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가족끼리 간 스키 여행</b></div> <div><br></div> <div>어릴 때 겪은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말했더니 재밌는 소릴 들어서.</div> <div><br></div> <div>최근 가족끼리 스키 여행을 갔는데,</div> <div>스키장에 가던 중에 내가 태어나서 처음 스키장에 갔던 때 이야기를 했다.</div> <div>그 당시 나는 세 살(한국나이 4~5살)이었고, 처음 타는 거라서</div> <div>사람이 드문 경사면에서 아버지와 형과 같이 스키 타는 연습을 했다.</div> <div>한참 연습하다가 갑자기 형이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div> <div>아버지가 같이 화장실을 찾으러 가버려서</div> <div>나는 혼자서 야트막한 경사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연습했다.</div> <div><br></div> <div>화장실을 못 찾았는지, 아버지와 형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서</div> <div>재미도 없고 피곤하기도 해서 스키를 벗고</div> <div>스노모빌이 옆에 있는 창고 같은 건물의 지붕 아래에 앉아 쉬기로 했다.</div> <div>잠시 멍하니 앉아서 스키타던 다른 손님들을 보고 있었는데</div> <div>자박 자박하고 눈을 밟으며 천천히 걷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div> <div>(참고로 이 창고 뒷편은 스키장 입구와 반대쪽의 산)</div> <div>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서, 아버지와 형이 날 놀래키려고 몰래 뒤에서 온다고 생각해서</div> <div>내가 놀래켜주려고 숨 죽이며 기다렸다.</div> <div><br></div> <div>발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div> <div>"왁!"하고 뛰쳐나갔더니</div> <div>거기엔 아버지와 형이 아니라, 엄청나게 크고 짙은 고동색의 털복숭이가 있었다.</div> <div>얼마나 컸냐 하면, 옆에 있던 스노모빌의 세 배는 되는 크기에</div> <div>창고 지붕 꼭대기에 닿을 정도로 컸다.</div> <div>당시에는 어려서 그랬는지 무섭진 않았는데</div> <div>그냥 이렇게 큰 생물이 있었나? 아무리 떨어져 있긴 해도 왜 다들 이 동물을 못 보고 있지?</div> <div>라는 게 신기했는데</div> <div>그 거대한 털복숭이가 천천히 한 발 다가와서</div> <div>내 머리에 코를 가까이 대더니 킁킁하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div> <div>그때 '아 이거 멧돼지구나'하고 깨닫고 멧돼지가 이렇게나 덩치가 크구나!하고 어린 마음에 놀랐다.</div> <div>한참 냄새를 맡더니 만족했는지 "흠"하고 말하더니 뒤돌아서 산으로 돌아갔다.</div> <div>아무리 어려도 동물이 말할 리가 없다는 건 알던 때라</div> <div>깜짝 놀라 넋을 잃고 산으로 가는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멧돼지 뒷모습이 안 보이게 되자 아버지와 형이 돌아왔고</div> <div>나는 딱히 뭘 보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div> <div>그대로 스키 여행은 끝났고 평범하게 지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이번 스키 여행을 가면서</div> <div>못 믿을 이야기지만 아버지에게 말씀 드렸더니</div> <div>아버지가 "그러게 어쩐지~ 넌 기억 안 날 수도 있지만 그때 간 게 큐슈에 있던 스키장이었거든"라고 하셨다.</div> <div>뭐가 '어쩐지'인진 모르겠지만</div> <div>어쩌면 내가 본 건 멧돼지 신일지도 모르겠다.</div> <div><br></div> <div>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돼지띠입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