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작은 사당의 저주</b></div> <div><br></div> <div>초등학생 때 등하굣길에 작은 사당이 있었다.</div> <div>그 옆에 한 40cm 정도 되는 지장 보살이 네 개,</div> <div>우리 등하굣길을 마주 보도록 놓여져 있었는데</div> <div>제일 오른쪽에 있는 지장보살은 얼굴이 안 보이게 천으로 덮어져 있었다.</div> <div>고학년들 소문에 따르면</div> <div>그 지장보살은 자기 얼굴을 본 사람을 저주하기 때문에 얼굴을 숨기는 거라고 했다.</div> <div>절대로 그 지장보살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 우리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div> <div>뭐 그래도 그 사당은 초등학생이 올라가기엔 좀 힘든 벼량?같은 곳에 있는데다</div> <div>사당까지 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벼랑을 타고 가야 해서 위험했고,</div> <div>사당 주변이라는 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왠지 무섭다는 이미지가 있어서</div> <div>아무도 가까이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반의 A가 저주가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며</div> <div>친구 몇 몇을 데리고 그 사당에 갔다.</div> <div>(난 그때 같이 가진 않았는데)</div> <div>넷이서 같이 갔는데 말을 꺼낸 건 A니까 A가 벼랑을 타고 올라가 지장보살 쪽으로 갔고</div> <div>나머지 셋은 등하교하는 길가에서 A를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div> <div>실제로 만져본 A의 말에 따르면</div> <div>얼굴 앞 부분만 안 보이게 해놓은 게 아니라,</div> <div>얼굴 부분을 수 겹으로 돌돌 말아놨고, 그 안쪽은 떨어지지 않게 핀으로 고정해두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A에 의해 오른쪽 끝에 있는 지장보살의 얼굴이 드러나게 되었다.</div> <div>"뭐야, 얼굴이 망가져 있어서 그냥 숨겨놓은 거잖아. 이것 봐!!"</div> <div>A가 이것 보라고 재촉하니, 다른 셋도 멀리서 지장보살 얼굴을 봤다.</div> <div>지장보살 얼굴은 뭔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금가고, 부숴진 상태였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실상을 파악했으니 됐다고, A는 다시 얼굴에 천을 감으려고 했다.</div> <div>그런데 어른들이 해놓은 것처럼 깔끔하게 하는 방법을 모르니까</div> <div>대충 얼굴은 돌돌 감았지만, 도둑 두건처럼 턱 아래에 천을 묶었다.</div> <div><br></div> <div>이 일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되기 전의 일이다.</div> <div>그리고 겨울 방학이 지날 쯤, A의 코에 무슨 병이 나서 4학년이 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div> <div>A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얼굴이 단정하게 잘 생겼었는데,</div> <div>수술 때문인지 얼굴이 살짝 변해서 못 생겨졌다.</div> <div><br></div> <div>여름 방학이 지나서,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해서 얼굴에 상처를 크게 입었고</div> <div>설상가상으로 머지 않아 집에서 주전자 데운 물을 뒤집어써서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div> <div>(그리고 적어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 화상자국이 있었다)</div> <div><br></div> <div>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지장보살을 만지고 겨우 1년 새</div> <div>A의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div> <div>A와 같이 지장보살을 본 나머지 셋은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div> <div>우리들 사이에서 "지장보살의 얼굴을 보면 저주받는다"는 소문이</div> <div>어느 틈엔가 "지장보살의 얼굴 천을 벗기면 저주받는다"로 바뀌었다.</div> <div><br></div> <div>A가 화상을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저녁 해질 무렵,</div> <div>공원에서 놀다가 친구 둘과 집에 돌아갈 때 그 사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div> <div>폴로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지장보살 부근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는 게 보였다.</div> <div>그 옆에 빗자루도 보였기 때문에 청소 중이시란 걸 알 수 있었다.</div> <div><br></div> <div>아저씨가 수건으로 지장보살을 닦길래 멈춰서서 지켜보고 있었다.</div> <div>맨 오른쪽 지장보살은 A가 말아놓은 모습 그대로였다.</div> <div>아저씨가 저 지장보살도 닦으시려는지 천을 벗기려고 손을 뻗으셨다.</div> <div>"그거 벗기면 저주 받는대요!"</div> <div>내가 아저씨에게 말했다.</div> <div>"지장보살 님은 너희들도 지켜주시니 저주 같은 건 안 하신단다"</div> <div>아저씨는 빙긋 웃으며 천을 벗기셨다.</div> <div>지장보살의 얼굴은 금 하나 없이 멀쩡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