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벽에 붙은 여자</b></div> <div><br></div> <div>섣달 그믐날에 있었던 일입니다.</div> <div>심야에 담배를 사려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으로 갔습니다.</div> <div>제가 사는 동네는 솔직히 시골이지만,</div> <div>예전에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div> <div>에도시대가 떠오를 법한 오래된 목조 건축 집이 늘어서 있습니다.</div> <div>평소 이 시각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데,</div> <div>인근의 절이나 신사에서 참배하러 가는 사람이랄까, 몇 명 스쳐지나갔습니다.</div> <div><br></div> <div>편의점에서 담배와 캔 커피를 사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div> <div>집을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 천천히 걸어갔습니다.</div> <div><br></div> <div>조금 전에 지나온 도로변에 들어간 때였습니다.</div> <div>가로등도 없어서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흰 것이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게</div> <div>눈에 띄였습니다.</div> <div>그때는 "빨래인가보다" 생각하고 그대로 지나치려고 했습니다.</div> <div>점차 가까워질 수록 무엇인지 보였습니다.</div> <div>새하얀 기모노를 입은 여자였습니다.</div> <div>팔 다리를 쭉 편 게, 도마뱀처럼 집 2층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div> <div>마치 그 집 안을 엿보려고 하는 것처럼요!</div> <div>그때 그 여자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깨달았습니다.</div> <div>수직의 벽에 저렇게 착 달라 붙는 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div> <div><br></div> <div>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div> <div>저는 그 여자가 보인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div> <div>그대로 스쳐 지나가기로 했습니다.</div> <div>냉정히 행동하려고 했지만 꽤 당황했을 겁니다.</div> <div>되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도 됐을 텐데...</div> <div>되도록 그쪽은 보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div> <div>슬쩍 슬쩍 곁눈질하며 그 집을 지나쳤습니다.</div> <div>젊은 여자인 것 같았지만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div> <div>얼굴은 보지 않았고, 아마 봤더라면 기절하거나 비명을 질렀을 지도 모릅니다.</div> <div>입은 옷도 기모노라기보다는 수의 같은 옷이었습니다.</div> <div>코너를 돌아서 이제 제 모습이 안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 순간,</div> <div>공포심히 일제히 올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div> <div>미친 듯 달려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이불 속에 파고 들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날 장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div> <div>별다른 소문도 없는 아주 평범한 부부가 사는 집이라</div> <div>그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div> <div>딱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습니다.</div> <div>바로 아래에서 지나갈 때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div> <div>"네가 마지막이야, 네가 마지막이야..."</div> <div>그 집에는 아이는 없다고 했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