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영국의 잡지 더 이코노미스트를 펼쳤습니다. 며칠 전, 이 잡지의 서울 지국의 국장인 스테파니 스투더 씨와 전화로 45분가량 인터뷰를 했었고, 그 날은 JTBC가 한국의 정국을 바꿔버린 바로 그 뉴스를 터뜨린 날이었습니다. 기사엔 우리가 나눈 이야기 중 매우 일부만 실렸더군요. 그런데 꼭 실어줬으면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그 쪽에서 편집해 버린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지지율은 박근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박정희의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아놔 미친다. 이 아줌마들이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당해서 이런 지경을 당했다며 눈물까지 흘리네. 이거 말이 안 나와." 그 눈물은 '불쌍한 박근혜' 프레임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속아넘어간 것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박정희 지지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박근혜 자신으로서 서야 했습니다. 만일 그녀가 아버지의 유신을 철저히 부정하며 제대로 된 정치를 펼쳤다면 이 꼴까지는 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의 아버지의 잔상에 기대고, 그 시절부터 자기를 보좌, 혹은 좌지우지하던 것의 결과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일개 사인私人이 아니라 공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주의 정부의 기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시스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며, 시스템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 스스로가 시스템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그 이름이 아닌 박근혜 게이트로 불리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박근혜가 그 점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사인의 사적 욕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순실이 전횡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개인 박근혜의 무능과 정신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박근혜 자신이 스스로가 '시스템의 일부'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씨가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이유는 이제 그녀는 시스템으로서 작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자리를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그녀를 선출된 권력으로 만든 것 - 비록 그것이 이명박까지 관련된 부정선거 때문이라 하더라도 - 은 적어도 그녀가 그 시스템을 지키고 그 시스템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런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임을 입증했습니다. 만일 박근혜 때문에 울어 줄 분들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을 가지고 울어야 합니다. 속히 병원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그냥 청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인간적으로 슬퍼하십시오. 박근혜는 피해자가 아니라 무능한 사퇴 대상일 뿐입니다. 권력으로서의, 그리고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녀가 갖고 있는 권력은 금치산자에게 주어진 재산 같은 것이고, 그것이 국가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기에 그녀에게 주어진 권력은 박탈돼야 하는 겁니다. 10월 29일 청계 광장에 모였던 촛불과 민심은 바로 그 점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모였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