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강가에 세워진 집</b></div> <div><br></div> <div>십수 년 전 일이다.</div> <div>나는 6살, 우리 형이 8살 때 쯤이었던 것 같다.</div> <div>우리는 추석에 부모님과 함께 넷이서 아버지 고향집에 놀러 갔다.</div> <div><br></div> <div>그날은 날씨도 쾌청해서 매우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div> <div><br></div> <div>밤에도 구름 한 점 없이, 은하수가 보였다. 경치가 최고였다.</div> <div>불꽃놀이를 하고 논 후, 사촌 형과 사촌 누나, 우리 형, 나 이렇게 넷이서</div> <div>밤 산책을 하기로 했다.</div> <div>원래 이런 밤에 나갈 일이 거의 없어서 탐험하는 기분이 들어 왠지 의기양양했다.</div> <div>사촌 형이랑 누나는 나이 차가 좀 있기 때문에 부모님도 흔쾌히 가라고 했다.</div> <div><br></div> <div>아버지 고향집은 매우 시골인데, 야트막한 언덕에 지어져 있다.</div> <div>집 뒷편은 대나무 숲인데, 그 대나무 숲 너머에 작은 시내가 흐른다.</div> <div>2차대전 전에는 그 시내를 따라서 길이 있었고,</div> <div>이 근방에는 가장 중심이 되는 길이었다고 한다.</div> <div>지금은 그 길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흔적처럼 시내를 따라 집이 드문드문 세워져 있었다.</div> <div>아버지 고향집을 포함해서 시내를 따라 세워진 집은 매우 낡았다.</div> <div>적어도 2차대전 전에 세워진 집들이다.</div> <div>아버지 고향집은 개조를 해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div> <div>다른 집은 너무 낡아서 왠지 폐허 같은 집도 있었다.</div> <div><br></div> <div>우리는 손전등을 쥐고 뒷뜰의 대나무 숲을 지나 시냇가로 갔다.</div> <div>옛날에 길이 있었던 탓일까.</div> <div>시내 옆 둑길은 평탄해서 걸어다니기 편했다.</div> <div>사촌이 말해서 둑길을 따라 상류로 가기로 했다.</div> <div>드문드문 서 있는 낡은 집들은 다 불이 꺼져 있었다.</div> <div>집들이 어둡다고 사촌 형에게 말했더니</div> <div>사촌 형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해주었다.</div> <div>"이 시냇가 길은 우리 사이에서는 담력 시험 하는 곳이야"</div> <div>사촌 형 말로는 이 시냇가에 세워진 집들은</div> <div>상류에서부터 순서대로 기묘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제일 상류에 있는 집은 30년 정도 전에 온 가족이 동반 자살했다.</div> <div>두 번째 집은 그 10년 후에 화재가 나서 불탔다. 가족 5인 중 두 명이 죽었다.</div> <div>세 번째 집은 혼자 살던 노인이 고독사했다. 두 달 뒤에나 발견되ㅏ었다.</div> <div>(나중에 들었는데, 숙부와 숙부 친구가 발견했다고 한다)</div> <div>네 번째 집은 금전난으로 아버지가 자살하고, 그 후 가족들이 흩어졌다.</div> <div><br></div> <div>"....그럼 다섯 번째 집은?"</div> <div>우리 형이 물었다.</div> <div>사촌 형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div> <div>"다섯 번째 집은 우리 집이야"</div> <div>소름이 돋았다. 만약 사촌들과 숙부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div> <div>침묵이 우리 넷 사이를 감싸 돌았다.</div> <div>나는 어린 마음에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몰라서 아무 말 없이 사촌들을 따라 갔다.</div> <div><br></div> <div>몇 분 정도 걷다가 "두 번째 집"의 흔적에 도착했다.</div> <div>어두워서 잘은 안 보였지만 경작지로 바뀐 것 같았다.</div> <div>문득 내 눈에 보인 게 있었다.</div> <div>폭신해 보이는 빛 구슬 같은 게 희미하게 떠 있었다.</div> <div>깜짝 놀라서 들여다보았다.</div> <div>빛 구슬은 두 세 번 위 아래로 움직이더니 훅하고 꺼졌다.</div> <div>왠지 무서워서 "그만 집에 가자"라고 했다.</div> <div>사촌들과 우리 형 모두 사실은 돌아갈 타이밍을 놓쳐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div> <div>내 말에 다들 주저하지 않고 찬성하며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div> <div><br></div> <div>추석이 끝나 집으로 돌아갔지만</div> <div>나는 그 빛 구슬과 사촌 형이 해준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다.</div> <div>만약 아버지 고향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란 생각에 잠 못 잔 날도 있었다.</div> <div>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또한 기억이 옅어졌다.</div> <div>초등학생 때는 아버지 고향집에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놀러갔지만</div> <div>점차 그 횟수도 줄어들었다.</div> <div>형은 대학에 들어가서 자취하게 되었다.</div> <div>그때는 둘 다 아버지 고향집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div> <div><br></div> <div>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던 여름, 형이 집에 왔다.</div> <div>우리는 나름 우애좋은 형제여서, 저녁 식사 후에</div> <div>둘이 좋아하던 영화를 틀어놓고 수다를 떨었다.</div> <div>영화가 끝났지만 수다는 그치지 않았고, 계속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div> <div><br></div> <div>말이 나온 계기는 까먹었지만, 문득 대화의 화제가 그 여름 날로 돌아갔다.</div> <div>"그때 들은 이야기 되게 무서웠어, 그치?</div> <div> 아직 사촌 형이랑 누나한테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지 뭐야"</div> <div>"그러게. 나도 아직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아"</div> <div>내 말에 긍정하는 형을 보며, 이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div> <div>바로 빛 구슬 이야기이다.</div> <div>왠일인지 이 일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div> <div>지금까지 침묵하고 있었다.</div> <div>"그러고보니 말이야~ 그날 본 게 있는데"</div> <div>"불덩어리..라기보다는 빛 구슬? 같은 거.</div> <div> 그 화재로 불탔다는 그 집터에서 봤어"</div> <div>내 말을 듣더니 형이 놀란 눈으로 날 봤다.</div> <div>"나도"</div> <div>"뭐?"</div> <div>"나도 봤어! 이상한 빛 구슬! 둥둥 떠 있었어!"</div> <div>이번에는 내가 놀랐다.</div> <div>어쩌면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 빛구슬을 형도 봤다니.</div> <div>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며, 서로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div> <div>그날 밤 잠들지 못 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몇 달 후, 형이 죽었다.</div> <div>어느 사고로 인한 죽음이었다.</div> <div>사고 내용을 쓰면 신분이 들킬 수도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div> <div>평범하지 않은 특이한 사고사였다. 뉴스에도 나왔다.</div> <div><br></div> <div>이듬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div> <div>뒤따라가듯 할머니와 숙부가 돌아가셨다.</div> <div>셋 다 같은 병으로 사망하셨다. (전염병은 아닙니다)</div> <div>희긔한 병명이었고, 의사도 이런 우연이 있냐며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div> <div>애당초 숙모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던 지라</div> <div>사촌 형과 사촌 누나만 남게 되었다.</div> <div><br></div> <div>숙부 장례식 저녁에 사촌 형과 누나랑 같이 술을 마셨다.</div> <div>둘 다 이 집을 나간다고 했다.</div> <div>"역시.. 무섭잖아. 믿는 건 아니긴 하지만..."</div> <div><br></div> <div>술이 세지 않은 탓에 술을 깨려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div> <div>멍하니 뜰을 걷다가 뒷뜰로 나가봤다.</div> <div>졸졸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div> <div>당시엔 울창하던 대나무숲은 모두 잘려나갔다.</div> <div>황폐해진 대나무 숲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뒤돌았다.</div> <div>사촌 집 앞에 그때 봤던 빛구슬이 둥둥 떠 있었다.</div> <div><br></div> <div>왠지 이런 생각이 든다.</div> <div>나는 얼마 후 죽을 지도 모르겠다고.</div> <div>형과 같은 사고로...</div> <div>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