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옥수수</b></div> <div><br></div> <div>옥수수가 식탁에 올라오는 계절이면 어김 없이 우리 집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div> <div>지금은 이미 70세 가까이 되신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겪으신 일이다.</div> <div><br></div> <div>외동딸인 엄마는 당시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증조모와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div> <div><br></div> <div>아주 작은 촌락이었는데,</div> <div>이웃끼리 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div> <div>외조부모님은 그 마을에서 드물게 맞벌이를 하셨는데</div> <div>연합군 통역가, 교사셨다.</div> <div>증조모님은 당시 80세가 넘으셨는데도 밭도 갈고, 집을 보셨다.</div> <div>이웃집은 꽤 부농이었고, 그 집 아들딸도 수 명 있었다.</div> <div>그 중에서 선천적으로 다리가 좋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div> <div>다리 때문에 농사일은 못 한다고는 해도,</div> <div>머리가 명석하여 친형제들을 어렵게 여기면서 남들 몰래 숨어 지내는 걸</div> <div>엄마 가족은 이웃이라 잘 알고 있었다.</div> <div><br></div> <div>그 남자가 청년이 될 쯤 기차에서 자살했다.</div> <div>가업을 돕지도 못 하고, 보살핌만 받는 처지를 비관한 것 같았다.</div> <div>소문으로 듣자하니 그는 꽤나 혹독한 처지였던 것 같다.</div> <div>외갓집도 아는 바가 있었다.</div> <div>그가 오후에 망가진 채소를 가지고 와서는 아궁이를 빌리러 온 적이 있었다.</div> <div>(자기 점심 식사 분을 가지고 와서 조리해서 가는 것)</div> <div>외갓집에서도 "제대로 식사도 안 주는 거 아니야?"하고 걱정되어</div> <div>선뜻 아궁이를 빌려주고, 우리 집의 채소도 주곤 했다고 한다.</div> <div><br></div> <div>사건이 있었던 날은 작은 마을에서 대사건이 일어난 셈이라 소동이 일었다.</div> <div>현장 대응, 장례식 절차... 어른들이 모두 돕게 되었다.</div> <div>외조부모님도 각자 퇴근하여 마을 일을 도왔다.</div> <div>처참한 현장에는 아무도 신원 확인하러 가지 못 하고 있어서</div> <div>외할아버지가 직접 나섰다.</div> <div>외할머니는 저녁 식사 늦어질 것 같다며 삶은 옥수수를 두고 갔다.</div> <div>초등학생이던 엄마는 외증조모와 둘이서</div> <div>오후부터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날 때까지 집에 있었다.</div> <div><br></div> <div>그러던 사이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div> <div>외증조모님이 이상했던 것이다.</div> <div>외증조모님께서 큰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은 옥수수를 게걸스럽게 드셨다.</div> <div>이상해, 이상해하는 사이 혼자서 거의 다 먹어치웠다.</div> <div>평소의 외증조모님은 옥수수를 먹을 때 이가 안 좋다며 한 알씩 빼 드셨다.</div> <div>그리고 어차피 노인이 먹는 거라 소량만 드셨다.</div> <div>또한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더니,</div> <div>본인의 손주인 엄마를 보며 엉뚱한 질문을 하셨다.</div> <div>외증조모님 자신이 고르고 골라서 표식을 해둔 가지 종자를</div> <div>"저건 뭐야? 왜 표식을 해뒀어?"라고 계속 물어보셨다.</div> <div>똑소리나던 평소 모습과 너무 달랐다.</div> <div>엄마는 어린 마음에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서 외증조모님께 왜 그러냐고 호소했지만</div> <div>정작 본인은 멀뚱멀뚱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div> <div><br></div> <div>외할아버지가 돌아오셔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외할아버지는 금방 눈치를 채셨다.</div> <div>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인 외증조모님께 한 마디.</div> <div>"어머니! 이상한 것에게 씌이시면 곤란합니다!!"</div> <div><br></div> <div>한참지나 외증조모님은 제정신이 돌아왔지만</div> <div>옥수수나, 자신의 손녀에게 계속 질문했던 걸 기억하지 못 했다.</div> <div>또한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div> <div>외증조모님이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부적을</div> <div>우연히 이 날만 깜빡하고 걸지 않으셨다.</div> <div><br></div> <div>외증조모님은 그 후에도 장수하시다가 92살에 타계하셨다.</div> <div>외증조모님의 이변이 이웃집 남자의 죽음과 관계있는지는 알 수 없다.</div> <div>"적어도 마지막에라도 배불리 먹고 싶었던 걸 지도 모르지"하고 우리 가족은 말한다.</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