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뜬 기사의 내용에 최태민이 "내가 박근혜의 속옷까지 사다 줬다. 박근혜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사람"이라는 게 있더군요. 관련 검색으로 구글링해보면 남의 기사를 베껴서 제목과 내용 조금 바꿔 내는 이른바 '어뷰징 기사'들이 엄청나게 뜹니다. 그런데 내용은 중앙일보의 단독기사를 베낀건데, 제목은 참 자극적으로 달아 놓고 있습니다. "박근혜, 최태민이 사다준 팬티 입었다" 뭐 이런 식입니다.
내용은 그렇다 치고, 제목에 박아 놓은 그 선정성이 참 마음에 안 듭디다만, 어떻게 하든간에 자기 입을 속옷조차 제대로 혼자서 못 고르는, 때문에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올라가서는 안 되는 자리에 올려 놓은 것은 그 사람을 찍은 손(물론 국정원, 기무사까지도 동원된 총체적 부정선거)들 때문일테지요. 결자해지라, 그 사람을 지지해 대통령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긴 합니다. 그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을 겁니다. 부끄러워서.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판이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버니의 선거운동원으로 일했고, 경선 후엔 힐러리에게 투표 했으며, 미국 민주당의 여기저기 손 벌리는 후보들에게 소액 후원들도 했습니다. 안 그러면 역사 앞에 부끄러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광장에 다시 모일 사람들 중에선 열심히 야당들을 지지해 온 이들도 나올 것이고,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새누리당을 지지했고 박근혜를 지지한 것을 후회했기 때문에 나오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거겠지요.
저는 이른바 6월항쟁 세대입니다. 그때 광장에서 군중들과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며 거리에 나섰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꿨던 감격을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이제 한 번의 기억을 더 만들겠구나 하는 겁니다. 아마 시간이 꽤 지난 후, 사람들은 "11월 항쟁" 세대를 기억할 겁니다. 그것이 11월 혁명의 이름으로 기억되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기가 입을 팬티 하나 제 손으로 못 고르는 칠푼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끌어내리고 역사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기억을 나눠 갖는다면, 아마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 혁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대한민국이 전진할 수 있는 에너지는 더 커질 것입니다.
요즘처럼 한국의 현장에 가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강렬할 때가 몇번인가 싶습니다. 광장에 함께 서는 기억은 한 세대를 규정짓습니다. 6월항쟁 세대, 월드컵 세대, 촛불 세대... 모두 광장에 함께 섰던 경험으로 우리를 스스로 묶어내고 규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2016년의 겨울을 명예혁명의 시대로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우러나옵니다. 공화국의 겨울이 우리의 함성으로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다시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합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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