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밤길</b></div> <div><br></div> <div>작년 6월, 7월 쯤 있었던 일입니다.</div> <div><br></div> <div>우리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div> <div>장례식 때문에 부모님 고향인 홋카이도로 갔습니다.</div> <div><br></div> <div>당일에 외할아버지 시신을 신사까지 옮기고,</div> <div>그날 밤은 사촌들과 외삼촌, 외숙모와 모두 거기서 자면서</div> <div>양초와 선향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기로 했습니다.</div> <div>다들 잘 준비를 하며 이도 닦고, 세수도 했습니다.</div> <div>신사라서 당연히 욕조는 없었는데</div> <div>저는 왁스를 발라놓은지라 꼭 머리를 감고 싶었고,</div> <div>차라리 머리 감을 거면 욕조에 들어가서 땀도 흘리고 싶었습니다.</div> <div>신사에서 외할머니가 경영하시는 여관까지 걸어가면 10~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div> <div>손님이 오셔서 묶으신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외할머니랑 같이 여관에 가셨던 참이었습니다.</div> <div>그래서 저도 여관에 가서 목욕할까 싶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div> <div><br></div> <div>저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곤 하는 편이라, 엄마에게 전화하니</div> <div>"위험할 텐데? 여관이 가깝긴 해도 장례식 당일에 밤길을 걷는 건</div> <div> 그냥도 위험할 텐데 너는 더하지 않겠니?"</div> <div>라고 하셨습니다.</div> <div>그래도 왠지 그때는 장례식 당일에 모르는 길을 걷는 것도 전혀 무섭지 않았고</div> <div>무엇보다 씻고 싶다는 열정에 길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div> <div>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참 이상한 일이지요.</div> <div>사실 제 성격 상 겁이 많아서, 누구랑 같이 가지 않으면</div> <div>초행길을, 그것도 시골길을 갈 리가 없거든요.</div> <div>그런데 그날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갔습니다.</div> <div>"신사를 나서서 쭉 걸어 나오면 강이 있는데</div> <div> 다리를 건너도 왼쪽으로 꺾어서 쭉 오면 편의점이 있어.</div> <div> 편의점까지만 오면 어딘지 알겠지?"</div> <div>알려준 길대로 가니 그리 멀지도 않았고,</div> <div>올 때는 차를 타고 와서 5분 정도 걸렸지만, 일단 걱정은 되니까</div> <div>"알겠어. 금방 가겠지만 혹시나 길 잃으면</div> <div> 다시 전화 걸 테니까 전화기 옆에 끼고 있어줘"</div> <div>라고 엄마에게 말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옆에 있던 사촌들과 외숙모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방을 나왔더니</div> <div>술을 마시던 외삼촌이 계시길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신사를 나섰다.</div> <div>그때 분명 다들 "그래 그래"라고 답해주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휴대전화를 꼭 쥐고서 걸어갔습니다.</div> <div>신사를 나오니 바로 앞에 어두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커다란 건물이 있었고</div> <div>그게 왠지 스산한 느낌이라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div> <div>발이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습니다.</div> <div>그리고 큰 도로에서 좀 들어간 곳이라서 가로등은 있었지만</div> <div>어슴푸레하니 사람도 많이 안 다니는 곳이었습니다.</div> <div>마음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라고 중얼거리며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엄마가 말한 그 다리가 보여서, 왼쪽으로 돌아갔습니다.</div> <div>이제 쭉 가면 편의점이 있을 테니까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div> <div>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편의점이 도통 나오질 않는 겁니다.</div> <div>10분 정도 달렸던 것 같습니다.</div> <div>엄마 전화가 와서 "너 어디니? 길 잃었어?"라고 하시길래</div> <div>"다리에서 꺾어서 쭉 가라며? 지금 뛰어가는 중이야"라고 했더니</div> <div>"이렇게 시간이 걸릴 리가 없는데? 길 잘못 든 거 아냐?"라고 하길래</div> <div>잠시 생각하다가</div> <div>"알겠어. 조금만 더 가볼게. 내가 다시 전화할게"라고 하고 끊었습니다.</div> <div>나중에 생각해보니 분명 이상했습니다.</div> <div>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니 이렇게나 오래 달려갈 거리가 아니거든요.</div> <div>게다가 다리에서 편의점은 뛰면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div> <div>그런데 그때는 왠지 이 길이 맞다,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div> <div><br></div> <div>거기서 더 뛰어가니 길 오른쪽에 작은 사당 같은 게 있었습니다.</div> <div>거길 지나가니 차가 한 대도 달리지 않는 겁니다.</div> <div>홋카이도의 시골이다보니 차량이 적긴 해도,</div> <div>일단 이차선이 깔린 큰 도로인데다,</div> <div>그 사당을 지나칠 때까지는 몇 대인가 지나갔거든요.</div> <div>그런데 그 사당을 지나가서 한참을 뛰었지만 단 한 대도 지나가질 않는 겁니다.</div> <div>정말 괜히 으시시했습니다.</div> <div><br></div> <div>거기서 더 뛰어가다보니 커다란 다리가 보였습니다.</div> <div>그 아래에 강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강물 흐르는 소리에 섞여서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div> <div>애들이 다리 아래의 강에서 놀면서 웃는 것 같은 소리였습니다.</div> <div>그런데 이미 자정을 지난 시각이니, 그럴 리가 없지요.</div> <div>그때서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전속력으로 왔던 길을 되돌이갔습니다.</div> <div><br></div> <div>돌아갈 때에서야 깨달았는데 최소 5km는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div> <div>나아갈 때는 피곤하지도 않아서 저는 15분 정도 달렸던 것 같았는데</div> <div>사실은 꽤 긴 거리를 달린데다 휴대전화를 보니 시간도 많이 흘렀던 겁니다.</div> <div>어쨌든 위험하다는 생각에 누구라도 전화를 해야겠다 싶어서</div> <div>사촌, 형, 엄마에게 전화를 막 걸었습니다.</div> <div>아무도 안 받는 겁니다.</div> <div>엄마에게 한 번 더 걸어봤더니 받았다 하던 순간</div> <div>"아...............으..........."라고 하더니 바로 끊어졌습니다.</div> <div>전파가 잘 안 통하나보다 싶어서 달리며 전화를 마구 걸어댔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자 조금 전에 본 사당을 지나갈 때 드디어 통화가 되었습니다.</div> <div>"왜 안 받아!! 지금 무섭단 말이야!! 빨리 받았어야지! 잘 안 터지면 다시 걸어줬어야지!"</div> <div>하고, 약간 흥분한 상태라 화내듯 말했습니다.</div> <div>그러자 엄마가</div> <div>"전화 안 왔는데? 계속 내 앞에 뒀는데..?"라고 하셨습니다.</div> <div>소름이 돋았습니다.</div> <div>그럼 아까 받은 건 누구지? 아니, 나는 몇 번이나 걸었는데 안 걸렸다고?</div> <div>여러 가지를 생각하다보니 괜시리 불안해서</div> <div>"빨리 차! 차 타고 와줘! 큰 도로까지!"라고 말한 뒤 필사적으로 뛰었습니다.</div> <div><br></div> <div>30분 정도 뛰니 엄마와 외할머니가 보였습니다.</div> <div>"너 어디까지 갔니? 다리 건너서 오른쪽이라고 했잖아?"라고 했습니다.</div> <div>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분명 왼쪽이라고 했거든요?</div> <div>그리고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div> <div>"저긴 산으로 가는 길이야. 아니, 다리까지 5km가 넘을 텐데?</div> <div> 중간에 알아봤어야지. 집들도 없을 텐데.</div> <div> 너 (귀신들이) 부른 거 아냐?"</div> <div>라고 했습니다.</div> <div>정말로 불렸던 걸지도 모르곘습니다.</div> <div>아니 그런데 그런 무서운 소리를 저렇게 가볍게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div> <div><br></div> <div>덧붙여서 그 후에 겁내면서도 목욕은 하고,</div> <div>차 태워달라고 해서 신사까지 갔습니다.</div> <div><br></div> <div>그후 외숙모가</div> <div>"○○야, 너 언제 나갔니?"라고 하는 겁니다.</div> <div>사촌이랑 외숙모, 외삼촌 모두 제가 나간 줄 몰랐다는 겁니다.</div> <div>저는 분명히 인사도 했고, 다들 저에게 답도 해줬거든요?</div> <div>그런데 아무도 제가 나가는 걸 못 봤고, 정신 차려보니 없었답니다.</div> <div>그리고 형이랑 사촌들 휴대전화에도 제 착신 이력이 없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때 만약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div> <div>나중에 엄마는</div> <div>"불가사의한 행방불명은 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걸지도 모르겠다.."</div> <div>라고 중얼거려서 괜히 소름이 돋았습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