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실 자르개</b></div> <div><br></div> <div>20년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div> <div>시골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div> <div><br></div> <div>외가는 그 동네에서 좀 이름을 날리던 집인데,</div> <div>의사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선생님"이라고 불렸다.</div> <div>그런 사람이라 여기저기 애인도 만들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가</div> <div>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평생을 휘둘리신 분이었다.</div> <div>그리고 그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div> <div>배다른 형제들이 외할머니의 적은 유산을 주지 않으려고</div> <div>외할머니의 장녀인 우리 엄마에게 장례식장에서</div> <div>"너 줄 유산은 없다" "빈 손으로 그대로 돌아가라"고 하였다.</div> <div>애당초 엄마는 외할머니의 유산을 받을 생각이 없으셨지만</div> <div>아무거나 좋으니 유품이 될만한 것이라도 갖고 싶다고 했더니</div> <div>짜투리 실 한 가닥도 안 줄 거라고 해서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셨다.</div> <div><br></div> <div>그리고 저녁 먹을 때 이런 일을 이야기하는데</div> <div>갑자기 막내 여동생(당시 2살-한국 나이 3~4살)이 "앗"하고 소리치며 자기 장난감 박스로 갔다.</div> <div>그리고 신문지에 쌓인 작은 걸 꺼내더니</div> <div>"할머니가 이거 가지랬어"라며 엄마에게 건넸다.</div> <div>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서 다들 머릿 속에 물음표를 띄우던 중</div> <div>엄마가 신문지를 펼쳤더니</div> <div>그 안에는 외할머니가 재봉하실 때 쓰시던 실 자르는 자위가 들어 있었다.</div> <div>사용하기 편하도록 손잡이 부분에 실을 묶어 두어서</div> <div>엄마는 한 눈에 외할머니 물건이란 걸 아셨다고 한다.</div> <div>동생에게 자세히 말해보라 하니, "할머니가 왔어" "가지래"라는 엉뚱한 말만 해서</div> <div>결국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div> <div>할머니는 바느질을 참 잘하셔서 자신이 입던 기모노와 평상복 모두 직접 만드셨고</div> <div>피는 못 속인다고 엄마도 평상복, 기모도 바느질을 잘하셔서 이웃집에 알려줄 정도였다.</div> <div>원래 유산은 받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div> <div>할머니 재봉 도구를 받으려고 했던 엄마에게 생각지도 못 한 선물이 되었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