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히교 님</b></div> <div><br></div> <div>지금은 접었지만, 우리 외가는 시마네현에서 양계장을 했습니다.</div> <div>매년 여름 방학이 되면 엄마와 누나, 동생, 저 이렇게 넷이서 놀러가곤 했습니다.</div> <div>아빠는 휴가를 받을 수 없어서 매년 혼자 집에 남겨지셨지요.</div> <div>외가는 시마네현의 오치라는 군에 있었는데,</div> <div>좋게 말하자면 자연으로 가득찬 일본의 옛 풍경이 넘실대는 곳이고,</div> <div>한 마디로 깡촌입니다.</div> <div>외가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한테 들러붙어 신나게 놀았습니다.</div> <div>시골이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두 분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고 잠도 일찍 잡니다.</div> <div>새벽 4시에는 일어나셔서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양계장에 모이를 주시고</div> <div>똥도 치우고, 계란을 걷고, 부화기 안도 들여다보며 일을 하시는 한편</div> <div>밭일까지 하시다가 오후 5시 쯤 되면 저녁 식사를 하시고</div> <div>전녁 7시 경에는 맥주 한 잔으로 반주하시면서 졸기 시작합니다.</div> <div>자연히 우리도 저녁 8시에는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눕는다고 졸릴 리 만무하지요.</div> <div>이불 안에서 그날 강에서 놀았던 일이나, 내일 뭐하고 놀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div> <div>잠이 오기는 커녕 말똥말똥해져서 좀체 잘 수가 없었습니다.</div> <div>밤 중에 새카만 천장의 들보를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담고 있자니,</div> <div>우리가 자던 거실 옆,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방의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div> <div>누군가가 복도를 삐걱삐걱 걷는 소리가 났고, 현관을 열고 나갔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다가 약간 졸리기 시작해 멍하니 있었더니</div> <div>얼마 지나지 않아 뻐꾸기 시계가 뻐꾹뻐꾹 12번 울어서</div> <div>아아 벌써 이런 시각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div> <div>그러자 5분 정도 지나 또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div> <div>누군가가 샌들을 벗고 복도를 삐걱삐걱 걷더니</div> <div>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div> <div>외할아버지 아니면 외할머니가 닭이나 밭을 살피러 가셨겠지 싶어</div> <div>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고</div> <div>절 빼고 다들 아침 식사를 마친 상태였습니다.</div> <div>어제 일은 잠이 덜 깬 상태였으니 꿈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그날 밤에 또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있었더니</div> <div>똑같이 밤 중에 누군가가 나갔다가 조금 있다가 들어오는 겁니다.</div> <div><br></div> <div>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div> <div>아무래도 그 누군가는 매일 11시 30분에 나가서, 자정이 지난 12시 5분에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div> <div>낮에 누나나 남동생에게 물어봤지만 둘 다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어른들이 하는 건 뭐든 궁금할 나이였거든요.</div> <div>저는 누가 뭘 하는 건지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div> <div><br></div> <div>5일째 되던 날, 낮 동안 최대한 얌전히 놀면서 체력을 비축해두고 졸리지 않도록 한 뒤</div> <div>그 누군가의 뒤를 밟기로 했습니다.</div> <div>지금까지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 해 힘들었지만</div> <div>안 자려고 마음 먹으니 이게 또 이번에는 잠을 이길 수 없어서</div> <div>하마터면 잠들 뻔 했지만 기척이 느껴져서 겨우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 기척이 현관을 나가길 기다렸다가, 저도 현관을 다가가 샌들을 신고 나갔더니</div> <div>외할아버지가 본가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부화실로 들어가셨습니다.</div> <div><br></div> <div>부화실은 닭이 낳은 계란을 부화길로 따뜻하게 해서 부화시킨 후</div> <div>태어난 병아리를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우는 전용 건물이었는데</div> <div>원래 부화소라고 부르는 게 정식이지만, 외할아버지가 부화실이라고 불렀습니다.</div> <div>저도 몰래 외할아버지 뒤를 따라 들어가보니 안에 불이 꺼져 있고</div> <div>부화기 안에서 새어나오는 꼬마 전구의 희미한 붉은 빛만이 보였습니다.</div> <div>어두컴컴한 곳에서 외할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부화기를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div> <div>그리고 수많은 계란 중 세 개를 꺼내시더니,</div> <div>갑자기 양철 쓰레기통 안에 집어 던지셨습니다.</div> <div>저는 깜짝 놀라 "뭐하세요?"하고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div> <div>외할아버지는 저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쓰러질 듯 하셨지만</div> <div>소리친 사람이 저라는 걸 깨달으시고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div> <div>"뭐야, 너였냐. 사람 놀래키고 그러냐"하고 쓴 웃음을 지으셨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저는 한 번 더 "뭐하세요?"히고 여쭤봤더니</div> <div>외할아버지는 "안 좋은 걸 골라내고 있는 거야"라고 하시더니 또 부화기 안을 들여다보셨습니다.</div> <div>저는 그때까지 부화하기 전의 계란을 솎아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div> <div>"안 좋은 병아리가 있어요?"하고 여쭤봤습니다.</div> <div>외할아버지는 "암만. 솎아내지 않으면 큰일 나지"라고 하시고는</div> <div>부화기 안에서 또 계란을 하나 꺼내셨습니다.</div> <div>저는 계란을 자세히 살펴보려 들여다봤는데,</div> <div>외할아버지가 당황하시더니 "이거 보면 못 쓴다. 눈 망가져"라고 하시더니</div> <div>재빨리 양철 쓰레기통 안에 계란을 집어던지셨습니다.</div> <div>제가 본 계란에는 안에서 병아리가 쪼았는지 크게 금이 가 있었고,</div> <div>머지 않아 병아리가 태어날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div> <div>쓰레기통 안에서 엉망진창으로 터져 있을 게 뻔했기 때문에 그 안을 볼 생각이 안 들었지만</div> <div>외할아버지는 제 눈을 가리시려는 듯 재빨리 뚜껑을 덮으셨습니다.</div> <div><br></div> <div>그때 쓰레기통 뚜껑에 흰 종이 같은 게 붙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div> <div>그게 뭘까 생각하는데 외할아버지가 손목시계를 보시더니</div> <div>"자정이 넘었구만.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아가, 돌아가서 자자"고 하시더니</div> <div>금세 부화실에서 나가려 하셨습니다.</div> <div>저는 밤에 이런 어두컴컴한 곳에 혼자 남아있기 싫었기 때문에 재빨리 따라 나갔습니다.</div> <div>그때 부화실 문 옆에 장난감 같은 게 보였던 것 같은데</div> <div>졸리기도 했고, 무섭기도 해서 내일 볼 심산으로</div> <div>외할아버지와 본가로 돌아가 그날 밤은 외할아버지 이불 안에서 같이 잠들었습니다.</div> <div><br></div> <div>이튿 날, 오전 내내 남동생과 곤충 잡기를 하다가</div> <div>돌아와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딘가가 이상했습니다.</div> <div>아, 맞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같이 계시네.</div> <div>잘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외할아버지와 같이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었습니다.</div> <div>오전 11시 30분 정도부터 외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div> <div>그날은 마을 모임이 있으시다며 아침 일찍 나가시고</div> <div>11시에 술이 취해서 돌아오셨기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하셨던 겁니다.</div> <div>외할아버지는 쌀밥에 찬 보리차를 부어서 말아드셨는데,</div> <div>중간에 식탁에 엎드려서 주무셨습니다.</div> <div>우리는 깨우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식사를 마친 후 밖으로 놀러나갔습니다.</div> <div>나오고보니 어젯밤에 흘끔 봤던 부화실의 장난감 같은 게 떠올라서</div> <div>동생과 둘이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div> <div>그런데 그건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div> <div>페인트로 자색 칠을 한 손거울이었습니다.</div> <div>점토로 만든 작은 소 모양. 플라스틱의 싸구려 조화.</div> <div>어젯밤엔 얼핏보기에 여러 색이 섞인 게 장난감으로 보였던 겁니다.</div> <div>그런데 이걸 또 어디에 쓰는 건지 당췌 알 수가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저는 외할아버지가 어젯밤에 계란을 버리던 쓰레기통을 보았습니다.</div> <div>어젯밤엔 어두워서 잘 안 보였지만, 밝은 곳에서 보니 그 쓰레기통 뚜껑에</div> <div>옛날 글씨처럼 마구 휘갈긴 것 같은 글자가 쓰인 낡은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앗, 깨고 나왔다!... 어, 뭐야... 저거...."</div> <div>부화기를 보던 동생이, 계란을 깨고 나온 걸 본 듯 합니다.</div> <div>저는 갓 부화한 병아리가 보고 싶어서 부화기 문을 열어보았습니다.</div> <div>그 안에 병아리?가 있었습니다.</div> <div>그런데 그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와는 어딘가 달랐습니다.</div> <div>자세히보니 다른 병아리와 다르게 전혀 떨질 않았습니다.</div> <div>삐약삐약하고 지저귀지도 않았습니다.</div> <div>그리고 눈이, 눈이 사람 눈 같았습니다.</div> <div>그것은 부화기 선반에서 탁하고 땅으로 떨어지더니</div> <div>고개도 돌리지 않고 착착 걸어나갔습니다.</div> <div>저는 그 이상한 광경에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div> <div>그것이 부화실을 나가 서쪽으로 걸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서야 몸이 움직였습니다.</div> <div>그리고 남동생을 보니, 침을 뚝뚝 흘리며 눈은 초점이 없었고</div> <div>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않는 겁니다.</div> <div><br></div> <div>제가 큰 소리고 몇 번이나 동생 이름을 불렀더니</div> <div>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한달음에 오셨습니다.</div> <div>"아이고! 봤더냐?!"</div> <div>저는 외할아버지 표정이 무서워서 "못 봤어"라고 답했습니다.</div> <div>외할아버지는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면서</div> <div>"봤잖냐. 어디로 가든?"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물으셨습니다.</div> <div>"저쪽"하고 저는 서쪽을 가리켰습니다.</div> <div>그러자 외할아버지는 문 옆에 있던 점토로 된 소 모양과 조화를 가지고</div> <div>제가 가리킨 쪽으로 달려가셨습니다.</div> <div>외할머니는 동생 이름을 몇 번 부르셨지만 동생은 침만 흘리고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div> <div>"히교 님과 눈이 마주쳤구나.."</div> <div>외할머니가 슬퍼하며 말하셨습니다.</div> <div>"안 돌아와요?"</div> <div>나는 동생을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심상찮음을 느끼고 여쭤보았습니다.</div> <div>"아니다.. 아가, 저기 있는 빨간 칠된 거울 좀 이리 주렴"</div> <div>거울 면이 붉게 칠해진 손거울을 건네드리자 외할머니는</div> <div>"너는 보면 안 돼. 엄마한테 가 있으렴"하고 부화실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div> <div>저는 엄마와 누나에게 가긴 했는데, 엄마에게 뭐라해야할지 몰라서</div> <div>아무 말 없이 엄마에게 안겨있었더니 동생과 할머니가 돌아왔습니다.</div> <div>저는 걸어오는 동생을 보며 아아, 멀쩡하잖아. 다행이다하며 안심하다가</div> <div>동생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div> <div><br></div> <div>말을 걸어보니 동생이 맞긴 했습니다.</div> <div>같이 부화실에 간 것, 어제 일, 그제 일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div> <div>그런데 어딘가가 이상했습니다.</div> <div>엄마도 동생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나 봅니다.</div> <div>외할머니에게 "엄마, 설마.."하고 말했습니다.</div> <div>외할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습니다.</div> <div>엄마가 동생을 껴안고 엉엉 우셨습니다.</div> <div>동생은 어리둥절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누나는 동생을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엄마가 우는 걸 보더니 같이 울기 시작했습니다.</div> <div><br></div> <div>한참 지나자, 외할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div> <div>"글렀어.. 놓쳤어"</div> <div>그렇게 말하시더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div> <div>"할멈, 누군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2, 3일 안 걸릴 게야. 상복 꺼내서 말려둬"</div> <div>그렇게 말하시더니 외할아버지가 동생을 껴안으시고</div> <div>"미안하구나.. 이 할배가 자는 바람에... 정말로 미안하다"</div> <div>외할아버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과하셨습니다.</div> <div>동생은 "왜 그래요? 할아버지, 아파"하고 말했습니다.</div> <div>그 목소리와 행동거지는 분명 우리 동생이 맞지만, 그건 동생이 아니었습니다.</div> <div><br></div> <div>후에 외할아버지가 말하셨습니다.</div> <div>"햇님이 가장 높이 떴을 때와, 가장 깊은 밤에 태어난 병아리는 제 역할이 있단다.</div> <div> 그래서 죽여야 하는 게야"</div> <div>"밤에 태어난 병아리도 '히교 님'이 돼요?"하고 제가 여쭤봤습니다.</div> <div>"누가.. 아아, 할멈이 말해주더냐?</div> <div> 아니야. 밤에 태어난 건 더 무서운 거야"</div> <div>그렇게 말씀하시곤 외할아버지는 부화실을 쳐다보셨습니다.</div> <div>그때 이야기는 이게 끝입니다.</div> <div><br></div> <div>지금도 매년마다 시마네로 가고 있습니다.</div> <div>남동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div> <div>옛날의 제 동생이 어떤 아이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div> <div>그 후 20년이나 가족으로 같이 살았으니, 이제 그냥 가족인 셈이지요.</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