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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레콜이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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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콜이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779 SKT 투정글 경기아시는분?? [새창] 2018-01-12 08:32:05 0 삭제
    https://www.youtube.com/watch?v=20HOWnJxxPo
    요경기인둣요!
    778 (문장 연습 오늘의 단어) 고래, 만원, 상자, 옥상, 친구 [새창] 2018-01-07 01:16:25 4 삭제
    시멘트로 지어진 구시대 상가의 3층 쯔음에서 수족관을 발견했다.

    이런 가게들이 흔히 그렇듯,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흔한 상품들 사이에 시선을 끌기 위한 미끼상품이 하나.

    [하늘구름고래/2주]

    기껏해야 소형견보다 조금 더 큰 정도 사이즈의 아직 고래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기엔 지나치게 일러보이는 치어였다.

    나는 어릴적 초등학교 앞 500원짜리 병아리 조차 별로 관심이 없었던, 애완동물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500원짜리 병아리에게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병아리가 아니라 500원이라는 점이었다.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좋다. 저렴한 소비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 수족관 안쪽의 가게로 들어섰다.
    그 고래 치어의 가격이,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커다란 종합마트에서 이따금씩 팔곤하는 손바닥만한 거북이도 이것보다는 몇배는 비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정확하게 몇배였는지까진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이건 정말 저렴해.'

    그 생각이 나에게 만족감을 줬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고래에 대한 내 관심을 표현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마치 준비라도 했던것 마냥,

    "아 그렇군요 손님. 하지만 싼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이 아이는 처음 태어났을때 교육을 잘못해서, 야생성을 버리지 못했어서 말이죠.. 지금도 계속 자기 친구들을 찾아 하늘로 날아가버리려고만 한답니다. 게다가 금방 몸집도 커져서 관리도 힘들고..."

    주절주절주절. 가게 주인은 끝도 없이 상품의 하자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째서 이런 귀한 상품이 겨우 만원짜리 가격표를 달고 이런 누추한 가게까지 굴러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손님이 고래에 대한 구매의지를 놓아버리고 다른 흔하고 예쁘고 상품성있고 판매자도 구매자도 만족할만한 상품들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일인가에 대해.

    하지만 나는 딱히 반려동물의 장단점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그리고 무슨 조건이 있던 없던 고래의 가격이 만원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내 구매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조언 감사 드리구요. 저 고래 주세요. 만원 맞죠?"

    "아, 예.. 뭐 그러시다면.."

    가게 주인은 간만에 생긴 좋은 미끼상품이 금새 팔려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듯 했지만, 방금전까지 자신이 직접 늘어놓았던 저 고래의 '하자'들은 사실이었으므로 팔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꿔 나오지는 않았다. 정말로 팔리지 않고 고래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하면, 상가 3층에 위치한 이 애매한 가게에서는 감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짜피 이런 곳에서 팔만한 물건도 아니고, 애꿋게 떠맡아버린 매물을 빨리 털어버린 것에 만족하자. 라고, 가게 주인은 생각하는 듯 했다.

    커다랗고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져 나온 고래를 받아든 나에게 가게 주인은 고래를 키우는데 필요한 기구들, 장비들, 먹이, 기타 잡다한 것 까지 말만하면 다 구해줄 수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친절한 웃음을 덧붙였다. 아마도 이로써 좋은 단골손님을 하나 유치했다는 계산이 나온 모양이었다. 방금 전의 희미한 아쉬움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진심어린 친절함이 떠올랐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가식적으로 웃은 나는 가게를 나섰다. 아마 다시 이 가게에 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옥상에 올라가, 이 고래가 찾아가려한다는 친구들에게로 고래를 보내줄 생각이었다.

    어짜피 가게 주인의 말대로 그 수많은 하자들을 감내할 근면성실함이 나에게는 없고, 하늘로 훨훨 헤엄쳐 날아가는걸 30분 정도 보고나면 만원짜리의 저렴한 소비에는 그럭저럭 만족할듯한 느낌이었다.

    옥상까지의 층당 28계단, 총 56계단에 다다르는 기나긴 동행 끝에, 나와 하늘이는 옥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자 하늘아. 친구들 찾아 가렴."

    22번째 계단쯤을 오르면서 붙인 이름으로 불린 하늘구름고래, 하늘이는 날아갈 생각도 없이 열린 뚜껑 위로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한참을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첨벙거렸다. 나는 원래부터 옥상에서 소비할 예정이었던 그 30분 쯔음에 다다라서는, 이 아이가 나에게 추가소비를 요구하고 있나 하는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가게 주인이 적극 추천하던 8천 900원짜리 크릴 새우 펫푸드라도 사서 먹여줬어야, 만족스럽게 내 곁을 떠나 친구들 곁으로 날아가주는거였던가 하는 의혹이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고싶진 않은데.'

    나는 만원에는 만족스럽지만, 만 8천 900원에는 성이 가시는 인간이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커다란 뭉게구름이 바람에 세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참 넓고, 파랗고, 그리고 하얀 하늘이다. 그러고보면 저 하늘에 고래가 날아다니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듯 했다.

    '그런가, 친구를 찾아가라고 해 봤자, 너도 걔네가 어디있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이 만원짜리가 가게주인이 설명하지 않은 좀 더 치명적인 하자가 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름을 하늘이에서 만원짜리로 바꿔주었다. 앞으로 계속 부르려면, 이쪽이 더 친근감이 있겠지.

    나는 이제 세상에 친구라고는 방금 사귀게 된 나밖에 없다는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만원짜리를 다시 상자째로 집어 들고 옥상을 나섰다. 예정에도 없던 단골가게가 생겨버릴 모양이었다.

    나는 돌아가면서 펫푸드나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8천 900원이었던가.. 아깝네..'

    만원짜리가 기분좋게 첨벙거렸다.
    777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친구가 첫 연극 주연을 맡았다.(후략)' [새창] 2017-12-19 22:12:25 0 삭제
    칭찬 캄사함니다 ㅠㅠ 그럴께욤!
    776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친구가 첫 연극 주연을 맡았다.(후략)' [새창] 2017-12-19 20:01:04 1 삭제
    저도 재밌게 썼어요! 제시해주신 스토리가 되게 재밌었거든요 ㅋㄷㅋㄷ

    눈돌리는 순간에 관해서는
    배우의 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친구와, 친구의 연극에도 와주지 않는 배우를 완전히 포기해버린 옛 시절의 패거리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의 화자가 어느쪽에 감정이입을 할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싶었어요. 설렘에 공감하고 실수에 상처받을수도 있고, 꿈을 잊어버리고 부외자가 되어 현실의 인생에만 충실하며 그런 실수에 무감할수도 있을텐데, 차마 그 불편한 무대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설렘도 기대도 실망도 상처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한다는, '관련'을 유지한다는 표현이 되었으면 했어요.

    혼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 나쁜 성격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무대가 끝나자마자 실수한 배우를 혼내는 연출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반성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무대가 끝나면 축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 순간에 그런 비난과 질책을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악감정에 매몰되는 사람(화자처럼)들은 결국 배우를 관두고, 그런것에 꿋꿋하게 대응할 수 있는 '친구'만 여전히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는게 그런 태도와 사고방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표현해봤어욤!
    775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친구가 첫 연극 주연을 맡았다.(후략)' [새창] 2017-12-19 15:47:30 2 삭제
    시립극장을 찾았다. 시청과 같은 부지에 있는 이 건물은 회색빛 사무색 잔뜩인 다른 청사 건물들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램프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르네상스 시절의 문화에 심취에 있었던 전임 시장의 작품이라지만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을 보면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한줄짜리 카펫은 무대의 주연 배우들만 걸어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카펫은 관리가 까다로워 대단히 큰 행사가 아닌 이상에야 꺼내놓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이번 무대는 그 유명한 연극계 거장이 참여한다며 홍보도 대대적이고도 지겹도록 했으니 그만한 공도 어지간함에 안쪽이었다.

    다만 오랜만에 제 역할 다해보는 귀한 카펫은 친구가 보내준 티켓 한장 달랑 들고 들어온 나는 밟을 수 없는 것이었다. 친구는 다 같이 아직 연극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패거리 모두에게 티켓을 보내왔다. 아쉽지만 일이다 뭐다 여유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나 뿐인듯 했다. 소란스러워졌다. 시립극장의 가장 커다란 문이 열리고 주연 배우들이 걸어들어왔다.

    나도 아는 얼굴. 우리가 아직 학교에 있을때에도 교과서에 실리곤 했던 그 거장이 우리 누추한 도시의 하나뿐인 시립극장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과연, 후광이라고 해야할까 광채라고 해야할까. 전임 시장의 모든 오버스러움이 지금 저 거장이 카펫을 밟는 순간 한꺼번에 다 의미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광채 너머로 따라 들어오는 조연들 행렬 속에 당당한 표정의 친구가 보였다. 이럴수가. 서른 먹고 내 무대도 아닌데도 주변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가슴이 떨리고 설렜다. 나를 발견한 친구가 그 당당한 표정을 유지하며 눈치만 살짝 보내 나를 아는체 했다.

    고풍스런 시립극장. 누구나 알아주는 거장. 그리고 그와 같은 무대. 우리 패거리가 학창시절에 꿈꾸던 모든 것이 이 순간에 있었다. 비록 나는 관객석으로 가겠지만, 분명히 그 꿈이 한번 이뤄진다. 이제부터 30분 후에 연극이 시작되면.

    나는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주체할수가 없어 행렬이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난 후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행사장에는 의레있는 출장꽃집에 다가가서 돈을 쥐어주고 꽃다발 하나를 예약했다.

    "연극이 끝나자마자 찾으러 올께요. 저거 따로 빼놔주세요."

    주인장은 알겠다며 친절한 눈인사를 했다. 이 출장꽃집에서도, 아니 이 광장에 모인 모든 축하상품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게 분명해 보이는 꽃다발을 예약해버렸다. 주책이지 주책이야. 하지만 부려 마땅한 주책이었다. 이정도 부리지 않으면 연극 내내 이 설렘을 주체할 수 없을게 분명했다.

    다시 들어서는 극장은 또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처음 이곳에서 기다릴때 떠다니던 것이 애매한 기대감이었다면, 이제 초라한 도시에서 광활한 연극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옛시절 몇번이고 읽어대던 연극의 시나리오 대본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그것은 응원해 마지 않는 영웅이 전장으로 출정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라는 낯뜨거운 대사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심경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2시간의 연극은, 눈을 돌리는 순간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었겠지만, 나의 인생에 있어서도 너무나도 역사적이었고, 차마 자리를 뜰 수 없을만큼 비극적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친구는 저 무대의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연습이 되어있고, 토씨하나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집요하게 대사를 외웠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을만큼 선명하게 동선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친구는 틀리고 말았다. 행동을. 대사를. 동선을. 두번, 그리고 세번에 네번을 거듭해서.

    거장은 틀림없이 거장이었다. 친구의 실수에 당황해 휘말리기 시작하는 주변 조연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아, 본래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선보일 수 있는 장면을 즉석해서 연출해냈다. 덕분에 조소가 될뻔한 관객들의 웃음은 썩 밝은 느낌으로 터져나왔다. 나는 그 즐거운 분위기에 짖눌려 죽을것 같았다. 친구는 끝내 자신의 파멸해버린 속내를 숨기며 웃음기 띈 당당한 표정으로 극을 따라갔다. 실수는 잦아들었다. 원래부터 실력은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저 무대에서, 이 극장에서, 이 배우와 관객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는 이미 낙인이 찍혀있었다.

    '저 사람은 다시 무대에서 볼 일이 없겠네.'

    나는 그 낙인이 연출진에게까지 펴져있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연극이 끝날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다행히 뒷자리의 관객들은 즐거운 연극이었다며 긍정적인 감상을 떠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려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수가 없었다. 친구가 실수했던것 처럼, 나도 한숨 내뱉기를 실수할것같은 허무맹랑한 감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때누군가가 잊고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아. 나 꽃다발 예약해 놨는데. 얼른 찾아와서 줘야지!"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 출장 꽃집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저마다 자신의 배우에게 주고싶은 꽃다발을 골라대느라 난리였다. 그중에도 한 꽃다발은 사람들의 수요를 한몸에 받았지만, 예약되어있다는 카드가 꽂혀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는 그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사람들의 꽃다발을 바라보는 아쉽다는 시선에서 나는 도망치듯이 다시 극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침을 삼키고 각오를 다졌다. 웃는 얼굴로. 그래 웃는 얼굴로 이 꽃다발을 전해야지. 학창시절 익혔던 모든 연기에 대한 배움을 살려서, 끝까지 웃는 표정과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전해야지. 친구가 사투를 벌여야했던 2시간과 달리 나의 장면은 딱 한컷으로 충분했다. 심호흡을 했다. 다행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실수를 하지는 않았다. 주연 배우들의 대기실은 출입이 통제되어있어서 배우들이 나올때까지 기다려야했지만, 조연들의 대기실은 꽃다발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나는 떨리는 발을 옮겼다. 그때 대기실에서 호통이 터져나왔다.

    "네가 정말 제정신이냐! 제정신 박힌 놈이냐!!"

    내가 연기실에 들어서고, 나이 있어보이는 연출진, 아마도 감독인 사람이 누군가를 혼내고 있고, 그 누군가가 내 친구였다. 마치 짜맞추어진 시나리오로 연출된 장면처럼 나는 그 순간에 들어섰다. 이정도의 비극, 학교에선 읽어본적이 없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 숨겨질까 싶은 무식하게 화려한 꽃다발을 소매에라도 숨기고 부리나케 무대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러지 않았다.

    친구는 오늘 하루종일 그랬던 것 처럼 당당한 표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믿을 수 없게도, 나를 보며 친근한 시선으로 아는체를 했다. 그 시선을 따라 연출진의 불똥이 나에게도 튀었다. 그는 사자처럼 콧웃음을 쳤다.

    "하! 이것 좀 보라지! 네가 오늘 연극을 아주 잘 했다며, 네 지인이 꽃다발을 선물하러 온 모양이야. 보이냐? 네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어보이냐!!"

    연출은 홧김에 그렇게 내뱉었지만 순간 아무 상관없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살짝 주춤하며 대기실의 반대쪽 문으로 걸어나갔다.

    "부끄러운줄 알아라!"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며.

    나는 화가 났다. 친구가 오늘 무대에서 느꼈을 감정을 통감하고 있지만,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가도, 내 꽃다발이 전임시장의 카펫보다 오버스럽다는 것도, 그런것쯤 모두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순간 저 연출을 쫒아가 발이라도 걸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꽃다발을 얼굴에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할말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시나리오는 커녕 망상에도 재능이 없었다.

    친구가 다가와 여태껏의 표정을 유지하며 그저 눈빛만으로 아주 정중하게 그러지 말아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친구는 나를 과대평가했다. 그러지 말라니 뭘 하지 말라는건지. 나는 뭔가를 할만한 상상력도 행동력도 없고, 그런 장면에 대한 리허설도 해보기전에 연극을 그만둔 범재였다.

    "잠깐만 기다려줄래."

    "아..어."

    나는 친구가 앉아있던 자리에 꽃다발을 내려두고, 친구가 짐을 챙겨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친구가 돌아왔을때 한번 내려둔 꽃다발을 다시 집어들어 건넬 용기가 없었다. 친구도 눈치챈 모양인지,

    "거기 나둬. 내일 와서 내가 챙길게."

    "응.."

    우리는 극장 밖으로 나섰다.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뭐하고 살았어, 그런정도. 나는 멋진 연극이었다는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우리는 습관처럼 아직 우리가 배우를 꿈꾸고 있던 시절에 모이곤 하던 술집으로 가서, 고기를 구으며 술잔을 따랐다.

    그리고 첫 잔, 그리고 첫 마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같이 학교를 다녔던 패거리들. 그녀석들은 항상 첫잔을 나누고 난 후에 얘기했다.

    '나 연극 그만두려고.'

    나도 해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말이 눈앞의 친구에게서 나오지 않기만을 광신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막지 못했으면서, 남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신경을 끊어서라도 막아보려고 내 몸통 속의 알수 없는 내장에다가 죽어라 힘을 쓰고 있었다.

    첫잔, 첫모금, 그리고 고기 한점.

    친구가 허탈하게 웃었다. 표정이 변했다. 오늘의 연극이, 오늘의 연기가 끝났다. 이제부터 진심이 나온다. 나는 급하게 각오를 다졌다. 친구의 입술이 무대밖의 대사를 뱉었다.

    "하하 실수해버렸네; 다음부터 잘해야지뭐. 짤리진 않은 모양이야. 다행이다~"
    774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중력' [새창] 2017-11-10 10:47:56 0 삭제
    중력은 사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힘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끌어 당기는 힘이라고 한다

    좀 더 무겁고 커다란게, 더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을 뿐이라서
    다른 것들이 이끌려가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여튼간에 그저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그것 마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너에게 끌려가는 것 처럼,
    우주에서는,
    어쩔 수도 없고 하염도 없이 다가가는 것 처럼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혹시 모르잖아.

    우주랑, 그리고 너를 끌어당기고 있는 걸지도
    모든 것들이 끌려오고 있어서
    바깥의 눈에는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지도

    나에게로, 나 이외의 모두가.
    그래서 그렇게 보여지는 걸지도,
    혹시 모르잖아.

    혹 내가 너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해서
    어쩔도리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해서
    너만 더 무거운듯이 굴지 말아줘
    너만 더 거대하고, 더 대단하고, 가치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나도 가엾고 하찮아서 너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만은
    아닐지도 혹시,
    모르잖아?
    772 출간기념으로 전자책 나눔합니다.(리디북스) [새창] 2017-11-02 02:30:39 0 삭제
    5. 잘읽을게요 감사함니다!
    771 소설이 팔리기 시작한다. [새창] 2017-10-27 01:48:54 14 삭제
    너무 좋은 담담함. 근 몇 년간 이렇게 즐거운 기분 드는 글이 있었나싶을 정도로요.
    770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달력' [새창] 2017-10-25 20:51:37 0 삭제
    주변에서 사들인 땅에 밭이나 공장이 있고, 추가로 밭도 더 만들고 공장도 세웠다는 식의 이야기를
    '밭이니 공장이니(하며) 사들인 땅'이랑
    '밭이니 공장이니(를)' 사들인 땅에 '모두 세워'
    두 가지의 중간쯤 의미가 될까싶어 생략해서 질러본 문장인데
    명목과 목적이 둘다 되긴 커녕 그냥 오류가 있는 문장이 되버린것 같아요..!
    차라리 땅을 사들이고 밭이니 공장이니 세워 자급자족을 시작했다 라고만 했어야 했나바여
    좀 더 괜찮은 서술 방식이 있을 것만 같은데 모를듯모를듯 몰르기만 하는 느낌으로 잘 모르겠서요..

    화물트럭은 여력이 된다면 원자력 건담으로 대체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를 해칠것 같아서 되는대로 전기 트럭인걸루 햇서요!
    769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달력' [새창] 2017-10-25 13:25:00 0 삭제
    달력을 넘겼다. 우리집 달력은 아직 세장이 남았다. 드문편이었다.

    어느 시점부턴가 일어난 종말 붐에 너나할것 없이 휩쓸려서, 제각기 믿는 종말일에 맞춰 달력을 다 뜯어버렸으니
    자기네 달력 뜯겨나간 날까지만 살다 죽겠다던 사람들도 도래할 기색없는 종말 안부 궁금해하며 살아남아있을 따름이고,
    그들은 그저 삶의 계획없는 난민되어 전국을 범람하고 있을 뿐이었다.

    "달력 기계를 돌려야겠구나."

    우리 고집불통의 아버지는 10월 11월 12월, 세장 남은 달력을 보며 생산동으로 가셨다. 우리집 달력은 아직 끝장날 계획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원체 남을 믿는 일이 없었다. 종말론이고 뭐고, 신도 못믿는 불신불통이었으니 종말 같은 것 믿을일도 만무했다.
    저마다 종말을 대비하겠다는 이웃들에 기가 차 하며 '그래 그럼 너네는 그짓꺼리 계속해라'하고는
    밭이니 공장이니 사들인 땅에 모두 세워 자급자족을 시작하신게 아버지였다.

    그런 어느날에 마을의 이장이 찾아왔다.

    이장의 달력은 엊그제까지였다. 종말론 붐도 꽤나 오래된 일이니, 엊그제가 만기인 이장댁네 종말은 굉장히 느긋한 성미였다 할 수 있었다.
    물론 기다린 날이 와도 하늘은 태평하기만 했고 이제 삶의 계획 없는 베짱이가 된 이장은 마을 사람을 끌고
    마을에 하나 있는 개미를 찾아온 셈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미간을 팍 찡그리고 이장을 마주봤다.

    "그게.. 염치 없는 부탁인줄은 알지만 겨울 동안만 좀 도와주게.."

    아버지는 찡그린 주름 새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쯔음에선 꽤나 감탄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허무맹랑한줄 알았던 종말론이 꽤나 구체화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사람들을 우리 자급자족의 공단에서 부양하기로 하면, 원래대로 아버지와 나 두명분의 생산을 계속해나갈때
    가장 추운 12월과 1월사이 어디쯤에서 분명 다같이 얼어죽겠지 싶었다. 뻔한 계산이었다.

    베짱이의 탈을 쓴 메뚜기 때는, 영락없는 종말의 사절단이었다.

    말없이 한참 담배를 태우던 아버지는 다 태운 짜리꽁초를 재떨이 털려다가 비벼버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달력 기계 끄고 오그라."

    과연, 그 불신불통의 아버지도 종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짜피 1월쯔음엔 죽을날만 기다릴테니, 딱히 달력도 필요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가 이어 말했다.

    "그 전기로 화물 트럭 끌어다가 보존 식량이나 좀 챙기러 가야것다. 도시에 가면 있겄지."

    추수도 끝난 10월. 당장에 닥칠 겨울에 마을사람 모두를 먹여살릴 식량을 트럭을 끌고 찾으러 간다니. 역시 신은 안믿지만 복권당첨은 믿는 아버지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대개의 모든 일에서 아버지에게 토를 달지 않으므로, 이번에도 딱히 토를 달진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생산동을 지나 안쪽에서 혼자 돌아가고 있는 달력기계를 찾아갔다. 전원을 끊고 가만히서서 덜덜거림이 잦아드는 달력기계를 보고있자니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12월이되고 막상 더 이상 달력의 뒷장이 없으면, 저 종말론자들이 또 무슨 극성을 부릴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정해진 종말이 왔니 뭐니하면서 추위와 굶주림을 핑계삼아 온갖 악감정을 뿌리고 다니지 않을까? 정말이지 그럴듯한 전망이었다.

    어쩔 수 없었으므로 나는 기계에서 내년 달력의 초안만 대충 옮겨적어서 들고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벌써 자기네들 짐을 푸느라 바빴다. 종말맞은 사람들도 챙겨다닐 짐은 있나보다 싶었다. 아버지는 이장과 함께 차고동에 트럭을 보러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주거동의 거실에 걸린 달력으로 가서, 챙겨온 달력 용지를 12월 뒤에 몇장 붙여넣었다. 그리고 직접 달력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이왕 수제인 김에, 그레고리력을 그만두고 세계력을 참고삼아 달력집아들력 1월 1일을 시작하기로했다.

    '어찌보면 정말로 여태까지 이어져온 달력의 역사가 종말을 맞고, 새시대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라고, 실실거리며 시시한 망상을 덧붙였다.
    768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태풍'or '나무' [새창] 2017-10-24 14:52:06 1 삭제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바다건너 어느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태풍이
    그 망망한 물길 따라 지치는 일도 없이, 도리어 점점 더 커져서 이 나라로 온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이니 뭐니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며
    그저 오랜 시간 언덕위에 서있었던 저는 그래봐야 소나무 한그루일 뿐.
    막을 수 있는 건 한낮 햇살 정도뿐인데요.
    태풍이라니 참, 무기력에 기운 빠지는 일입니다.

    뭐가 들이닥쳐도 나고 자란 이 마을에서 묻히겠다던 아랫길의 할머니도
    작년쯔음에 제 부모를 잃어 맡겨진 손주를 부둥껴 안고 피난준비를 하더랍니다.

    낡은 건물뿐인 이 해변마을은 태풍이 커다란 파도라도 몰고 올라치면
    바람에 날리고 물살에 뜯겨 흔적도 남지 못할 거라고
    똑똑하다는 사람들 경고에 경고 거듭하며 피난하십시오 피난하십시오 시끄럽게 떠들어댑니다.

    그래도 어찌할까요. 그 피난 권고가 아무리 옳은 소리인들
    뿌리 들고 앞장 설수도 없는 노릇인데요.

    마을 통째로 물에 잠겼다 떠오르면
    그래도 마을 살던 사람들 자기 집 있던 자리 찾아갈 수 있게
    그 소나무 있던 곳 저 아래 어디쯤이었지, 건너건넛길 저기쯤이었지 하고 찾을 수 있게
    언덕 위 노송은 자리를 지켜야겠습니다.

    뿌리에 힘 꽉 주고 바람이고 파도고 견뎌봐야겠어요
    세월에 비하면 그깟 재난, 또 얼마나 대단한 별것이려구요.
    767 어릴적 퀴니? 투니버스?에서 보던 애니메이션 이름을 찾습니다. [새창] 2017-10-18 09:56:04 1 삭제
    https://namu.wiki/w/%EB%8F%8C%EA%B2%A9!%20%EB%B9%B3%EB%B9%A0%EB%9D%BC%EB%8C%80?from=%EB%8F%8C%EA%B2%A9%20%EB%B9%B3%EB%B9%A0%EB%9D%BC%EB%8C%80
    요거 아닐까욤
    766 웹소설 같은 장르소설? 이런 류도 문학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새창] 2017-10-13 01:50:09 3 삭제
    가령 명백하게 문학이 아닌 설정집이나 교양서적 등도 집필자의 문체가 뛰어나다면 일종의 문학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닐거에요.

    같은 논리로, 장르소설 중에 문학적 가치가 애매한 작품들이 혹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추구하는 소설인 이상 명백한 문학이 아닐까요?
    765 (문장 연습 오늘의 상황)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 부담가지지 마세요' [새창] 2017-10-08 20:45:50 1 삭제
    영재 유치원의 교육 방식은 독특했다. 항상 정답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숙제로 냈다.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수아는 그 정답이없는 숙제들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내는데 꽤나 재능이 있었다. 선생님들도 수아를 영특하다고 곧잘 칭찬하곤 했다. 이름과 속눈썹만 보고서 여자아이로 착각해버리는 점만 뺀다면, 수아는 칭찬이 헤픈 유치원 선생님들을 꽤나 좋아했다.

    '오늘 문제도 멋진 대답을 찾아내서 칭찬을 받아야지!'

    수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오늘의 숙제를 발표하는 선생님의 입술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오늘 숙제는 장래희망이에요. 언제나처럼 정해진 정답은 따로 없으니까, 다들 자유롭게 생각해서 적어보고 부모님에게 확인 도장을 받아오도록 해요~"

    "네~ 선생님!"

    아이들은 합창하듯 신을 내서 대답하고, 각자의 숙제종이를 챙겨서 즐거운 발걸음으로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금요일. 수아의 아빠가 마중나오는 날이었다.

    "수아 오늘 유치원은 재밌었니?"

    "네!"

    수아의 아빠는 버스에서 내린 수아의 손을 잡고, 귀가버스를 인솔하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빠가 물었다.

    "그건 오늘 숙제니?"

    수아가 꼭 껴안고있던 숙제종이를 살짝 들어보이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네!"

    "오늘도 재밌는 숙제를 받았나 보구나."

    "얼른 풀어서 아빠한테도 보여줄게요!"

    "그래그래. 기대하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방으로 쌩 달려간 수아는 유치원에서부터 맴돌던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본 것이었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논리를 설계하고, 잘못된 문제점을 찾아낸다고 소개 된 직업이 있었다. 어려운 말이 가득이라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멋진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수아는 [프로그래머]라고 적어넣은 종이를 들고 아빠방으로 달려갔다. 수아가 내미는 종이를 미소지으며 받아든 아빠의 시선이 '오늘의 숙제 장래희망', 그리고 [프로그래머]라는 글귀를 훑었다. 잠시 턱수염을 만지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들."

    수아는 아빠의 어조에 평소처럼의 칭찬기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빠가 말을 이었다.

    "장래희망이니까 이왕이면 좀 더 큰 꿈을 가져보는 건 어떠니? 프로그래머란 직업은 힘든데 비해서 인정받기가 어려운 직업이란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숙제는 항상 딱히 정답이 없었던만큼 아빠는 수아의 의견을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상처받거나 혹은 세상에대한 불필요한 나쁜 인상을 가지지 않도록 항상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니.

    '혹시 이건 오답인걸까?'

    수아가 눈치 챈 의문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그렇다. 이 문제는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는 문제인 것이었다.

    아빠는 살짝 망설이면서도 숙제종이에 확인사인을 해주었다. 수아는 그 종이를 다시 받아들고 쌩하고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박봉, 야근, 불투명한 미래..'

    과연, 프로그래머는 틀림없는 오답인 모양이었다. 인터넷에 가득한 장래희망의 답안지에는 논리적인 오답풀이가 하나하나 명료하게 제시되어있었다. 수아는 영특한 아이였다. 정답이 없더라도 오답이 있다면 풀이방식도 존재한다. 언제나처럼 차근차근 오답을 제외시켜나간 수아는 금세 만족할만한 답을 찾아냈다. [프로그래머] 위에 두 줄을 죽죽 그은 수아는 그 답을 적어넣었다.

    [공무원]

    정답은 따로 없지만 오답은 가득한 문제. 수아는 오늘도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것이 뿌듯했다.

    그러고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이 문제는 평소의 문제들과 달리 오답이 잔뜩 있는데도, 정해진 정답은 없는걸까?
    이왕 오답이 있는 것 정답도 있다면 그걸 맞추고 칭찬받는 편이 쉽고 편할텐데.

    장래희망. 장래의 희망. 희망에는 답도 없기 때문인걸까?

    그때 안방에서 자고있던 수아의 누나가 부스스 머리를 긁으며 나오더니 숙제중인 남동생을 보고는 느적느적 다가왔다. 그리고 숙제종이를 내려다보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바보야. 넌 영재 유치원인가 뭔가 그거 다니면서 이런 쉬운 문제도 모르냐."

    그러고는 홀랑 종이를 가져가서 수아의 연필로 [공무원]위에도 두줄을 슥슥 그었다. 그리고 밑에 뭔가를 적어넣고 종이를 돌려줬다.

    "자. 이거 답."

    [돈 많은 백수.]

    ...이럴수가. 수아도 알 수 있었다. 정답이다. 정답이 따로 없다던 유치원 선생님이 틀렸음이 분명한 답이었다. 정말이지 장래의 희망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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