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장지문의 구멍</b></div> <div><br></div> <div>초등학교 고학년 때 쯤 이야기.</div> <div><br></div> <div>당시에 내 방은 다다미 방에 장지문이 있는, 일본 전통 방에</div> <div>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생활을 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밤, 열이 많이 나서 누워 있었는데 한밤중에 눈이 떠졌다.</div> <div>하루 종일 누워 있다 보면 잠자는 것 밖에 할 게 없어서 밤에 눈이 떠지고 그러니까.</div> <div><br></div> <div>당연히 불도 다 꺼져 있고, 장지문도 닫혀 있어서 방 안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div> <div>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눈에 익으면 어느 정도 (바깥 불도 있고 하니까) 방 안이 보여왔다.</div> <div>그런 상태로 누운 채로 멍하니 장지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왠지 방 안이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div> <div>익숙한 내 방의 풍경인데도, 어딘가가 묘하게 이상했다.</div> <div>게슈탈트 붕괴 같은 증상과는 다른, 뭔가 형언하기 힘든 어색한 감이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러다가 깨달았다.</div> <div>내 방 장지문은 내가 뚫은 구멍이 몇 군데 있었는데</div> <div>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왠지 그 숫자가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div> <div>이상하다, 구멍이 이렇게 많았나...</div> <div>그런 생각을 하며 구멍 숫자를 세어 보았다.</div> <div>열도 높았고, 막 일어난 참이라 멍한 머리로.</div> <div><br></div> <div>분명 평소의 구멍보다 많았다.</div> <div>평소에 3개 정도 뚫려 있었다면 7개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div> <div>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한 번 더 세어 보려고 했더니</div> <div><br></div> <div>찌익</div> <div><br></div> <div>하고 구멍이 뚫리는 순간을 봤다.</div> <div>순간 얼어붙었다. 장지 밖은 창문이라 분명 창문도 닫혀 있었다.</div> <div>밖에서 무언가(누군가) 구멍을 뚫을 리가 없다.</div> <div>머리도 혼란스러웠고, 아무 것도 못 하고 장지문을 보고 있었는데 또</div> <div><br></div> <div>찌익</div> <div><br></div> <div>하고 다른 곳에 구멍이 뚫렸다.</div> <div>너무 무서워서 일어나려고 해도</div> <div>높은 열 때문에 온 몸에 기운이 없어서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div> <div>이제 장지문 쪽은 보고 싶지도 않아.</div> <div>하지만 등지는 것도 무서워.</div> <div>어떻게 하지-</div> <div>이런 생각을 하는데</div> <div><br></div> <div>부욱</div> <div><br></div> <div>하고 한 번에 다섯 군데나 구멍이 뚫렸다.</div> <div>마치 다섯 손가락을 그대로 찔러 넣은 것처럼.</div> <div>그리고 다섯 구멍이 각자 아래 쪽으로 넓어졌다.</div> <div>찔러 넣은 손가락으로 장지문을 찢는 것처럼.</div> <div><br></div> <div>실제로 장지문에 다섯 손가락을 찔러 넣고 아래쪽으로 찢으면 다섯 줄이 생기는 게 아니라</div> <div>중간에 한 곳으로 모여서 일제히 찢기는데,</div> <div>그때도 그렇게 되었다.</div> <div>한 곳으로 모여서 찢기는 바람에 꽤 넓게 찢어졌다.</div> <div><br></div> <div>울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그렇다고 장지문에서 눈도 떼지 못 하고 있었더니</div> <div>찢어져서 생긴 커다란 구멍에서</div> <div>새카만 긴 머리카락이 늘어졌다.</div> <div>이쯤되니 바깥 창문이 닫혔건 열렸건 그런 건 상관 없이</div> <div>유령이 기어들어오려고 하는 구나 생각했다.</div> <div>머리카락이 점점 늘어지며, 머리가 다 방 안에 들어왔다.</div> <div>거기서 기절했다.</div> <div><br></div> <div>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div> <div>무사히 아침이 밝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div> <div>밤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소름 끼쳐하며 장지문을 봤다.</div> <div>장지문의 구멍은 모두 사라졌다.</div> <div>그래서 안심했지만 또 어딘가 어색했다.</div> <div><br></div> <div>장지문의 구멍이 하나도 남김 없이 사라져 있었다.</div> <div>내가 뚫은 구멍조차도 사라져서, 마치 다시 종이를 바른 것처럼 깨끗했다.</div> <div>장지문을 잘 보니 바른 지 시간이 꽤 지나서 약간 색이 바랜 그대로 구멍만 사라져 있었다.</div> <div><br></div> <div>장지문을 열었다가 또 소름이 돋았다.</div> <div>창문에 손바닥 자국 두 개가 나 있었고, 긴 머리카락이 10개 정도 붙어 있었다.</div> <div><br></div> <div>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믿지 않으셨고</div> <div>장지문 구멍도 "원래 없었지 않냐"고 하셨다.</div> <div>하지만 분명 내가 뚫은 구멍이 있었다.</div> <div><br></div> <div>그 후 집을 다시 지을 때까지 잘 때는 장지문을 등지고 잤다.</div> <div>다행히 그 날 밤 이후 이상한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지만</div> <div>지금도 계속 구멍이 늘어나던 그 광경이 떠오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