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일어나 있으면 줄게</b></div> <div><br></div> <div>예전에 친구랑 바다에 놀러갔을 때 일인데,</div> <div>모래찜질을 하기로 하고, 사람이 너무 많으면 좀 부끄러우니까</div> <div>그다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친구 도움을 받아서 모래에 파묻혔어.</div> <div>얼굴엔 타지 않게 파라솔 같은 걸 받쳐두고보니 꽤 쾌적해서 꾸벅꾸벅 졸음이 왔어.</div> <div><br></div> <div>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더니</div> <div>"일어나 있으면 줄게"</div> <div>라는 젊지 않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div> <div>친구 목소리도 아니고, 왠지 억양 없는 톤이었어.</div> <div>많이 졸리기도 해서 무시했는데</div> <div>그 말을 한 후 아무 말 없더니 점차 기척이 사라졌어.</div> <div><br></div> <div>조금 지나서 모래에서 나온 후 바다에 들어가 놀았는데</div> <div>돌아갈 때쯤 파라솔을 거기 두고 온 게 생각나서 다시 가지러 갔거든.</div> <div>미리 말 안 했는데 그때 모래에서 나올 때 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div> <div>모래를 다시 쌓아두고 파라솔도 얼굴 부분이 안 보이게 잘 세워뒀거든.</div> <div>친구를 놀래켜주려고 그렇게 한 건데,</div> <div>기다리다가 지쳐서 딴 데서 놀다가 만났지 뭐야.</div> <div>아무튼 파라솔을 가지러 갔다가 내 눈에 보인 건</div> <div>다른 파라솔이 모래가 쌓인 부분에 수 개나 꽂혀 있는 광경이었어.</div> <div>내 파라솔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얼굴이 있어야 하는 곳에 수직으로 꽂혀 있었어.</div> <div><br></div> <div>그리고 면도기가 머리와 몸통 사이에 처박혀 있었고.</div> <div>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고..</div> <div>완전 무서운 이야기 흐름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div> <div>일단 쓰레기를 방치하면 안 되니까 내 파라솔이 찢긴 흔적은 가지고 가려고</div> <div>깊숙히 찔려 들어가 있는 파라솔을 뽑아 들었어.</div> <div><br></div> <div>그순간 멀리서 소리가 들리길래 시선을 돌렸더니</div> <div>모래사장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이는 거야.</div> <div>그 사람이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어.</div> <div>아직 해변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피하는 게 보였어.</div> <div><br></div> <div>나도 후다닥 달려서 차를 타고</div> <div>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있는 친구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도망쳤어.</div> <div>당황하긴 했지만 꽤 멀리 있기도 해서 도망은 쳤지만</div> <div>웃으며 "일어나 있었네" "일어나 있었네"라며 달려오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