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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3597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626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9/17 20:38:04
    http://todayhumor.com/?lovestory_93597 모바일
    [BGM]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박정원, 디카에 잡힌 바람




    어금니 세 개가 빠졌다

    앞니가 1mm쯤 벌어졌다


    금강교 아랜 꽃잎 그득 흐를까

    개골산 쪽으로 갔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지나간 다음에야 알았다

    뿌리까지 캐낼 듯 휘감는 모습을 몽타주로도 그려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달려들지 도대체가 묘연한 얼굴들


    경사진 쪽으로만 불었다

    골바람처럼 매서웠다

    바람을 겨누던 발암(發癌)이 바람으로 읽히었다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던 발자국들이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곪아터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선명히 잡혔다


    씹히는 바람마다 이빨사이에 끼이고

    여전히 마무리 중

    어디에도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

     

     

     

     

     

     

    2.jpg

     

    김선호, 립스틱 지우다




    붉은 해안선을 크린싱 티슈로 지우자

    물결 자국만 남았다

    립스틱을 칠하고

    투명 립글로스로 덧칠하고

    반짝이는 은빛 펄이 지워지면

    다시 그리고 붓으로 칠하듯

    물결은 종일 해안선을 다녀갔다

    립스틱 지워진 어머니의 입술처럼

    물결 다녀간 자리가 모래알로 까칠하다

    파랑이 높아지며 격했던 바닷가

    숫한 해일을 뱉고 삼키느라

    뒤척이고 일렁이면서도 지키는 자리

    파도는 이따금 해안선을 물어 올리며

    혀 밑에 감춰둔 설움을 뱉어내게 했다

    정박해 있던 폐선이 휩쓸려 갈 때는

    텅 빈 마음조차 하얗게 부서졌다

    밀려가는 파도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저만치 어둠에 묻힌다

    씻기지 않는 바람이 불자

    중심선이 지워진, 아득한 그 수평선

     

     

     

     

     

     

    3.jpg

     

    이승희, 맨드라미 피는 까닭은




    상처로 물이 고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이 상처의 집을 짓고 있다

    그러므로 물을 들여다보는 일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나는 종일 물을 들여다본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양은 자라고 생살은 돋지 않았다

    사는 일이란 게 처음부터 상처 나는 일이었다고

    맨드라미가 빨갛게 피었다


    손끝으로 물을 가만히 누르면 지루한 바람이 불어왔다

    얼굴을 물 속에 묻고 참으로 진부하게 길을 묻는다

    물이 지워진 입, 닫혀진 입의 흔적을 지우며

    결 고운 입자로 흘러갔다

    상처가 까맣게 맨드라미 씨앗으로 익어갈 무렵

     

     

     

     

     

     

    4.jpg

     

    윤희상, 말의 감옥




    혀끝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겨 혀를 쏘았다

    쏟아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자라는 말을 베어 물었다

    그렇더라도

    생각은 말로 했다


    저것은 나무

    저것은 슬픔

    저것은 장미

    저것은 이별

    저것은 난초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은 가지고 실컷 떠들고 놀 것을 그랬다


    꽃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향을 피울 것을 그랬다

    온종일 말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아무도 몰래, 불어가는 바람 속에

    말을 섞을 것을 그랬다

     

     

     

     

     

     

    5.jpg

     

    이향란, 죽은 나무의 벽화




    시든 게 아니다, 죽었다


    그 나무 화분에서 뽑아

    뿌리의 마른 흙을 털고 물에 씻어 햇빛에 말린 다음

    상처로 얼룩진 북향 벽에 건다


    줄곧 발 없는 울음이 온몸으로 기어올라

    못으로 종지부를 찍던 벽

    그 벽에서 나무의 푸른 계절이 흘러나오고

    새의 부리와 나비의 날개

    혹한의 바람이 배어나온다

    오래돼 숨 가쁜 음악처럼


    끝내 열매 맺지 못한 유실수의 구겨진 꿈들이

    그늘진 자리에 하나둘 드러누울 때


    철마다 사라졌던 연록의 잎들 나무에 죄다 돋아나

    지나간 싱그러움을 조용히 흔들어보는 저녁


    죽은

    나무가 그린 벽화

    환하고 그윽타


    저 나무에게 되돌릴 마지막의 그것은 무엇일까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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