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반 편성 앙케이트</b></div> <div><br></div> <div>어릴 때 기묘한 체험을 하는 사람 꽤 많이 있잖아?</div> <div>너희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보다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온 게 하나 떠올라서 써본다.</div> <div>매년 3월 쯤 되면 "반 편성 앙케이트"가 떠오르는데,</div> <div>나 외에도 이런 앙케이트를 해본 사람이 있으려나.</div> <div><br></div> <div>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인데,</div> <div>우리 학교는 꽤 큰 학교라서 매년 반을 새로 편성했다.</div> <div>3월 말에 선생님들 전근 고별식을 하고,</div> <div>그 때 체육관에 새 반 편성표를 붙이는데,</div> <div>절친이나 몰래 좋아하던 애랑 같은 반이 되고 싶으니까</div> <div>매년 그 때마다 엄청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div> <div><br></div> <div>그해 2월이 되었을 때, 우리 집에 봉투 한 장이 와 있었다.</div> <div>"반 편성 앙케이트"라는 글씨가 겉에 크게 찍혀 있었고,</div> <div>교재 회사에서 주최하는 설문 조사라고 적혀 있었는데</div> <div>지금까지 알아본 바, 그런 이름을 가진 교재 회사는 없었다.</div> <div><br></div> <div>봉투 안의 내용물은,</div> <div>우리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 중에서</div> <div>절대로 같은 반이 되고 싶지 않은 친구 이름을 하나만 써달라는 거였는데</div> <div>제출 해준 사람들 중에서 문구 세트를 추첨해서 증정한다고 했다.</div> <div>당시에 나는 잡지 응모 같은 걸 열 올리며 하고 있었던 데가</div> <div>답장을 보내도록 반신용 엽서까지 들어 있었기 때문에</div> <div>별 생각 없이 우리 학년에서 제일 싫어하던 애 이름을 써서 보냈다.</div> <div><br></div> <div>실은 내가 이름을 썼던 그 애랑 우리 집은 가까웠는데</div> <div>등교, 하교 시에 계속 날 골탕 먹이는 거다.</div> <div>반이 달라서 그나마 괜찮았지만,</div> <div>만약 같은 반이 되면 정말로 왕따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div> <div>같은 반이 되는 건 죽어도 싫었다.</div> <div>5학년은 6반으로 분반하니까 그럴 가능성이 낮긴 했지만.</div> <div><br></div> <div>그 후로는 그 앙케이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div> <div>3월이 되자 그 교재 회사 이름으로 커다란 봉투가 또 왔다.</div> <div>보자마자 그 앙케이트 내용이 떠올랐다.</div> <div>이번에 온 편지의 내용은 내가 문구 세트에 당첨되었다는 것이었다.</div> <div>이건 딱히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 문구 세트를 받기 위한 조건이 있었는데</div> <div>한 가지 과제가 있다는 것이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내가 이름을 썼던 애와는 같은 반이 안 될 거라고 적혀 있어서</div> <div>반 편성하시는 선생님들이 회의도 안 했을 시기인데 이상하네 라는 생각은 했다.</div> <div><br></div> <div>그 봉투 안에는 한자로 동여맨 부적 같은 게 들어 있었는데</div> <div>겉에는 우리 동네에서 꽤 멀리 떨어진 현 이름과, 처음 보는 초등학교 이름,</div> <div>그리고 5학년이라는 글자와 남자애 이름 같아 보이는 모르는 애 이름이</div> <div>붉은 글씨로 크게 적혀 있었다.</div> <div><br></div> <div>그걸 내가 사는 지역의 신사 (유서가 깊은 신사지만, 큰 곳이 아니라서</div> <div>참배하러 가는 사람도 없어서 신경도 쓰지 않던 곳) 안에 있는 소나무에</div> <div>3월 8일 오후 9시에 못으로 박아달라는 내용이었다.</div> <div><br></div> <div>그걸 해내면 당첨된 문구 세트를 보내준다는 것이다.</div> <div>그리고 그 봉투는 전에 받은 것과 같이 모든 일을 마치면</div> <div>강물에 흘려보내라고 적혀 있었다.</div> <div><br></div> <div>이게 너무 수상해서 처음에는 중학생 형에게 물어볼까 했지만</div> <div>봉투에 이 일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적혀 있어서 그러지 못 했다.</div> <div><br></div> <div>신사는 자전거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고,</div> <div>그 부적 같은 걸 나무에 못 박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div> <div>눈이 많이 내리는 곳도 아니고, 춥긴 하지만 9시 쯤 15분 정도 나가는 것도 어렵진 않았다.</div> <div>그 봉투와 부적은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div> <div><br></div> <div>3월 8일이 되었다.</div> <div>나는 편지에서 적힌 대로 실행해보기로 하고,</div> <div>저녁을 먹고 9시 쯤 부적과 흔해빠진 못과 망치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신사로 갔다.</div> <div>그 신사는 주택가보다 약간 높은 지대의 언덕에 있어서</div> <div>나는 언덕 아래에서 자전거를 내려, 폭이 좁은 돌 계단을 올라갔다.</div> <div><br></div> <div>돌계단과 신사 경내에 드문 드문 가로등이 있어서 어두워도 발 밑은 보였다.</div> <div>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아무래도 조금 으시시해서 빨리 일을 마치려고</div> <div>코트 주머니에서 부적과 못, 망치를 꺼내들고</div> <div>뛰어서 신사 입구 문을 지나 신사 길 옆으로 들어가서</div> <div>부적을 묶어 놓은 소나무 하나를 골라,</div> <div>내 머리 정도 높이에, 이름이 적힌 부분을 바깥으로 보이게 해서</div> <div>한가운데에 세게 두 세 번 못을 박았다.</div> <div><br></div> <div>그러자 내 손이 닿던 그 부적이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div> <div>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놨는데 부적은 나무에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div> <div><br></div> <div>그때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신사에서 갑자기 누군가 나오더니</div> <div>날 보며 큰 소리로 "내가 다 봤어!"라고 했다.</div> <div>어두워서 나중에 떠올리려고 해봐도, 그 사람 옷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div> <div>목소리로 봐서 남자인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나는 무서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망치도 내버리고 냅다 달려 돌 계단을 내려오고</div> <div>자전거를 올라타 집으로 돌아왔다.</div> <div><br></div> <div>이후로는 그닥 쓸 이야기가 없다.</div> <div>내가 앙케이트에 이름을 썼던 그 애는,</div> <div>그 일 후 일주일 후에 자전거 타고 가다가 트럭과 충돌해서 죽었다.</div> <div>봉투 받은 건 모두 인근 강에 흘려보냈다.</div> <div>4월이 되어 유명 백화점에서 파는 문구 세트를 받았는데</div> <div>전에 받은 봉투에 써져 있던 교재 회사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다.</div> <div>그 후에는 연락을 받지 못 했다.</div> <div><br></div> <div>신사에는 수 년 동안 얼씬도 안 해서 나무에 못 박은 게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div> <div>망치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아버지께 혼났다.</div> <div>제일 신경 쓰이는 건 그 부적에 적혀 있던 이름의 모르는 아이 일인데,</div> <div>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 뿐더러 일부러 찾아보지도 않았다.</div> <div><br></div> <div>지금 써보며 다시 보니 역시 이건 기묘한 체험이었고,</div> <div>이게 다 내 상상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div> <div>문구 세트를 본 형이 매우 부러워하긴 했는데</div> <div>어쩌면 다른 것에 응모한 게 당첨된 걸 수도 있다.</div> <div>이런 체험 해본 사람 또 있어?</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