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터널의 소녀</b></div> <div><br></div> <div>나는 정말 무서웠다. 정말로 무서웠다.</div> <div><br></div> <div>20년 넘게 살아오며 심령 현상이란 걸 본 적이 없어.</div> <div>무서운 이야기는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div> <div>지금은 긍정할 마음까지는 안 들지만, 부정도 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겠다.</div> <div>친척 집에 갈 때 지나가는 산길에 터널이 하나 있거든.</div> <div>갈 때마다 차를 타고 가는데다, 그 날도 그랬어.</div> <div>그런데 그 터널엔 소문이 여러가지 있거든.</div> <div>여러가지라고 해봤자, 목 없는 오토바이 탄 사람 같은 도시 전설 같은 거지만.</div> <div>마스크 쓴 여자가 유행할 때 누군가 흘린 소문이겠지.</div> <div>그런 시시껄렁한 소문이라도 일단 들은 후엔 새벽에 화장실에 가긴 무섭잖아.</div> <div><br></div> <div>그래도 그 날은 밤이 아니었으니까 무섭단 느낌 없이 그냥 터널을 지나갔거든.</div> <div>그랬는데 터널 입구에 고양이가 있는 거야. 그낭 길고양이.</div> <div>나 말이야, 고양이 엄청 좋아하거든. 당연히 사진 찍어야지!</div> <div>그래서 끄트머리에 차를 세우고 내렸어.</div> <div>안 그랬으면 좋았을 걸...</div> <div><br></div> <div>휴대전화로 사진 찍으려고 고양이를 향했는데, 다가가니까 도망치는 거야.</div> <div>어디겠어, 당연히 터널 안이지.</div> <div>슈웅-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탁탁탁하고 걸어가듯 도망치더니</div> <div>다시 날 뒤돌아보더니 멈춰 서.</div> <div>묘한 거리감 두는 건 고양이들 습성이니까.</div> <div>그게 또 귀여워서 나도 뒤를 쫓아갔거든. 타박타박.</div> <div><br></div> <div>탁탁탁</div> <div><br></div> <div>타박타박타박</div> <div><br></div> <div>탁탁탁</div> <div><br></div> <div>타박타박타박</div> <div>타박타박타박</div> <div><br></div> <div>음? 발소리가 하나 더 많은 것 같은데...?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div> <div>휴대전화 액정에 이상한 게 찍혔어.</div> <div>찍힌 건 내 눈 앞이 아니라, 터널은 어두우니까 액정에 반사해서 내 뒷 광경이 찍히는 거야.</div> <div>여자애 같은 게 있는 거야.</div> <div>심박수가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div> <div>"고양아 고양아 기다려봐 고양아"하며 고양이를 쫓아갔어.</div> <div>여자애 같은 그것도 계속 나와 고양이를 쫓아왔을 거야.</div> <div>그때만큼 터널이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을 거야.</div> <div><br></div> <div>그리고 출구까지 나갔지. 살았다, 무사해서 살았어.</div> <div>그런데 차는 터널 너머에 있거든...</div> <div>이제 터널을 다시 지나가긴 싫은데...</div> <div>여기서 친척 집이 걸어서 못 갈 거리도 아니니까 일단 걸어가자.</div> <div>그리고 친척 차를 타고 다시 내 차 가지러 오면 되겠지 라며 안심했어.</div> <div>왜 터널을 나온 것만으로 나는 안심을 했을까.</div> <div><br></div> <div>걸어가던 중 나는 수십 미터 앞을 보다가 또 심박수가 올라갔어.</div> <div>있는 거야... 길 끝에... 이동 범위는 터널 안ㅇ 한정되는 게 아니었나 봐..</div> <div>이번에는 모습까지 다 보였어.</div> <div>약간 흐릿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생으로 보이는 여자애였어.</div> <div><br></div> <div>주저했지만 가도 지옥, 돌아가도 지옥이면 차라리 가는 게 낫잖아?</div> <div>마음을 다지면서 다시 걸어갔어.</div> <div>사실 넓은 길에서 보는 것보다 터널 안에서 보는 게 더 무서우니까</div> <div>되도록 내 심장을 위한 길을 택한 거지.</div> <div>그런데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봐도 저거 나 따라오는 거잖아.</div> <div><br></div> <div>반대 차선 쪽을 걸었지만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면서 딱 지나치려던 그 때.</div> <div>호기심에 못 이겨서 살짝 봤거든.</div> <div>그랬더니 그 여자애가 머리에 상처가 있는 거야. 얼굴의 절반이랑 관자놀이 부분.</div> <div>적어도 언뜻 보기에 심한 상처는 아니라서, 내 심장을 지켜낼 순 있었지.</div> <div><br></div> <div>교통 사고를 당했나.. 안 됐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div> <div>그 애가 너무 가여워지니까 눈물이 나려던... 내가 바보였지.</div> <div>갑자기 부성애 같은 게 솟아 올라서 걔한테 다가간 거야.</div> <div>그리고 그 애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불쌍하게도"하면서 울었어.</div> <div>무슨 성자라도 된 기분 마냥.. 진짜 바보였지.</div> <div><br></div> <div>그 아이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div> <div>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으..아아아..아아아"하는 거야.</div> <div>그때 직감적으로 느꼈어.</div> <div>아, 말이 안 통하는 구나. 위험하네.</div> <div>감정 같은 걸 읽지 못 하는 거야. 아니, 아마 감정이 없는 걸 꺼야.</div> <div>애당초 가까이 가서는 안 되는 거였어.</div> <div>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뛰었어.</div> <div><br></div> <div>터널은 무서워서 근처에 얼씬도 하기 싫으니까 돌아갈 때는 빙 둘러서 다른 길로 바래다 달라고 했어.</div> <div>차는 아빠한테 부탁해서 가지고 왔고.</div> <div>그런데 지금도 터널에 방치했던 그 차는 왠지 타기 싫어.</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