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딱 이 말이 생각나는 발표였습니다. 백남기 선생님의 사인이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우기는 서울대 의대의 가장 책임있는 사람들. 물론, 서울대는 국립대이고 정부의 입김이 세게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솔직히 전혀 이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 이 전혀 없이, 자기들의 양심이 지향하는대로 사인을 발표할 거라고 믿은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줄타기. 그나마 이들이 이런 줄타기를 하고 있는 건, 지금 현 정권이 어느정도 힘이 빠진 것의 반증이기도 할 겁니다. 아마 상황이 지금 이 정도가 아니라, 정권의 세도가 하늘을 찌를 때 같았으면 이런 줄타기 쇼 없이 버젓이 이 죽음이 병사이며 자기들의 결정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겠지요. 그리고 서울대 의대생들의 성명이나 졸업 동문들의 성명 같은 것도 언론에 비춰질 이유도 없었겠지요. 이미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나서 학자적 양심 같은 건 4대강 녹조 라떼 깊숙하게 가라앉은 지 오래 아니었습니까.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폭침이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4대강을 하면 강물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어용 학자들이 그랬고, 심지어는 이승만도 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썼음에도 1948년이 건국의 해라고 우기는. 권력 앞에 학자들의 양심이 죽어가는 것을 한두번 본 것이 아닙니다만, 백남기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이 교언영색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일 것입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것은 당시 부검의의 양심이었습니다. 고문에 의한 죽음이 밝혀지며 이 도화선엔 불이 붙었고,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뇌관은 터졌습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너무나 명명백백한 사실을 놓고 이를 뻔한 말로 감추려고 하는데서 이미 타들어가고 있는 분노의 도화선은 뇌관으로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는 것이겠지요. 이 기회주의의 속성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나중에 세상을 바꿔야 할 때 우리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겁니다.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며 양심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저들을 바꾸는 길이 생각보다 쉬울 것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정권교체가 그 열쇠가 되겠지요. 대신 개혁은 잔인하고 신속해야 할 겁니다. 도려낼 것들을 완전히 도려내는 걸 보여줘야 이 기회주의와 양심불량을 깨끗하게 청산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날은 옵니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 우리들을 인내심의 한계로 몰고 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민심은 곧 하늘이고, 이제 하늘이 노할 날이 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