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고목</b></div> <div><br></div> <div>내가 전에 살던 집의 바로 옆에는 나이가 수십 년 됨직한 큰 잣밤나무가 있었습니다.</div> <div>우리 집 뒤에 사는 주인의 나무였는데,</div> <div>우리 집에는 그 나무 때문에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div> <div>그 이유인즉, 가을이 되면 엄청난 낙엽이 우리 집 정원으로 들어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div> <div>나무가 수십 년 이상된 고목이라서, 뿌리에서 2, 3미터 정도 썩어서</div> <div>당장이라도 우리 집 쪽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div> <div>태풍이 부는 날에는 온 가족이 오늘은 진짜 쓰러지지 않을까 하며 매번 노심초사했습니다.</div> <div>몇 번이나 그런 사정을 주인에게 토로해보았지만</div> <div>"우리 집 땅에 있는 걸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며 막무가내로 거절하니</div> <div>거의 반은 포기한 상태였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런데 어느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결국 그 고목 가지가 부러졌는데</div> <div>그 두터운 가지는 우리 집이 아니라, 이웃에 있던 다른 집에 쓰러진 겁니다.</div> <div>지붕의 기와도 깨져서 떨어지고 무너지고 정말 끔찍한 모양새였습니다.</div> <div>그것 때문에 손해배상 이야기까지 나와서, 결국 그 고목은 잘리게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고목을 잘라내고 1년 후.</div> <div>그 자리에는 6층 맨션이 세워지고</div> <div>제일 윗층에는 뒷집 주인의 조모가 관리인 겸 입주했습니다.</div> <div><br></div> <div>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입니다.</div> <div>일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div> <div>맨션은 우리 집으로 가는 랜드마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div> <div>먼곳에서도 훤히 보였습니다.</div> <div>맨션으로 다가감에 따라, 맨션 옥상 쪽에 희끗희끗 안개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div> <div>한 발짝 딛을 때마다 맨션이 가까워졌습니다.</div> <div>그리고 그 희끗희끗한 것의 정체도 뚜렷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div> <div>안개와 같은 흰 연기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 목이 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div> <div>목은 각각 다른 얼굴이었고, 남녀노소 각양각색이었습니다.</div> <div>그런데, 그 얼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div> <div>다들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며칠 후.</div> <div>맨션 관리인인 할머니가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습니다.</div> <div>노인성 치매가 원인이라고 결론지어졌지만, 과연 그랬을까요?</div> <div><br></div> <div>왜냐고요?</div> <div>제가 본 그 얼굴들은 할머니가 살던 방 바로 위였던 게 이유 중 하나.</div> <div>또 하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접적인 이유.</div> <div>할머니의 죽음은 투신에 따른 타박상이 원인이 아닙니다.</div> <div>땅에 있던 나뭇가지가 목을 관통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노목의 원한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