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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669473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81
    조회수 : 3540
    IP : 119.195.***.230
    댓글 : 2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5/01 21:36:56
    원글작성시간 : 2013/05/01 21:24:27
    http://todayhumor.com/?humorbest_669473 모바일
    배경음) [단편소설] 독신녀의 방에 어서오세요 [재업주의]
    <EMBED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오랜 시간 한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BR>오랜 시간 동안 한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BR><BR>얼핏 보면 수수해보지만 그렇지도 않은 그런 여자.<BR><BR>그 여자는 아름다우면서도 꾸밈이 없었다.<BR>꾸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포기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BR><BR>여자로서의 포기. 어쩌면 그게 더 맞는 생각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BR><BR>때로는 편의점 안으로 찾아들어 물건을 샀다.<BR>담배, 바나나 우유, 주스.<BR><BR>나름 손님임에도 이 여자는 얼굴을 한번 쳐다보는 일이 없었다.<BR>여자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개미 같은 목소리를 냈다.<BR><BR>한번은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볼까 싶기도 했지만<BR>편지를 쓰는 것까지는 쉬워도 전해주기는 어려웠다.<BR><BR>결국, 나같은 사람이 된다는 거 였나보다. 스토커.<BR><BR>나는 여자가 편의점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뒤를 밟았다.<BR>여자가 혹여 뒤를 돌아볼까 노심초사였지만 여자는 길을 걸을<BR>때에도 곧잘 땅만 쳐다보며 걷고는 했다.<BR><BR>그녀의 집을 알아내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BR><BR>나는 다음날 열쇠수리공을 불러 집 문을 열고 그녀의 방을 들어가 보았다.<BR><BR>그녀의 방은 뭐랄까. 향이 없었다. 여자들의 냄새.<BR>그리고 또 특별히 뭐라 콕 찍어 설명이 힘들었지만,<BR>이곳은 여자의 방이라는 뉘앙스가 없었다.<BR><BR>꼭 여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방에는 그 흔한 화분조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BR><BR>커튼은 민무늬의 카키색 천 쪼가리가 볼품이 없었고,<BR>침대와 이불도 순 카키색 옅은 무늬가 들어간 재미없는 물건들뿐이었다.<BR><BR>냉장고 안에는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BR>물, 음료수 하나, 언제부터 얼어붙어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피자 한 조각.<BR><BR>TV는 존재하지 않고, 17인치로 보이는 작아 보이는 모니터와<BR>싸구려 컴퓨터가 책상도 아닌 조막만 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BR><BR>옷장 속은 여자의 옷장이란 느낌을 풍기며 많은 옷이 들어있었지만<BR>오랜 시간 잠겨있던 옷장의 향이 자욱하게 풍겨왔다.<BR><BR>확실히 내가 그녀를 스토킹하며 봐왔던 옷은 몇 벌 보이지 않았다.<BR><BR>방을 둘러보다 졸업앨범을 찾아 앨범을 뒤적이며 그녀를 찾았다.<BR>졸업 사진의 고등학생 시절의 얼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금방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BR><BR>2008년 졸업생. 이름 정지영.<BR><BR>어릴 적부터 빼어난 미모였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 모습을 보면 예상이 어려워 소스라칠<BR>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조금 의아스러운 건 지금의 모습과 상반되는 사진의 모습이었다.<BR><BR>반의 친구들과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감 있고 밝은 활기찬 고등학생의 모습.<BR><BR>책장에 들어있는 책이 졸업앨범과 몇 권의 소설이 전부였다.<BR>허리춤까지 오는 작은 책장인데도 허전함이 느껴졌다.<BR><BR>컴퓨터를 켜자. 바로 윈도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BR><BR>겨우 60기가 남짓의 하드디스크 내용물을 살살 뒤져보자<BR>최근의 드라마 몇 편 이외에는 별다른 데이터가 없었다.<BR><BR>게임조차도 하지 않는 여자 같았다.<BR><BR>한참 방을 뒤져보고는 텅텅 비어있는 방의 살풍경이 마치 여자의 삶을 대변하듯 느껴졌다.<BR>스토커로서 주제넘게도 나는 정지영이란 여자를 동정하게 되었다.<BR><BR>방을 좀 더 둘러보다 방의 키를 찾게되어 열쇠집을 찾아가 열쇠를 복사했다.<BR>열쇠를 복사하고 그녀의 방에 다시 열쇠를 돌려 놓으러 가는 길. 길가에서<BR>팔고있는 선인장 화분을 하나 샀다.<BR><BR>여자의 방에 열쇠를 돌려두고, 화분을 올려둘 그럴듯한 장소를 찾았다.<BR>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화분을 책장에 얹어두었다. 허전했던 책장이<BR>그나마 공간을 차지하며 약간은 쓸쓸함이 줄은 듯 보였다.<BR><BR>여자가 이 화분을 보고 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BR><BR>며칠 뒤 그녀가 출근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그녀의 방을 찾아갔다.<BR>현관에 서서 열쇠를 넣어 돌리니 휙 하고 열쇠가 걸림 없이 돌아갔다.<BR><BR>'조심 좀 하지...'<BR><BR>방에 들어서자 이상하게 방에서 은은한 여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BR>커튼까지 꽁꽁 쳐 두었던 창은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해놓은 상태였다.<BR><BR>오늘은 무엇을 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그녀가 읽은 책들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이 들었다.<BR>개중에는 여자가 편의점 일을 하면서 읽던 책도 있었다. '공중그네' 오래 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었다.<BR><BR>한참 동안 엎드려 책을 읽었다.<BR><BR>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며 내가 방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BR>책을 자리에 돌려놓고 현관으로 향하는 거실에서 난 얼마 전 사뒀던 화분이 현관 신발장<BR>위로 자리를 옮긴 것을 보았다.<BR><BR>'버리진 않았네?'<BR><BR>여자가 눈치채면 화분을 가져다 버릴 줄로만 알았다.<BR>화분에 다가서니 포스트잇 종이에 정성껏 쓴 듯 보이는 글씨가 보였다.<BR><BR>'당신은 누구 신가요?'<BR><BR>"뭐야. 이 여자 스토커한테 누군지 묻는 거야?"<BR><BR>나는 별 희한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신발을 신었다.<BR>신발을 신고 현관을 열려고 하는데 생각지도 안았던 현관문에<BR>포스트잇이 한 장 더 붙어있었다.<BR><BR>'신고하지 않을게요. 또 오세요.'<BR><BR><BR><BR><BR><BR>-1부 끝-<BR></P> <P><BR><BR><BR>"2,700원입니다."<BR><BR>3,000원을 내밀며 담배 각을 받아 들었다.<BR><BR>잔돈을 돌려받으려 손바닥을 위로 올린체 손을 내밀자.<BR>그녀의 손이 내 손바닥 위에서 300원을 오므려 쥔 체 멈춰 섰다.<BR><BR>나는 잠깐 동전이 내 손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기다리다 그녀를 올려 보았다.<BR>그녀는 "왜요?" 라며 내게 되려 물었다. 전까지는 본 적 없는 선명한 눈빛을 한<BR>그녀의 눈빛이 날 투명한 사람 보듯 투영하는 것 같았다.<BR><BR>며칠 전 그녀와 그녀의 집 앞 복도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BR><BR>그녀의 방은 편의점에서 20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BR>때문에 나는 그녀가 퇴근하기 30분 전에 알람을 미리 설정해 두곤 했는데,<BR>그날은 무슨 일인지 그녀가 일찍 퇴근을 한 것 같았다.<BR><BR>뛰어오기라도 한 것이었을까.<BR><BR>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오르던 그녀와 스쳐 지나갈 때는<BR>심장이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나 방 안에 있을 나를<BR>잡아채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BR><BR>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던 그녀가 갑작스레 계단을 뛰어 내려왔었다.<BR>툭탁거리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내게 다가올 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BR><BR>"아저씨, 여기사세요?"<BR><BR>느닷없이 내 팔을 움켜쥔 그녀의 감촉은 놀라웠다.<BR><BR>이렇게 생기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거니와,<BR>내가 스토커라는 감을 잡았다는 것도 놀라웠다.<BR><BR>"아니요."<BR><BR>"네, 저도 아저씨 본적 없는 것 같아요."<BR><BR>"그래서요?"<BR><BR>"여기 왜 오셨어요?"<BR><BR>그때의 확고한 눈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대충 그곳에 친구가 살고 있다며 둘러대자<BR>여자는 순순히 나를 돌려보냈다.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누가 누구와 친구인지 캐물을 수 없으니<BR>그녀도 그 정도에서 납득할 수 있는 변명을 들었다는 눈치였다.<BR><BR>'봐줬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도둑이 제 발을 저린 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BR><BR>그리고 지금 이런 행동을 보인다.<BR>잔돈을 움켜쥔 손을 아직 풀 생각조차 안 하는 그녀였다.<BR><BR>"잔돈, 주세요."<BR><BR>그녀는 웃는 것도 인상을 짓는 것도 아닌<BR>이상한 표정을 하며 내 손위에 동전을 떨궈줬다.<BR><BR><BR><BR>때때로 시간이 생겨 그녀의 방에 찾아가면 현관 앞에는 '열쇠는 바꾸지 않았어요.' 라는<BR>메시지가 적혀있던가 '혹시 생각 있으시면 드세요.' 라며 냉장고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곤 했다.<BR><BR>컴퓨터를 켜보면 안에는 드라마 파일명에 드라마가 재미있는지<BR>별반 재미가 없는지에 대한 간략한 평점을 별표 표시를 해서 달아 두었다.<BR><BR>책장에는 새로운 책들이 꼽혀있었다. 새로 구입한 책에는 <BR>'이걸 제일 먼저 읽어보세요.' 라는 포스트잇 메시지가 있었다.<BR><BR>평일은 일이 바빠서 그녀가 방을 비우는 시간과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BR>내가 일이 끝나고 나면 그녀는 최소 일이 끝나고도 두세 시간은 지난 후였다.<BR><BR>때로는 그녀가 집에 있는 동안 들어가 볼까 라는 망상을 하며 가슴이 설레였지만,<BR>그렇게 된다면 이 애매한 상황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다.<BR><BR>나는 지금 이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BR><BR>최근 회사에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에 집에<BR>다가올 즘이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BR><BR>그리고 오늘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다리가 풀려버렸다.<BR><BR>'죄송해요. 다녀갑니다.'<BR><BR>나의 방 현관 앞에 붙어있는 메시지가 그날 편의점에서<BR>보여준 그녀의 태도 의미를 알려주었다.<BR><BR>'찾았다.'<BR><BR><BR><BR><BR><BR>-2부 끝-<BR></P> <P><BR><BR><BR>서둘러 집에 들어가 보니 집안에서 딱히 이상한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BR>방을 둘러보며 혹시나 그녀가 어딘가에 남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BR>그녀는 소소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BR><BR>혼자 사는 남자 집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내 방도 지저분했다.<BR>대충 던져놓은 휴지 조가리, 담배 껍데기, 생수병, 컴퓨터 앞 담배꽁초가 산을 이룬 재떨이.<BR><BR>사라진 물건 따윈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BR>텅텅 빈 재떨이 밑에 '다른 물건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BR><BR>거짓말 같지는 않았다.<BR><BR>손에 쥐고 있던 검정 비닐봉투 안에서 맥주가 식어가는 것이 떠올라 냉장고에 다가가니<BR>'맥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라는 메시지가 있었다.<BR><BR>냉장고를 열어보니 안에는 열댓 개의 맥주 캔과 과일이 몇 가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BR><BR>냉장고 가장자리에 사온 맥주를 대충 욱여넣으며 살살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BR>뒤돌아 대충 옷가지를 벗어 던지며 땅바닥에 널브러트렸다.<BR><BR>욕실 앞에는 '샴푸가 다 떨어졌어요.' 라는 메시지가 있었다.<BR><BR>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씻으며 몸을 헹구는 동안 거울에 슬슬 김이 서렸다.<BR>서린 김 사이로 무언가 어렴풋이 글자들이 보이는 것 같은데 잘 읽을 수가 없었다.<BR><BR>"뭐, 잘... 뭐지?"<BR><BR>물을 뚝뚝 떨구며 옷을 말려두는 건조대로 다가가자 옷가지가 전부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BR>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며 개인 빨래들을 주어 서랍장에 담으려는데 양말 더미에서 쪽지가 하나 툭<BR>하며 떨어졌다. '이 양말 구멍 났어요.'<BR><BR>빨래 더미를 내려놓고 개인 양말을 펼쳐보니 정말로 뒤꿈치가 다 헤져서 구멍이나 있었다.<BR>양말을 움켜쥐고 휴지통에 대충 던져 넣었다. 휴지통 가득하던 쓰레기들도 모두 사라졌다.<BR><BR>육포를 담을 접시를 씻으러 싱크대에 다가서니 그릇들이 전부 설거지 되어있었다.<BR><BR>'너무 오래 안 하시면 냄새나요. 오늘만 제가 할게요.'<BR>그릇수납장에 쓰여있는 글을 읽으며 접시를 하나 집어 들었다.<BR><BR>육포를 조금 구워서 먹으려고 하는데 '과일 안주로 드시면 안 돼요?' 라는 글이 가스렌지 위에 붙어있었다.<BR><BR>냉장고에서 사과 하나와 맥주를 한 캔 집어들고 방에 들어가 TV 리모컨을 집어들었다.<BR><BR>'저희 집에서 보시던 드라마, 다운 받아놨어요.' 라는 TV 화면 위의 글자.<BR><BR>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BR>컴퓨터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BR><BR>전원이 켜지는 동안 책상에 붙어있는 책장을 슬쩍 들여다보자<BR>내가 읽던 책에 '이 책 재미있네요.' 하는 글이 붙어있었다.<BR><BR>책을 꺼내 들고 펼쳐 보자, 확실히 내가 읽던 부분이 아닌 곳에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BR><BR>'걱정 마세요. 혹시나 해서 원래 부분에도 책갈피 끼워 놓았어요.'<BR><BR>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디에서 이 책을 읽었을까?<BR>이 의자에 앉아서였을까? 내 침대 위에 편히 누워서 봤을까?<BR><BR>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말고도 곳곳에 메시지들이 많이 붙어있었다.<BR><BR>창문틀 위엔 '환기 좀 시킬게요.', 선풍기 위엔 '이거 안 시원하네요.'<BR>침대 머리맡에는 '베개 높은 거 쓰시네요.' 하는 글들이 있었다.<BR><BR>컴퓨터 안 혹시나 하며 야한 동영상을 담아둔 폴더를 찾아보니<BR>'남자는 남자네요.' 라는 폴더가 새로 생성되어 있었다.<BR><BR>정지영.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BR>지금 그녀에게 다가가서 무엇이든 함께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BR><BR>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매만졌다.<BR>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신발을 꺼내 드는데<BR>또 현관 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가 붙어있었다.<BR><BR>'걱정마세요. 이 이상은 다가서려고 하지 않을게요.'<BR><BR><BR><BR><BR><BR>-3부 끝-</P> <P><BR><BR><BR>"대구라고."<BR><BR>"네?"<BR><BR>"아, 대구 인마 대구, 대구라고."<BR><BR>과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봤다.<BR><BR>"내일 바로 출발이에요?"<BR><BR>"왜? 못 가?"<BR><BR>못 간다는 한마디를 기다린다는듯 과장은 비웃음을 흘렸다.<BR>못 간다는 대꾸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더러운 새끼.<BR><BR>이번 주말에는 지영씨의 방에 들려볼 예정이었다.<BR><BR>주말을 끼워서 2주씩이나 대구에 붙어있어야 한다니,<BR>나의 스토커 생활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BR><BR>퇴근길 편의점에 들려야 했다. 앞으로 거의 3주 동안 그녀와는 교류가 없을 것이다.<BR>일단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BR><BR>편의점 앞, 투명한 유리 뒤로 비춰 보이는 그녀는 다음 교대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BR>편의점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어서 오세요." 라며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BR><BR>"마일드세븐 하나 주세요."<BR><BR>"각으로 드릴까요. 팩으로 드릴까요?"<BR><BR>인수인계를 받고 있던 남자가 내가 물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BR>각을 꺼내 들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코드 찍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체<BR>담배각을 계산대 위에 얹으며 스윽 나를 향해 밀었다.<BR><BR>"2,700원입니다."<BR><BR>"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보루로 주세요. 한보루."<BR><BR>"예?"<BR><BR>그녀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BR><BR>거의 매일같이 퇴근길에는 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갑씩 사갔다.<BR>다음날 일이 있는 날은 한 갑, 쉬는 날은 두세 갑.<BR><BR>한 보루를 샀던 것은 그녀를 스토킹하고 나서부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BR><BR>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던 남자 점원이<BR>어물쩡 거리다가 테이블 밑에서 담배를 한보루 꺼내 들었다.<BR><BR>"27,000원입니다."<BR><BR>카드를 내밀며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 나름대로는 한동안<BR>편의점에는 찾아올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주고 싶었다.<BR><BR>표정이 굳어가는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길은 없을까 고민을 해봤지만,<BR>순간 저번 현관 앞에 붙어있던 메시지가 떠오르며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BR><BR>'걱정 마세요. 이 이상은 다가서려고 하지 않을게요.'<BR><BR>이 이상 내게도 다가오지 말라는 통보처럼 느껴졌다.<BR><BR>내 방에 얼마든지 놀러 오세요. 제 얼굴을 보러 편의점에 찾아오세요.<BR>저도 당신의 방에 찾아가도 되죠? 편의점에 찾아오는 당신을 기다려도 되죠?<BR>하지만 우리 이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BR><BR>그녀의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마음에 밟혔지만<BR>성실한 스토킹을 하기 위해서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BR><BR>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며, 다음날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BR><BR>대구지사에는 내가 손봐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BR><BR>바로 다음날 출장을 떠나라는 말이 날 괴롭히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지만,<BR>막상 도착해보니 의외로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었다. 과장이 나를 마냥 떨거지처럼<BR>생각했던 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예정보다 하루 일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BR>그동안 지영씨와 교류가 끊기는 것이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BR><BR>동네 어귀에 접어든 나는 편의점에 들러 지영씨의 얼굴을 먼저 보고 싶었다.<BR><BR>"2,700원입니다."<BR><BR>처음 보는 여학생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BR><BR>"카드로 하실 건가요?"<BR><BR>"새로 오셨나 봐요?"<BR><BR>아르바이트생은 내게 찝쩍거리지 말아 달라는 듯 인상을 구겼다.<BR><BR>"네, 그런데요."<BR><BR>"전에 계시던 분은요?"<BR><BR>"예?"<BR><BR>"전에 계시던 여자분이요. 여기서 일 년도 넘게 일했는데요."<BR><BR>자신도 급하게 뽑힌 아르바이트라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지만,</P> <P>월요일부터 원래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갑자기 결근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BR><BR>"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BR><BR>"저야 모르죠."<BR><BR>"아무도 확인 안 해봤데요?"<BR><BR>"몰라요."<BR><BR>바로 편의점을 빠져나와 지영씨의 집으로 향했다.<BR>이미 주변이 어둑해졌는데도 지영씨의 방 창에선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BR><BR>열쇠를 조심히 돌리며 발소리가 안 나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BR><BR>불 꺼진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며 사람의 기척이란 일체 느껴지질 않았다.</P> <P>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신발을 벗고 방에 올라 방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역시 그녀는 집에 없었다.<BR><BR>'이거 아직 안 봤죠?' 하는 메시지가 책장에 붙어있었다.<BR><BR>냉장고 위에는 '맥주 사놨어요. 드시고 가세요.' 라는 메시지가,<BR>화분 위에는 "이거 물 얼마나 주는 거에요?'하는 메시지가,<BR>그 이외에도 방 이곳저곳에 내가 찾아올 것을 기다린 듯 붙여놓은<BR>메시지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BR><BR>왜 편의점을 관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BR>마치 이별이라도 한 연인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BR><BR>우리가 연인이었다면 나는 무차별적인 이별통보를 하고 사라진 꼴이나 마찬가지였다.<BR>그녀가 떠났을 곳을 예상해보려 애썼지만, 나는 그녀의 스토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서<BR>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사는 방.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BR><BR>나는 스토커 실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며 집 앞에 들어서자<BR>집 앞 현관에는 그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수십 장의 메시지가 붙어있었다.<BR><BR>'어디 갔어요?', '언제 와요?', '제가 무슨 잘못한 거에요?', '제가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어요?'<BR>'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다시 왔어요.', '제가 싫어졌어요?', '돌아와요.'<BR><BR>'나쁜 놈. 스토커 주제에...'<BR><BR>방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BR>주방의 식기는 전부 거실바닥에 깨져서 난잡하게 흩어져있었고 냉장고는 열린체 붉은빛을<BR>뿜어대고 있었다.<BR><BR>거실 벽에는 알 수 없는 검붉은 자국이 번져있었다. 순간 피인 줄 알고<BR>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주변을 보니 반찬 가지를 집어던진 흔적으로 보였다. <BR><BR>수많은 글이 벽지위에 적혀있었다. 벽지를 새로하지 않는 이상 지울 수 없는 낙서들.<BR><BR>'니가 먼저 좋아했잖아.',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어디로 사라졌어.', '왜 사람 가지고 놀아.'<BR><BR>착잡한 기분이 들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발밑에 난잡하게 늘어진 물건들을 발로 살살 밀며<BR>조심스럽게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방문에 붙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BR><BR>'저, 여기서 기다릴래요.'<BR><BR>문을 열어젖히자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그녀가 보였다.<BR><BR><BR><BR><BR>-4부 끝-<BR></P><BR><BR><BR>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웠다.<BR>은은한 거실 불빛이 방으로 흘러들어 가 그녀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BR><BR>'이 책은 이제 다 봤어요.'하는 쪽지들이 책장에 가득했다.<BR><BR>"왜 나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아요."하고 묻고 싶다.<BR><BR>난 당신이 무섭지 않다. 자주 들려라.<BR>하지만 더 이상 가까워 지지는 말자.<BR><BR>그런 뜻을 보였던 사람이 남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체<BR>남의 침대에서 세상모르는 척 잠들어 있었다.<BR><BR>순간 그녀를 흔들어 깨울까 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BR>자꾸만 어딘가에서 내가 먼저 잘못을 했다는 미안함이 일었다.<BR><BR>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거실로 되돌아서 나왔다.<BR><BR>아무리 화가 났었다지만 정말 심한 광경이었다.<BR>어질러진 거실을 치우려면 한참의 시간이 들것 같았다.<BR><BR>한쪽이 쪼그라든 사과를 집어들자 시큼한 냄새가 확 퍼지며 이상한 국물이 뚝뚝 떨어져 내랬다.<BR>생각 없이 맨손으로 집어 들었던 나는 어느 정도 들어 올렸던 사과를 그대로 다시 거실 바닥에 떨궜다.<BR><BR>손에 묻어난 이상한 액을 바라보다 잠시 냄새를 맡아보니 쉰내와 썩은 내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BR><BR>베란다에 묵혀 두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었다.<BR>깨진 유리잔들과 접시들을 쓸어내는데 웃음이 나왔다.<BR><BR>원래는 어떤 성격의 여자일까?<BR><BR>그 개미 같은 목소리를 내던 여자가 아니었다. 집어던져 산산조각이 난<BR>유리조각들이 스토킹 상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듯 반짝반짝 소리치고 있었다.<BR><BR>쓰레받기에 유리조각들이 묵직했다. 쓰레기통에 접시들을 쏟아부으니<BR>모래가 떨어지듯 솨아하는 소리를 내며 쓸려 내려갔다.<BR><BR>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자잘한 유리조각이 맨살에 파고 들것이라는<BR>생각이 들었다만, 청소기 소리에 지영씨가 잠에서 깨는 것이 두려웠다. <BR><BR>쓰레기통이 거진 유리조각들로 가득 차올라서야 대충 거실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BR>주방 수납장에서 검정색 비닐봉지를 꺼내 들며 고무장갑을 끼우고 바닥의 과일 조각들을<BR>주워담았다. 과즙액이 눌어붙어 끈적거리며 주욱하고 늘어져 과일을 따라 선을 만들었다.<BR><BR>배가 부른 검은 봉지들을 현관 앞에 대충 늘어놓고 뒤를 돌아보니 아직 할일이 태산이었다.<BR>방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무슨 불평의 말을 해줘야 속이 시원해질까 궁리를 했다만,<BR>담배를 달라는 말밖에 붙여보지 못했던 자신의 초라함만 깨닫게 되었다.<BR><BR>그녀가 내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그녀의 고함을 들으며<BR>되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졌다.<BR><BR>거실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깨지지 않은 그릇들과 가재도구들을 한꺼번에 싱크대에 얹었다.<BR><BR>설거지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그릇이 이가 나가서 쓸 수가 없었다.<BR>설거지가 다 끝날 무렵에는 쓰레기통에 그릇들과 유리조각들이 산처럼 쌓여버렸다.<BR><BR>산처럼 쌓인 유리들을 보며 한숨을 짓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BR>젖은 손을 싱크대에 서너번 털어내며 라이터 끝을 조심히 잡아들어 불을 붙이는데<BR>그 적은 물에도 부싯돌이 젖어버린 듯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BR><BR>라이터를 몇 번 더 돌려보다 주변을 돌아보는데, 거실에는 라이터의 흔적이 없었다.<BR><BR>라이터를 찾으려 내 방의 문은 조심히 열어젖혀자 지영씨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BR>지영씨와 나는 침묵을 지키며 마주치는 눈빛을 피했다 다시 마주치기를 반복했다.<BR><BR>입에 물었던 담배가 무안스러워져 베어 물었던 것을 손에 쥐어<BR>슬며시 담배각에 밀어 넣자 지영씨가 입을 열었다.<BR><BR>"어디 갔다 왔어요?"<BR><BR>"출장이요."<BR><BR>"왜, 말 안 해줘요?"<BR><BR>"..."<BR><BR>처음 해보는 정상적인 대화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BR>왜 추궁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추궁을 당하는 모습이<BR>싫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그녀는 억울하다는 것처럼 갑작스레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BR><BR>"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게 계시는 거에요?"<BR><BR>그녀의 울먹임에 나오던 말도 되려 다시 목구멍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다.<BR>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직장과 집, 이름, 나이밖에는 없다.<BR><BR>"다 아셔서 그런 거에요? 이제 저 안 따라 다니시는 거에요?"<BR><BR>"출장 갔었어요."<BR><BR>"정말요?"<BR><BR>"네, 정말이요."<BR><BR>소리를 눌러담듯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보면서 우습게도 담배가 더 피우고 싶다고 느꼈다.<BR><BR><BR><BR><BR><BR>-5부 끝- <P></P> <P><BR><BR><BR>지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스토커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BR><BR>그의 등 뒤에서 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이 환했다. 환한 거실에는<BR>자신이 어질어 놓은 유리조각이야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 있어야 했었지만<BR>좀 전부터 치우는 소리가 들렸기에 애써 모르는 척 무시를 했다.<BR><BR>이상한 스토커.<BR><BR>다가오세요. 이 이상은 다가오지 마세요.<BR>내가 전하는 뜻이 무엇이 되었든 그 말에 순종적이었다.<BR><BR>여느 때와 같이 편의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였다.<BR><BR>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밥을 먹고 싶지 않았고,<BR>고단했지만 눕고 싶지 않았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말랐고, 소리치고 싶지만 목이 매였다.<BR><BR>불도 켜지 않은 방에 앉아 뜬눈으로 출근 시간까지를 보낸 일도 많았다.<BR>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BR>무거운 마음이 자신의 갈 길을 막고 있다는 막연하면서도 치졸한 마음이 들었다.<BR><BR>이틀이나 씻지를 않은 몸에서 쉰내가 났다.<BR><BR>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가지들을 대충 세탁기에 쑤셔 넣었다.<BR>차가운 샤워기의 물이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기름기가<BR>덕지해서 뭉텅이가 지는 머리카락에 흠뻑 물을 적셨다.<BR><BR>샤워를 마쳤을 때 욕실에 수건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BR>젖은 몸은 한 체로 방에 불을 켜고 서랍장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들어<BR>몸의 물기들을 떨궈냈다.<BR><BR>머리의 물기를 수건에 짜내는데 방의 풍경에 이질감이 들었다.<BR>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방을 골똘히 둘러보자, 책장 위에 놓인<BR>작은 선인장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BR><BR>눈에 초점이 풀리고 다리의 힘이 빠져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BR>다시 방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으나 다른 곳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느껴지지<BR>않았다.<BR><BR>머릿속에서 여러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BR><BR>내게 오만 원 두 장을 내밀며 "이런 곳에서 일하지 말고, 나랑 놀자."라고 했던 아저씨<BR>전화번호를 물어보고선 내가 고개를 흔들자 "씨발년."하고 욕을 하던 이름 모를 학생.<BR>이따금 실수인 척 내 엉덩이를 만져오는 편의점의 사장, 얼마 전 술 마시고 편의점 물건을<BR>집어던지던 대머리의 중년, 물건을 건네던 손을 변태처럼 더듬었던 아저씨.<BR><BR>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담배 한 갑만 사가는 아저씨.<BR><BR>말 없는 선인장 화분을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BR>솜털 같은 가시들이 일어선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은 느낌이 들었다.<BR><BR>어떻게 방에 들어왔을까, 누가 들어왔던 것일까.<BR>앞으로도 또 찾아올 생각일까.<BR><BR>내가 집에 없을 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내가 집에 있을 때도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BR>한밤중 몰래 집에 찾아들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BR><BR>오싹한 기분이 들며 허리가 꼿꼿이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BR><BR>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망설였지만 집안에는 화분이 하나 더 생겼을 뿐, 다만 그뿐이었다.<BR>그리고 이상하게도 점점 추락하던 마음의 한켠이 경직되는 기분을 느꼈다. <BR><BR>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의 침입에 그동안 잊고 있던 자극이란 것을 경험했다.<BR>누군가 자신의 방에 머물렀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설렜다. 초라하고 꾸미지 않은<BR>방안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스스로 미쳤다는 생각을 하며 방안에 메시지를 남겼다.<BR><BR>'신고하지 않을게요. 또 오세요.'<BR><BR>포스트잇 메모지를 현관에 붙이며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BR>일부러 방의 문에 열쇠를 채우지 않았다. 혹시나 들어오지 못하는<BR>상황이 오히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스토커는 주말이 아니고서는 집에 찾아드는 일은 없었다.<BR>내가 적어 놓은 메시지들을 읽었다는 표시처럼 그가 방문한 날이면<BR>메모지는 사라져있었다.<BR><BR>나는 방을 화사하게 꾸며갔다. 커튼의 색을 바꾸고 이불을 세탁했다.<BR>허전한 방구석을 이리저리 보며 궁리를 했다. 시간이 지나며<BR>이름 모를 방문객을 기다리는 방에는 활기가 생겨났다.<BR><BR>어렴풋 그려지던 스토커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BR>그저 조용히 나의 방에 다녀가는 이상한 사람.<BR><BR>가끔씩 멀찌감치 서서는 편의점을 들여다보는 아저씨의 얼굴이 머리를 맴돌았다.<BR>한참을 서 있다가는 조용히 담배 한 갑만을 사가는 아저씨.<BR><BR>그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애절한 마음이 생겨나는 자신이<BR>이상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들떴다. 비로소 5년만에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BR><BR><BR><BR>-6부 끝- <P><BR><BR><BR>편의점 사장에게 삼십 분만 일찍 교대를 부탁했다.<BR>사장은 별일이라는 듯 꼬치꼬치 캐묻다가 순순히 자신이 삼십 분을 채워주겠다고 했다.<BR><BR>스토커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BR><BR>아니, 이제는 내 스스로가 그 사람을 스토커라고 여기는 것조차 웃기는 일이었다.<BR>나는 그를 위해 방의 문을 열어주고, 음식을 준비했으며, 다시 찾아오라는 메모를 남겼다.<BR><BR>그 사람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BR><BR>편의점을 마치고 집까지 온 힘을 다해서 달렸다. 단지 삼십 분만 일찍 끝냈다고<BR>그를 확인 할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으며, 나는 그 남자가 집에서 나오는 것을<BR>직접 마주하기보다는 한켠에 숨어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를 위해서<BR>더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BR><BR>집으로 향해 계단을 오르던 순간 잠깐 익숙한 얼굴이 스쳐지나 갔다.<BR>나는 방문을 향해 달리던 것을 멈추고 계단을 다시 내려가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BR><BR>그 남자를 불러 세웠을 때,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BR><BR>"아저씨, 여기사세요?"<BR>"아니요."<BR>"네, 저도 아저씨 본적 없는 것 같아요."<BR>"그래서요?"<BR>"여기 왜 오셨어요?"<BR><BR>그 남자는 당연히도 자신이 스토커라는 것을 부정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BR>내가 아는 얼굴. 편의점에 매일 같이 들려서 담배를 사가는 사람. 편의점 밖에서<BR>기웃기웃 나를 엿보던 사람.<BR><BR>그를 돌려보내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모든 메모지가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BR>그 사람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BR>하는 걱정이 들었다. 너무 드세게 그를 몰아 치진 않았나 자신을 탓하고 있는 나를<BR>눈치챘을 때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BR><BR>다시 그가 편의점에 찾아들었을 때는 표현 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일었다.<BR>여전히 나의 방에 들려주는 것이 안심되었다.<BR><BR>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줄어들고, 방을 꾸미거나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다리며<BR>메모를 남겼다. 내가 남긴 메모의 의도를 알고 그대로 움직여주는 그 사람.<BR><BR>처음 그의 뒤를 쫓았을 때, 혹여 남자가 뒤를 돌아볼까 노심초사였지만,<BR>그는 길을 걸을 때 곧잘 땅만 쳐다보며 걷고는 했다.<BR><BR>열쇠를 손에 넣는 것은 의외로 순조로웠다.<BR><BR>"아가씨 못 보던 분인데?"<BR><BR>그의 방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오셨다.<BR>아주머니는 의심의 눈초리인지 호기심의 눈초리인지 애매한 태도로 나를 경계하며 다가왔다.<BR><BR>"아, 저희 남자친구네 집인데요. 지금 열쇠가 없어서..."<BR>"여기 총각 여자친구야? 어마! 이쁘네~."<BR>"아, 하하..."<BR>"열쇠가 왜 없어. 남자친구 부르면 안 돼?"<BR>"지금 일가서 좀 그러네요. 제 서류가방이 안에 있는데."<BR>"아침에 두고나왔구만?"<BR><BR>아주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하며 나의 거짓말에 일단일조 장단을 맞춰왔다.<BR><BR>"관리 아줌마 불러줄까? 열쇠 금방 가지고 올 텐데."<BR>"정말요? 그러면 감사하죠."<BR><BR>관리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BR>결혼을 하기로 했다. 사귄 지 2년이 넘었다. 일만 해서 서운하다.<BR>내가 가끔 찾아오지 않으면 방이 개판이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BR><BR>아주머니는 내가 꺼내는 거짓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미있는 듯 우리의 거짓 연애담에 푹 빠져들었다.<BR>나도 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술술 거짓말을 뱉을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거짓말을 하면서<BR>이 거짓말의 현실성이 느껴지는 것이 즐거웠다.<BR><BR>"여기 열쇠."<BR><BR>관리자 아주머니께서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열쇠를 건넸다.<BR><BR>"똥 씹다 왔어? 얼굴이 왜 그래?"<BR><BR>아주머니가 관리자분을 나무라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BR><BR>"여기 총각 혼자 사는데?"<BR>"왜 혼자 살면 여자친구도 못사귀어?"<BR>"아니, 아는 사람 맞는 건지."<BR>"아! 됐어 무슨 내가 여기 살면서 이 처녀 얼굴을 한두 번 봤는지 알어? 괜찮아."<BR><BR>아주머니가 대뜸 얼토당토 안는 거짓말을 했다.<BR>만난지 삼십 분 남짓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깊은 신뢰를 갖은 듯 했다.<BR><BR>"아, 나 지금 부동산에 손님 와계시니까. 그쪽으로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저기 바로 앞인데."<BR><BR>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급하게 발을 돌렸다.<BR>나와 장단을 맞춰주던 아주머니는 내 등을 두드리더니<BR><BR>"남자는 혼전에 확실히 잡아 놔야되! 알았지? " 하며 계단을 올라가셨다.<BR><BR>내가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함박웃음을 머금으시며 계단에 오르는 아주머니.<BR>손 위에 열쇠를 바라보며 내가 근 한 시간여 동안 거짓말을 하며 이루어낸 것들이 믿겨지질 않았다.<BR><BR>열쇠를 따고 방에 들어섰을 때.<BR><BR>그의 방은 뭐랄까. 향이 없었다. 남자들의 냄새. <BR>그리고 또 특별히 뭐라 콕 찍어 설명이 힘들었지만,<BR>이곳은 남자의 방이라는 뉘앙스가 없었다.<BR><BR>꼭 남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방에는 그 흔한 여자 연예인이나, 게임 포스터조차 한장 보이지 않았다.<BR><BR>커튼이 걸리지 않은 창문에는 어설픈 페인트칠이 볼품이 없었고,<BR>침대는 순 시커먼 진 남색의 민무늬 커버로 재미없는 물건들뿐이었다.<BR><BR>냉장고 안에는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BR>물, 맥주 몇 캔, 언제부터 얼어붙어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고기 한 덩어리.<BR><BR>15인치 즘으로 보이는 작은 TV와 그 옆에 오히려 TV보다 커 보이는 모니터가 하나<BR>컴퓨터와 함께 책상도 아닌 조막만 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BR><BR>옷장 속은 남자의 옷장이란 느낌을 풍기며 별 옷이 들어있지 않았다.<BR>확실히 내가 그를 보아왔던 옷들이 대부분으로 그는 옷을 몇 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BR><BR>방을 둘러보다 졸업앨범을 찾아 앨범을 뒤적이며 그를 찾았다.<BR>졸업 사진의 고등학생 시절의 얼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금방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BR><BR>2006년 졸업생. 이름 김성민.<BR><BR>어릴 적부터 어두운 상이었 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 모습을 보면 예상이 어려워 소스라칠<BR>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보다는 밝아 보이는 느낌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BR><BR>컴퓨터를 켜자. 바로 윈도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BR><BR>하드디스크 내용물을 살살 뒤져보자, 순 게임과 영화 그리고 몇몇 야동이 나왔다.<BR>남자란 별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BR><BR>웃음이 나왔다. 메모지에 휘둘려주는 상냥한 스토커가 그래도 남자는 남자였다.<BR><BR>한참 방을 뒤져보고는 텅텅 비어있는 방의 살풍경이 마치 남자의 삶을 대변하듯 느껴졌다.<BR>나를 스토킹하는 남자에게 이런 생각은 모순되었지만, 나는 김성민이란 남자를 동정하게 되었다.<BR><BR>이 사람에게 이 이상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BR>들면서도 발이 방을 떠나지질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BR><BR><BR><BR><BR><BR><BR>-7부 끝- <P><BR><BR><BR>지영씨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BR>그녀는 "나 원래 잘 안 울어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BR><BR>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느냐며 반문했다.<BR><BR>그녀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사이에는 차가운 열쇠 쪼가리와<BR>사람 냄새 어수룩하게 느껴지는 작은 방구석, 몇 장의 포스트잇 메모지가 전부였다.<BR><BR>"우리는 무슨 사이인 거에요?"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BR>그녀의 무거운 침묵은 어떤 명확한 대답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다.<BR><BR>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BR><BR>"거실에 아직 유리조각들 있으니까 맨발로 나오지 마세요."<BR><BR>쓰레기통의 비닐봉지가 유리조각의 무게를 못 이긴다며 주욱 하고 늘어졌다.<BR>하는 수 없이 쓰레기통을 통째로 들고 집 앞 분리수거장에 나가야 했다.<BR><BR>유리조각들을 버리고 방에 다시 올라오니 지영씨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BR>청소기의 시끄러운 소음이 이 어색한 분위기를 중화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BR><BR>청소기 주둥아리로 자잘한 유리파편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빨려들었다.<BR>지영씨가 꼼꼼하게 이곳저곳에 흡입구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내 시선을<BR>피해 이리저리 절묘하게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BR><BR>웃기지만, 청소기를 끄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청소기의 소리가 멈추고 들릴 "싱~"하는 침묵이 두려웠다.<BR><BR>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여유롭게 바라본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BR><BR>'오랫동안 뒤에서, 옆에서 몰래몰래 지켜보다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겠지' 라고 생각했었다.<BR>내가 훔쳐보던 그 여인은 지금 내 거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BR>그녀가 내 방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 무엇보다 더욱 놀라운 일이지만,</P> <P>아무 사이도 아닌 우리는 한 지붕 밑에서 이렇게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데도 그것을 참아내는 것에</P> <P>무색하지 않다는 것에도 작은 놀라움이 일었다.<BR><BR>애써 시선을 돌리는 그녀의 뒷모습. 오랜만에 그녀의 푸석한 머릿결을 보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BR><BR>청소기를 아무리 돌려도 더이상 달그락거리며 유리조각이 딸려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BR>그녀도 청소기를 멈췄을 때가 두려웠을까, 없는 조각을 찾는 척 한참을 더 밍기적 거렸다.<BR><BR>청소기를 끄지 않을 구실은 찾는 듯한 지영씨가 애처롭게 보였다.<BR><BR>"이제 그만 돌려도 되지 않을까요?"<BR><BR>내가 묻자, 지영씨는 말없이 청소기의 전원을 내렸다. 청소기의 소음이<BR>사라지자 예상한 것보다도 더 무거운 침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BR><BR>"식사, 는..."<BR><BR>지영씨가 말끝을 흐렸다.<BR><BR>"아직 이요."<BR><BR>지영씨가 말없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을 냉장고를<BR>들여다보려는 그녀의 행동에 급작스레 웃음이 터졌다.<BR><BR>"거기 있는 거 지영씨가 다 집어던졌잖아요?"<BR>"제 이름, 아시네요?"<BR><BR>당연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질문에 가슴 한켠이 뜨끔했다. <BR>스토커가 변명거리를 찾을 이유도 여유도 없음에도 나는 그렇게 당황을 느꼈다.<BR><BR>"어떻게 알았어요?"<BR><BR>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녀 한쪽 손에 쥐어있는<BR>냉장고 문에서 은은한 한기가 수증기가 되어 공중에 흩날리기 시작했다.<BR><BR>"지영씨 졸업앨범 봤어요."<BR>"저도 성민씨 졸업앨범 봤어요."<BR><BR>그녀는 냉장고의 문을 슬며시 닫으며 내 정면을 향해 돌아섰다.<BR>굳은 표정의 그녀는 나의 눈을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아닌<BR>목 언저리의 애매한 곳에 시선을 둔체 입을 열었다.<BR><BR>"제 이름 말고 또 뭐 알고 있으세요?"<BR><BR>내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름, 나이, 집, 얼마 전까지 일하던 편의점 정도 밖에는 없었다.<BR>대답할 것도 얼마 없으면서도 대답을 하고 나면 벌을 받아야 할 것처럼 겁이 나고 두려웠다.<BR><BR>"또, 뭐 알고 있으시냐니까요?"<BR>"이름, 나이, 집. 그게 다에요."<BR>"스토커가 알고 있는게 그게 다에요?"<BR><BR>그녀를 똑바로 마주 볼 염치가 없어져 고개를 떨군체 끄덕였다.<BR>자백, 자백이었다. 뻔히 알고 있는 그녀에게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자백했다.<BR><BR>"왜 그것밖에 몰라요?"<BR>"그 이상 알아서 뭐하게요?"<BR><BR>내가 되묻자 지영씨가 쏜살같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BR><BR>"그럼 제 방에 오셔서 뭐 하셨어요?"<BR>"지영씨가 읽어보라던 책 읽고, 드라마 보고, 그게 다에요."<BR>"선인장 화분은 왜 가져다 놨어요?"<BR>"방이 쓸쓸해서요."<BR><BR>어째서인가 그녀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져 갔다. 그녀는 눈에 힘을 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BR>날이 서 있는 것 같은 눈빛에 주눅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BR><BR>"저 어떻게 할 생각인거에요?"<BR>"모르겠어요."<BR>"당신 바보야?"<BR><BR>지영씨가 화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좋았다.<BR>자신의 방을 찾아오라는 그녀가 의외였지만 기뻤던 것은 사실이었다.<BR>다만 그 이상 다가서서 그녀에게 무언가 바래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BR><BR>다만 그뿐이었다.<BR><BR>"뭘 더 어떻게 해요? 이 이상 다가서지 않는 다면서요."<BR>"그건 제 이야기죠. 당신은 스토커잖아요."<BR>"스토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BR><BR>그녀가 말이 없었다. 입술을 앙다문 그녀에게서 도망치는 나는 방으로 발을 옮겼다.<BR>잠시 잠깐의 침묵이 괴롭게 느껴진 나는 그녀에게 돌아서서 물었다.<BR><BR>"밥, 먹을래요?"<BR><BR>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BR><BR>"그럼 돌아가실래요? 저 이제 쉬고 싶은데."<BR><BR>그녀가 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BR><BR>"저 HIV 보균자에요."<BR>"예?"<BR>"예비 에이즈 환자라구요."<BR><BR>HIV 보균자. 영화에서 봤던 단편적인 지식이 떠올랐다.<BR><BR>HIV 균을 가진 사람이 에이즈에 걸리지만, 아직 진행되기 전에 약물의 치료로 발병을 억제할 수 있다.<BR>언제 병이 급작스레 진전될지는 모르지만, 현대의 의학으로는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는 병.<BR>성적행위로 전염될 확률이 있지만, 이는 현저히 낮은 편이고 혹여 전염된다면 아직 완벽한 치료약은 없다.<BR>억제만이 가능할 뿐, 세계적으로 자연 치료된 케이스가 두건 정도 발표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그저<BR>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BR><BR>"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BR>"성민씨 전염됐을지도 몰라요. 저희 집에 자주 찾아왔었잖아요."<BR>"..."<BR>"병원에 안 가봐도 되요? 저한테 전염됐으면 어떻게 할 거에요?"<BR>"지영씨한테 전염될만한 짓 한 적 없잖아요."<BR><BR>지영씨의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혔다.<BR><BR>"저희 부모님도 제가 무서워서 따로 살자시는데 성민씨는 안 무서워요?"<BR>"뭐가 무서운데요?"<BR>"그럼 저랑 키스하자면 할 수 있어요?"<BR>"..."<BR>"같이 자자면 잘 수 있어요?"<BR>"..."<BR>"같이 살자면 살 수 있어요?"<BR><BR>그녀가 흐느껴 울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좁은 어깨를 들썩이며 또 꾸역꾸역 구겨 삼키듯 한 소리와<BR>함께 울기 시작했다. '다가서지 않을게요. 하지만 저를 찾아오세요.' 나 같은 스토커 따위에게 친절하게<BR>구는 것이 이상스러웠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방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던 그녀의 집이 눈에 밟히는 것처럼 선명히<BR>떠올랐다. 작고, 좁고, 어두웠던 작은 방.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게 하려 했던 방. <BR><BR>숨을 참는 것처럼 소리 없이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BR>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지영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BR>커다만한 눈이 놀라 휘둥그레진 모습이 애처로웠다. 잘 울지도 않는 다는 여자치고는<BR>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이 퍽 굵직했다.<BR><BR>"이 이상 다가서지 않는다는 뜻이 이거 때문이에요?"<BR><BR>내 질문에 지영씨는 대답을 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애매한 고갯짓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BR>고개를 숙인 그녀의 몸이 얼마자 자그마한지 와락 껴안기라도 하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BR><BR>"그럼 지영씨는 저랑 키스하자면 할 수 있어요?"<BR><BR>지영씨가 눈을 번쩍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번을 꿈뻑이지도<BR>안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지영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BR><BR>"같이 자자면 잘 수 있어요?"<BR><BR>지영씨의 얼굴에 어렴풋 웃음기가 서린 것같이 보였다. 지영씨는 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BR><BR>"같이 살자면 살 수 있어요?"<BR><BR>지영씨가 더더욱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영씨의 눈가에 웃음기가 역력했다. <BR>나도 웃음이 나와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름 심각한 고백을 했는데<BR>나는 왜 웃음이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왜 웃어주는 것일까.<BR><BR>나도 지영씨의 앞에 풀썩 주저앉아 지영씨와 눈을 맞췄다.<BR>지영씨의 큰 눈망울이 아직 다 못 흐른 눈물들과 함께 나를 응시했다.<BR><BR>"그럼 우리 같이 밥 먹어요."<BR>"..."<BR><BR>오늘 처음으로 지영씨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BR><BR><BR><BR><BR>-끝-<BR><BR></P><BR><BR><BR><BR><BR><BR><BR>--------------------------------------------------------------------<BR><BR><BR><BR><BR><BR>미스테리에서 서스펜스로 변환하는 줄거리와 비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로 독자를 사로잡아 보고 싶었는데,<BR>아직 초기작이어서 그랬는지, 거진 오묘한 연애물로 밖엔 보이지 않는 게 이 글의 단점이네요.<BR>오래 전에 적었던 글을 옮겨온 것이라, 오탈자가 난무하는 것도 그렇구요.<BR>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숏다리코뿔소의 꼬릿말입니다
    제라드님 바보.

    베오베 가기는 어려운건데. :)

    고마워요. 생각해줘서.

    근데... 제라드님 역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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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1 21:25:08  121.169.***.116  hwiling  133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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