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때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예의범절을 배웠고, 웃어른 공경과 동네 어르신들에게 항시 인사를 드려야 한다 배우며
자랐습니다.
제 할머니는 생전에 중,고등학생들에게 길을 물어보실 적에도 결코 하대를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저 학생. 길을 잘 몰라 그러는데 길좀 알려 줄래요?"
할머니 손 잡고 제 외가댁 갈때 였죠. 전 나이가 어렸고 할머니는 길을 잘 몰라 길 가던 학생에게 길을 물어보셨습니다.
그 학생이 길을 알려주면 "아이고 고마워요 학생" 이러면서 인사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른의 모습이 저러한 것이라 저는 생각했고 그렇게 관념이 굳어졌습니다.
저번에 지하철을 탔는데 제 아버지뻘 되는 분이 대뜸 반말로 무슨 역이 몇정거장 남았냐 묻더군요.
아.. 순간 '초면에 왜 반말을 하세요.' 라고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아닌건 아니니까요. 자신이 존중 받으려면 남을 먼저 존중해야 하는데, 나이 많다고 해서 반말부터 한다는 것이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헌데 "내가 몇살 인줄 알아?" 라며 호통을 치더군요
순간 주변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고 이러다 촬영 당할지 모르겠다. '지하철 무개념 남'으로 찍힐지 모르겠단 생각에
"전 잘 모르니 다른분에게 물어보십쇼" 하고 마침 지하철이 서길래 그냥 내렸습니다.
저는 초면일 경우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하대, 반말 안합니다. 이건 아닌거 같아요. 알바생들한테도 반말부터 하는거 보면 저건 좀 아닌거 같아요
어릴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