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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93475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527
    IP : 14.58.***.139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22/08/05 15:33:44
    http://todayhumor.com/?lovestory_93475 모바일
    [BGM]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나영, 여름의 문장




    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散文)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

    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의 힘

    저 솜털의 미세한 촉수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다

    매미의 허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 넣어주면

    다시 한 번 여름을 공명통처럼 부풀려 놓을 것만 같다

    한 떼의 불량한 바람이 공원을 지나고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지는

    저 텅 빈 기호 하나

    정수리에서부터 등까지 북 내려 그은

    예리한 저 상처

     

     

     

     

     

     

    2.jpg

     

    안미옥, 목제 숲




    양손에 색이 다른 단추를 쥐고 있다

    구름은 얼어서 투명해지고

    망설이지 않는 손을 갖고 싶은 저녁


    집이 가까워지면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곤 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나 짐승 혹은 밥의 냄새가 아니었다


    나는 붉은 가방을 메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나가는

    사람, 닮은 사람, 뛰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다리를 숨겨두었다


    펼쳐진 식탁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선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수련회에 갔더니

    잘못한 일들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했다

    친구들이 울면서 무언가 적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함께 모인 친구들과

    둥글게 돌면서 노래를 불렀다


    불 속에선 무언가 타고 있다

    모두가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데

    내 손은 퉁퉁 얼어 있었다

     

     

     

     

     

     

    3.jpg

     

    나태주, 숲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가슴을 후벼내는

    비의 살내음

    숲의 살내음

    천 갈래 만 갈래 산새들은 비단 색실을 푸오

    햇빛보다 더 밝고 정겨운 그늘에

    시냇물은 찌글찌글 벌레들인 양 소색이오

    비 개인 아침 숲 속에 들면

    아, 눈물 비린내. 눈물 비린내

    나를 찾아오다가 어디만큼 너는

    다리 아파 주저앉아 울고 있는가

     

     

     

     

     

     

    4.jpg

     

    윤제림,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방법 하나는

    노래하며 걷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눈물을 훔치며

    손목을 잡는 버드나무가 있을라

    마침 흰구름까지 곁에 와 서서

    뜨거운 낯이 한껏 더 붉어진 소나무가 있을라

    풀섶을 헤치며 나오는 꽃뱀이 있을라


    옛사랑은 고개를 넘어오는

    버스의 숨 고르는 소리 하나로도

    금강운수 강원여객을 가려낸다

    봉양역 기적 소리만으로도

    안동행 강릉행을 안다


    이젠 어디서 마주쳐도 모르지

    그런 사람 찾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걸을 일이다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5.jpg

     

    안도현, 분홍 지우개




    분홍 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 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통통볼의 꼬릿말입니다
    kYOH2d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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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8/05 17:50:18  59.2.***.158  사과나무길  563040
    [2] 2022/08/06 00:10:42  121.165.***.216  93%충전중  796600
    [3] 2022/08/06 10:32:29  1.227.***.251  볼빵빵고양이  5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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