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18번째 계단의 감촉</b></div> <div><br></div> <div>몇 년 전부터 계단 오르는 게 힘들다.</div> <div>대체적으로 10번째 계단 쯤에서 오른쪽 다리가 걸린다.</div> <div>왼쪽은 아니고 무조건 오른쪽 다리.</div> <div>내려갈 땐 또 괜찮은데, 올라갈 때만.</div> <div>다음 계단에서 오른 쪽 다리를 올리기 직전에 갑자기 다리가 당겨져서 굳어버려서</div> <div>그 순간 삐걱하고 밸런스가 무너져서 앞으로 넘어진다.</div> <div>그럴 때는 난간을 잡거나 2,3계단 위로 억지로 올라간다.</div> <div>그래서 계단을 올라갈 때는 한 계단 씩 확인하며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div> <div>빨리 걸어갈 수 없어서 서두를 때는 발 아래를 확인하며 한 계단을 건너뛰어 올라간다.</div> <div>아마 원인은 내 등이 굽은데다가 발목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div> <div>(발바닥을 땅에 붙인 채로 쭈그려앉기 안 됨)</div> <div>그런 신체적인 이유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div> <div>이 증상은 별 것 아니지만 좀 힘들었다.</div> <div>넘어진 적은 없지만, 뛸 때는 좀 귀찮으니까. ㅋ</div> <div><br></div> <div>그래서 며칠 전 저녁, 직장 근처 육교를 지나갈 때</div> <div>계단 올라가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div> <div>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넘어져도 내가 방해될 것 같지도 않고.</div> <div>발 아래는 보지 않고 계단 꼭대기를 보면서</div> <div>일반 사람들이 걷는 정도의 빠르기로 발을 옮겨 계단을 올라갔다.</div> <div>이렇게 하다보면 10번째 계단에서 넘어지는 건 당연한데 그땐 좀 달랐다.</div> <div>대략 15번째 계단까지 아무 일 없이 올라갔다.</div> <div>이 육교는 모두 33계단이 있다.</div> <div>이대로가면 쭉 올라갈 수 있겠다며 두근거리며 올라가던 그 순간</div> <div>대략 18 계단 정도 올라간 쯤에서 갑자기 물컹하고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div> <div>깜짝 놀라서 발 아래를 봤다.</div> <div>뭔가 떨어진 걸 밟은 건 아닌가, 설마 개똥...</div> <div>하지만 별다를 것 없는 콘크리트 계단만 있을 뿐이었다.</div> <div>그뿐이었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div> <div>?????</div> <div>이상했지만 이미 발을 뗐기때문에 그대로 왼발이 19단 위로 올라갔다.</div> <div>물컹</div> <div>역시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div> <div>18번째 계단과 다른 점은, 조금 튀어 올라온 점.</div> <div>그 뭐냐, 찌그러트린 알루미늄 캔을 밟는 것 같은 그런 느낌?</div> <div>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발로 확인해 봤더니</div> <div>계단이 불균일해서 여기저기 마디가 있었다.</div> <div>전에 코타츠에서 자던 오빠 손을 나도 모르게 밟은 적이 있었는데 ㅋㅋㅋㅋ</div> <div>지금 생각해보니 그것과 감촉이 비슷했던 것 같다.</div> <div>손이었던 걸까? 오빠 손보다 좀 부드럽고 물컹물컹했는데... 썩은 건가?</div> <div>하지만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계단이다.</div> <div>발의 감촉과 시야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웠다.</div> <div>손으로 만져서 확인해보려고 일단 17번째 계단으로 다시 내려갔는데</div> <div>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div> <div>돌돌 만 머리에 하이힐을 신은 화려한 차림의 아가씨가</div> <div>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올라왔다.</div> <div><br></div> <div>아무 것도 없는 계단 중간에서 어물쩡거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div> <div>갑자기 부끄러워서 그냥 위에 올라가자 생각하며 다시 18번째 계단에 발을 올렸다.</div> <div>그랬더니 갑자기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서 줄이 떨어져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div> <div>친구가 선물로 준 한정판 키티 휴대폰 줄이 아래에서 세번째 계단까지 떨어졌다.</div> <div>황급히 가지러 내려갔다.</div> <div>중간에 그 여자도 지나쳐 올라갔다.</div> <div>나의 존재는 무시하고 그냥 올라갔다.</div> <div>그래서 키티 님을 구출했는데 끈이 끊어져 있었다.</div> <div>계속 사용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고칠 수 있을까? 하고 쳐다보는데</div> <div>여자 발소리가 안 들린다는 걸 꺠달았다.</div> <div>조금 전까지만해도 하이힐 굽 소리가 엄청나게 울렸는데.</div> <div>돌아보니 육교 위에 여자 모습이 온데간데 없었다.</div> <div>그 육교는 계단이 좌우양옆 네 개 있는 게 아니라,</div> <div>도로 양쪽에 각각 하나씩 밖에 없는 육교이다.</div> <div>이렇게 짧은 시간에 계단을 올라가서 건너편으로 넘어가, 계단을 내려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div> <div>위에서 쭈그리고 있거나 넘어진 걸지도 모르겠다.</div> <div>두근거리며 계단 위로 올라갔다.</div> <div>서둘러 올라가다보니 평소보다 더 화려하게 넘어졌지만 난간을 잡고 오라갔다.</div> <div>18번째 계단에 발을 디뎠다.</div> <div>이번엔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div> <div>19번째 계단도 마찬가지였다.</div> <div>손으로도 만져봤지만 극히 평범한 단단한 콘크리트 감촉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div> <div><br></div> <div>결국 그 여자는 위에 올라가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div> <div>분명 내 옆을 지나쳐서 계단을 올라갔는데.</div> <div>지나치면서 강렬한 향수 냄새가 난 것도 기억이 난다. 분명 잘못 본 게 아니다.</div> <div>하지만 하이힐 소리는... 내 기억에 의하면 20번 정도 들렸다가 그쳤다.</div> <div>30번이나 들리지 않았다.</div> <div>그 여자는 어딜 올라간 걸까?</div> <div>그리고 그 18번째 계단의 감촉은 무엇이었을까?</div> <div><br></div> <div>그대로 이상한 감촉이 드는 18번째 계단보다 더 올라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div> <div>그렇게 생각해보니 무서웠다.</div> <div>계단에서 넘어지는 증상은 어쩌면 누군가가 일부러 넘어지게 한 걸 지도 모르겠다.</div> <div>내가 이상한 곳을 밟아서지 않도록.</div> <div>올바른 곳에 발을 밟을 수 있도록.</div> <div>그러고보니 나는 태어날 때 거꾸로 들어 있어서 오른쪽 다리부터 태어났다고 한다.(나중엔 제왕절개했지만)</div> <div>휴대폰 줄을 선물한 친구에게는 감사한다.</div> <div>다음 주 다시 친구 무덤에 인사하러 갈 예정이다. 후하게 꽃을 두고 올 겁니다.</div> <div>또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다가 최근에는 계단 공포증이 생겼다.</div> <div>게다가 최근에는 왼쪽 다리까지 넘어지기 시작했다...</div> <div><br></div> <div>계단을 올라갈 때는 조심해서 확인하며 올라가고 있다.</div> <div>정말 여긴 올라가도 괜찮을까 하고.</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