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좀처럼 울리자 않는 전화</b></div> <div><br></div> <div>우리 회사에는 좀처럼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있다.</div> <div>지금보다 부서가 더 세분화되어 있을 때 쓰던 건데, 회선은 이어져 있지만</div> <div>아무도 쓰지도 않는데다 가끔 잘못 걸린 전화가 걸려올 뿐이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일이 밀려서 밤늦게까지 혼자 일하고 있었다.</div> <div>주말이어서 아무 일 없으면 술 한잔 해야지하던 그때 급한 업무가 들어와서</div> <div>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남아 잔업하는 꼴이 되었다.</div> <div>그 일도 마무리되어서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던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div> <div><br></div> <div>또.. 하고 생각했다.</div> <div>밤늦게까지 잔업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div> <div>자정 쯤이 되면 그 전화가 울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div> <div><br></div> <div>이런 시각에 업무 관련 전화가 걸려올 리도 없으니 아마 잘못 걸린 전화일 게다.</div> <div>평소에 그 전화가 울릴 땐 그런 생각에 받지 않았다.</div> <div>한참 울리긴 하지만 10번 정도 울림을 반복하다가 끊어지니까.</div> <div><br></div> <div>그런데 그날따라 계속 벨이 울렸다.</div> <div>일을 마쳐서 약간 여유로운 마음이었는데, 벨소리 떄문에 살짝 짜증이 났다.</div> <div><br></div> <div>계속 울리는 전화를 받아들고 그대로 끊어야지.</div> <div>잘못 걸린 팩스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보았다.</div> <div>그러자</div> <div><br></div> <div>"여보세요~ 아아 드디어 전활 받네!"</div> <div><br></div> <div>하고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div> <div>너무 밝은 목소리라 그대로 끊기 좀 미안해졌다.</div> <div>잘못 걸린 전화라고 알려준 다음 끊어야겠다.</div> <div>그래서 답을 했다.</div> <div><br></div> <div>"죄송하지만 여기는 주식회사 ○○인데요.. 잘못 거신 거 아닌가요?"</div> <div><br></div> <div>라고 했더니, 상대방이 의외의 답을 하는 것이다.</div> <div><br></div> <div>"○○지요! 저도 알죠! T 씨 아닙니까?"</div> <div><br></div> <div>T라는 소리에 살짝 당황했다.</div> <div>다른 부서에 T 주임이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div> <div>하지만 당연히 진작에 퇴근 했다.</div> <div><br></div> <div>"죄송합니다만 저는 M이라고 합니다.</div> <div> T는 이미 퇴근했습니다만"</div> <div><br></div> <div>이렇게 밤늦게까지 있을 리가 없잖아!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중히 응대했다.</div> <div><br></div> <div>"에이, T 씨 맞잖아요! T 씨! 만나고 싶은데요"</div> <div><br></div> <div>여전히 밝은 말투였지만, 상대방이 날 T 주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div> <div>심지어 이런 시각에 만나고 싶다니 어이가 없었다.</div> <div><br></div> <div>괜시리 기분이 나빠져서 말을 자르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div> <div>T는 이미 퇴근했습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만 반복해 말했다.</div> <div>그런데도 상대방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계속 말했다.</div> <div>밝으면서 쾌활한 말투로.</div> <div><br></div> <div>"T 씨! T 씨! 보고 싶어요! 지금 갈게요! 갈게요!"</div> <div><br></div> <div>T 씨와 가겠다는 말만 계속 메아리쳤다.</div> <div>나는 괜시리 무서워서 아무 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div> <div>이윽고 테이프를 빨리 감을 때 나오는 소리처럼 목소리 톤이 높아지더니</div> <div>삐걱삐걱하는 이상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삐걱삐걱하는 소리가 그친 순간, 지금과 또 다른 굵은 목소리로</div> <div><br></div> <div>"기다려"</div> <div><br></div> <div>라고 했다.</div> <div>그 순간 나는 공포를 견딜 수 없어 전화를 끊었다.</div> <div>그리고 일분 일초라도 빨리 회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div> <div>가방을 들고 문 앞으로 간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div> <div><br></div> <div>절대로 응답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숨 죽이고 모니터를 봤다.</div> <div>마르고 키가 큰 사내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div> <div>키가 너무 커서 얼굴이 카메라에 비치지 않았고 목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div> <div>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두 세 번 인터폰이 울렸다.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div> <div>나는 그저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빨리 꺼졌으면 생각했다.</div> <div>사내는 불쑥 고개를 숙이며 모니터 카메라를 들여다 봤다.</div> <div><br></div> <div>사내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div> <div>이까지 훤히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div> <div>눈은 흰자가 보이지 않고 검은자만 보여서 마치 구멍이 난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T 씨! T 씨! 안 계세요?! 만나러 왔는데요!"</div> <div><br></div> <div>전화기에서 들리던 것과 똑같은 밝은 사내 음성이 인터폰을 통해 조용한 회사에 울려퍼졌다.</div> <div>나는 못 박힌 듯 모니터에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div> <div>사내는 더욱더 카메라에 다가왔다.</div> <div>구멍 같은 눈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div> <div>사내는 더욱 밝은 목소리로 불러댔다.</div> <div><br></div> <div>"T 씨! 안 계시나요? T 씨! 이봐요!"</div> <div><br></div> <div>사내 얼굴이 앞뒤로 흔들렸다.</div> <div><br></div> <div>"T 씨이이이이이이이이"</div> <div><br></div> <div>사내의 목소리가 아까 전화와 똑같이 굵은 목소리로 바뀌었다.</div> <div>그리고 사내의 모습이 모니터에서 휙 사라졌다.</div> <div><br></div> <div>나는 한참동안 모니터 앞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div> <div>다시 그 사내가 나타나는 게 아닐까.</div> <div>그런 생각에 밖으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모니터를 계속 보다보니 점차 날이 밝아왔다.</div> <div>멍하니 밝아진 바깥 풍경을 보다보니 용기가 생겨 밖으로 나가도 될 것 같았다.</div> <div>슬금슬금 문으로 다가갔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고요했다.</div> <div><br></div> <div>잠긴 문을 열고 자동문을 열었다.</div> <div>그러자 팔랑팔랑 뭔가가 발치에 떨어졌다. 갈색 봉투였다.</div> <div>주워서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 모양으로 잘린 종이가 들어 있었다.</div> <div><br></div> <div>재수 없는 일은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던 나는 종이를 봉투 안에 다시 넣었다.</div> <div>그리고 쫙쫙 찢어서 대충 집어 던졌다.</div> <div>완전히 날이 밝아서, 집까지는 걸어갔다.</div> <div>거의 밤을 샌 셈이라 일찌감치 잠들었다.</div> <div><br></div> <div>주말 내내 그 일을 잊으려고 평상시처럼 보내려고 노력했다.</div> <div>그리고 주말이 지나고 회사에 나와서 T 주임의 부고를 들었다.</div> <div><br></div> <div>토요일 밤, 지하철에 치였다는 것이다.</div> <div>시체는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어져서</div> <div>소지품에 있던 면허증으로 T 주임의 신원이 밝혀졌다고 한다.</div> <div><br></div> <div>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는 주말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한기가 들었다.</div> <div>이상한 전화, T 주임을 찾아온 사내, 갈색 봉투 안의 사람 형상의 종이.</div> <div>종이를 찢은 게 T 주임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걸까.</div> <div><br></div> <div>침울한 기분으로 T 주임 장례식에 참석하여,</div> <div>꽃이 놓인 T 주임의 책상을 등지고 일했다.</div> <div>단언할 순 없지만 나에게도 뭔가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div> <div>T 주임이 죽은 후 한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반 년 정도 지나서 죄책감이 어느 정도 잊혀져갈 때</div> <div>급한 일 때문에 또 야근할 일이 있었다.</div> <div>같은 부서의 A 계장이 같이 야근하는 바람에 회사에 나와 A 계장 둘이 남아 있었다.</div> <div><br></div> <div>갑작스레 또 그 전화가 울렸다.</div> <div>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div> <div>반 년 전 일을 겨우 잊어가고 있었는데</div> <div>전화가 울리는 순간 다시 선명히 떠올랐다.</div> <div>새파랗게 질린 나와 반대로, A 계장이 "되게 시끄럽네"라며 전화기에 다가갔다.</div> <div>받지 말라고 말릴 틈도 없이 A 계장이 전화를 받았다.</div> <div><br></div> <div>"네, 주식회사 ○○의 A입니다"</div> <div><br></div> <div>A 계장이 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div> <div>나는 A 계장의 통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div> <div><br></div> <div>"저는 A이고, M이 아닙니다만..."</div> <div>"M에게 무슨 용건 있으신가요?"</div> <div>"아, 히다리님이신가요. 그럼 전달 드리겠습니다"</div> <div>"....네?"</div> <div>"...실례하겠습니다"</div> <div><br></div> <div>전화를 끊은 A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div> <div><br></div> <div>"엄청 밝은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잖아. 짜증나서 끊었어.</div> <div> 다짜고짜 'M 씨죠?' 라는 거야. 내가 분명 A라고 했는데.</div> <div>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말이야.</div> <div> 그러더니 M 씨한테 전해달래. 뭔가 했더니 'T 씨 일은 참 안 됐네요'라더니</div> <div> 'M 씨가 왔었더라도 좋았을 텐데요'라고 하더라. 미친 거 아냐?"</div> <div><br></div> <div>나는 평정을 가장하며, A 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div> <div><br></div> <div>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관뒀다.</div> <div>그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였을까.</div> <div>T 주임은 나 때문에 죽은 걸까.</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