> <div>뭐 드세요? 하고 여쭤보니 밥이라고 하셨다.</div> <div>무슨 소리지 생각하며 할머니 얼굴을 보면 금색 실이 입에서 나왔다.</div> <div>손에는 반 정도 머리가 뽑힌 치즈에가 들려 있었다.</div> <div>나는 이때 정말 무서웠던 것 같다.</div> <div>황급히 할머니가 토하게했다.</div> <div><br></div> <div>엄마에게 말해봤지만 그런 사람 나는 모른다하며 모른 채.</div> <div>아버지에게 말해서 병원에 입원시키자고 해도 일이 바쁘다며 가주지 않았다.</div> <div>네가 돌보라고 할 뿐.</div> <div>그게 전부였다. 그때 나는 아직 중학생일 뿐이었다.</div> <div>그런데 동생이 죽은 후 우리 가족은 이상해진 거다.</div> <div>술을 바치지 않은 내 탓이라 생각할 때마다.. 할 수 밖에 없었다.</div> <div>학교는 거의 가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치즈에는 할머니 손 안에서 엉망진창이 되었다.</div> <div>머리는 다 뽑히고, 옷은 벗겨지고 마구 잘리고.</div> <div>더러운 이야기라 미안하지만, 오물을 마구 묻히기도 했다.</div> <div>이건 너무 가엽다고 생각해서 뺏아둬도 다음 날엔 할머니가 들고 계셨다.</div> <div>여기저기 막 숨겨봤다.</div> <div>화장실 선반, 부모님 안방, 그리고 신발장까지.</div> <div>밤 중에 "치즈에~ 치즈에~"하고 부르며 온 집안을 돌아다녀 찾으시는 것 같다.</div> <div>그리고 다시 치즈에는 엉망진창이 되었다.</div> <div>불쌍해서.. 어쩔 수 없이 내 방에 두기로 했다.</div> <div><br></div> <div>새벽 3시 넘어서였는지, 할머니가 아침에 치즈에 부르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div> <div>내 방은 2층이라 올라오지도 않으시는데다,</div> <div>치매가 시작된 후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으셨고..</div> <div>하고 안심하면서 치즈에를 넣어둔 옷장을 봤더니</div> <div>옷장 문이 열려 있었다.</div> <div>난 분명 닫아뒀는데.</div> <div>눈에 보이는 곳에 두면 왠지 께름칙하니까..</div> <div>안 보이게 하려고 옷장 안에 넣어두었다. 비닐까지 씌워서.</div> <div>그런데 비닐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div> <div><br></div> <div>머리 속이 엉망진창이었다.</div> <div>이불 안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div> <div>자는 척 할까. 일어나서 확인해볼까.</div> <div>일단 무서웠다.</div> <div>그런데 끼익하고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는 소리였다.</div> <div>위치를 설명하자면 문 / 침대(내 시선→) / 옷장</div> <div>나는 무서워서 문 쪽은 볼 엄두가 안 났다.</div> <div><br></div> <div>그랬더니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div> <div>"치즈에 이런 데 있었니"</div> <div>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생각에 펄쩍 일어났다.</div> <div>그런데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div> <div>치즈에도, 할머니도.</div> <div>무서워서 그냥 자리고 했다. 이건 내 기분 탓이라 생각하기로 했다.</div> <div><br></div> <div>치즈에와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서 죽어있었다.</div> <div>다음 날 내가 발견했다.</div> <div>사인은 질식사였다.</div> <div>할머니 목에 치즈에 머리카락과 잘린 옷과 눈알이 들어 있었고</div> <div>빛이 가득 들어와 찬란한 빛 속에서 할머니는 그렇게 죽어 있었다.</div> <div>행복한 표정이 아니라.. 너무 괴로운 표정으로..</div> <div>눈은 충혈되고, 실금에, 한 손에 치즈에를 꽉 쥐고.</div> <div><br></div> <div>할머니 장례식은 간단하게 치렀다.</div> <div>화장했다. 치즈에도 같이 태웠다.</div> <div>무덤에 넣을 때, 조상들 이름도 다 보이잖아.</div> <div>거기 이미 치즈에(진짜 고모)라고 쓰여 있는 게 기분이 묘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이건 나 나름의 공포인데,</div> <div>고모인 치즈에의 사인은 사실 원인 불명이 아니었다.</div> <div>우리 할머니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div> <div>이유는 알 수 없다.</div> <div>그러고보니 아빠 쪽 친척들과는 왕래가 없더라니, 할머니와 다들 연을 끊은 거였다.</div> <div>이건 장례식에 참석한 친척이 해준 이야기다.</div> <div>왜 경찰에 안 잡혀간 거냐 했더니, 대충 얼버무렸다는 것이다.</div> <div>은폐한 거다.</div> <div><br></div> <div>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4년 째다.</div> <div>나는 고등학교는 안 다닌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div> <div>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div> <div>이 글도 2개월 전부터 쓰던 건데 이제서야 다 썼다.</div> <div>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싶기도 하다. 피곤하고.</div> <div><br></div> <div>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전부 치즈에 고모의 저주였다면,</div> <div>지금 나도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div> <div>굳이 나 같은 걸 파멸시킬 이유가 있나하고 웃음이 난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