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거울 속의 나나</b></div> <div><br></div> <div>저는 어릴 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div> <div>집이 시골이어서 주변에 또래 친구도 없었습니다.</div> <div>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같이 놀 수 없었습니다.</div> <div>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모두 동생이 태어난 후로는</div> <div>전처럼 저를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쓸쓸했던 것 같습니다.</div> <div>어쨌든 그때 저는 매일 혼자 놀며 시간을 보냈습니다.</div> <div><br></div> <div>우리 집은 낡은 시골집 구조라서 작은 방이 많이 있었습니다.</div> <div>남서쪽 구석에 창고방이 있었고, 그 안에 낡은 도구와 자잘한 물건을 넣어두었습니다.</div> <div>그 창고방에 들어가서 장난감 대신 그 안에 처박힌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게 일과였습니다.</div> <div><br></div> <div>몇 살 때 그 거울을 발견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div> <div>원래는 손거울이었던 것 같은데</div> <div>제가 발견했을 때는 틀 같은 게 떨어지고 없는, 둥근 거울 조각이었습니다.</div> <div>꽤 낡아보였는데, 녹이 슬거나 뿌옇게 변한 부분도 거의 없이 잘 비쳤습니다.</div> <div>그리고 이것도 언제 적 일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div> <div>어느 날 그 거울을 들여다보니 제 뒤에 모르는 여자 아이가 비쳤습니다.</div> <div>놀라서 돌아봤지만, 당연히 제 뒤에 여자 아이는 없었습니다.</div> <div>아무래도 그 아이는 거울 속에만 있는 듯 했습니다.</div> <div>신기했지만 무섭지는 않았습니다.</div> <div>흰 피부에 긴 머리를 한 여자아이였습니다.</div> <div>그 아이는 거울에 비치는 제 어깨너머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빙긋 웃었습니다.</div> <div>"안녕"</div> <div>이윽고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div> <div>저는 그 아이를 나나라고 불렀습니다.</div> <div>부모님은 창고방에 틀어박혀서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는 절 보시고 안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div> <div>거울을 뺏지는 않으셨습니다.</div> <div>게다가 어른들에게는 나나가 보이지 않는 듯 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제가 나나에게</div> <div>"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쓸쓸해"라고 했습니다.</div> <div>그러자 나나는</div> <div>"이리 와서 나와 놀면 되잖아" 라고 했습니다.</div> <div>하지만 제가</div> <div>"어떻게 거기 가면 되는데?"</div> <div>라고 물었더니 나나는 곤란한 듯</div> <div>"나도 몰라" 라고 답했습니다.</div> <div>그러다가 나나가</div> <div>"…물어볼게" 라고 작은 소리로 덧붙였습니다.</div> <div>저는 누구에게 물어보는 건지 알고 싶었지만</div> <div>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고 며칠이 지나서 나나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div> <div>"여기 오는 방법을 알아냈어. 여기서 나랑 놀자"</div> <div>저는 기뻤지만, 부모님이 항상</div> <div>"어디 나갈 땐 할아버지나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가렴"하고 말하셨기 때문에</div> <div>"엄마한테 물어볼게" 라고 했습니다.</div> <div>그러자 나나는 또 곤란해하더니</div> <div>"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돼. 말하면 큰일이 난대.</div> <div> 앞으로 못 볼 지도 몰라"</div> <div>하고 말했습니다.</div> <div>저는 그건 싫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 말씀을 어길 수도 없어서</div> <div>아무 말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div> <div>그러자 나나는</div> <div>"그럼 내일은 여기서 놀자, 응?" 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div> <div>저는 "응"하고 답했습니다.</div> <div>"약속했다?"</div> <div>나나는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div> <div>저는 그 손가락에 마주보듯 제 새끼 손가락을 거울에 댔습니다.</div> <div>아주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았습니다.</div> <div><br></div> <div>그 날 밤은 좀처럼 잠에 들지 못 했습니다.</div> <div>부모님께는 나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div> <div>그런데 침대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러 의문이 떠올랐습니다.</div> <div>- 거울 안에 어떻게 들어가는 거지?</div> <div>- 거긴 어떤 곳이지?</div> <div>- 나나는 왜 이쪽으로 오지 않는 거지?</div> <div>- 여기에 돌아올 수는 있는 걸까?</div> <div>그런 걸 생각하다보니 점점 불안해졌습니다.</div> <div>그리고 나나가 무서워졌습니다.</div> <div>다음 날, 저는 나나를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div> <div>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저는 창고방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div> <div>결국, 그 후 저는 창고방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세월이 흘러 제가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div> <div>졸업한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서 일하게 되어</div> <div>저는 결혼하여 가족을 일구었습니다.</div> <div>이쯤부터 나나를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div> <div><br></div> <div>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가 임신하고 잠시 처가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div> <div>가사도 귀찮고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쓸쓸하고 해서</div> <div>저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고 친가에 종종 돌아가곤 했습니다.</div> <div>그 날도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대로 거기서 자기로 했습니다.</div> <div>밤에 눈이 떠져서 화장실로 갔습니다.</div> <div>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무심결에 거울을 봤습니다.</div> <div>복도 중간의 미닫이문이 열려 있었고, 그 어둠 너머에 그 창고방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div> <div>그때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div> <div>화장실에 들어올 때 그 미닫이문을 닫은 기억이 분명히 있었습니다.</div> <div>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역시 그 미닫이문은 닫혀 있었습니다.</div> <div>하지만 다시 거울을 보니 미닫이문이 열려 있었고,</div> <div>창고방의 흰 문이 어둠 속에 홀로 떠올라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div> <div>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div> <div>그 미닫이문이 조금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div> <div>그 순간, 저는 나나가 기억났습니다.</div> <div>순간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div> <div>역시 미닫이문이 움직였습니다.</div> <div>한 번 더 돌아보니, 복도의 미닫이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div> <div>거울 속에서는 미닫이문이 반 이상 열려 있었습니다.</div> <div>열린 문 너머, 미닫이 안의 어둠 속에서 흰 물체가 떠올라있었습니다.</div> <div>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 한 공포에 떨면서도 저는 그 흰 물체를 바라보았습니다.</div> <div>그것은 그리운 소녀의 미소띤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은 끊어졌습니다.</div> <div><br></div> <div>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이불 안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div> <div>정말 기분 나쁜 꿈을 다 꿨어...</div> <div>그렇게 생각한 저는 집에 있기가 싫어서 그 날은 쉬는 날이었지만</div> <div>집에 바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div> <div>저희 맨션에는 반지하에 주민용 주차장이 있습니다.</div> <div>대낮에도 어스름한 곳인데, 주차장의 내 지정 주차 공간에 주차한 후,</div> <div>마지막으로 확인 차 백 미러를 보았습니다.</div> <div>그러자 바로 제 뒤에 나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div> <div>깜짝 놀라 뒤를 보았지만,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div> <div>백미러를 다시 보니 나나가 아직 거기에 있었습니다.</div> <div>거울 안에서 가만히 제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div> <div>흰 피부에 긴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나나는, 예전 그대로였고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div> <div>너무 무서워서 눈도 돌리지 못 하고, 벌벌 떨며 그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니,</div> <div>나나가 빙긋하고 웃었습니다.</div> <div><br></div> <div>"안녕. 왜 그때 안 왔어? 나 계속 기다렸는데"</div> <div>나나가 여전히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div> <div>제가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더니, 나나가 계속 말했습니다.</div> <div>"있지, 이제 나랑 여기서 놀자"</div> <div>그리고 거울에 비친 제 어깨 너머로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div> <div>"여기서 놀자…"</div> <div>"안 돼!"</div> <div>저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div> <div>"미안 나나. 나는 이제 그쪽으로 가지 않아. 갈 수 없어!"</div> <div>나나는 손을 뻗은 채로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div> <div>저는 핸들을 힘껀 쥐고 벌벌 떨며 아까보다 작게 말했습니다.</div> <div>"나는 아내가 있어. 아이도 곧 태어나고. 그러니…"</div> <div>그때 저는 머리를 숙인 채 절규했습니다.</div> <div>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떨다가, 용기를 내어 다시 천천히 거울을 보았습니다.</div> <div>나나는 아직 거기에 있었습니다.</div> <div>"그래… 알았어. 너는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이제 나와 못 노는 구나"</div> <div>나나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습니다.</div> <div>"어쩔 수 없지…"</div> <div>나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빙듯 웃었습니다.</div> <div>정말 순수한 미소였습니다.</div> <div>저는 그때 나나가 저를 용서해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div> <div>"나나…"</div> <div>"그럼 나 그 아이랑 놀래"</div> <div>제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나나는 사라졌습니다.</div> <div>그후 나나는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div> <div>이틀 후, 아내가 유산했습니다.</div> <div>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습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