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전화 너머의 차분한 척 연기하는 목소리.말끝 울렁임과 가녀린 한숨, 둘 모두 파르르 하는 떨림에 내게로 긴장감이 전해져왔다.이런 전화는 옛 부터 수도 없이 상대해보았으나, 이제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정안아, 대담 좀 해봐. 어디에 있어?”여자 목소리….목을 매단 여자의 이름은 정안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신가요.그녀가 유서를 남기고 떠나온 가족이신가요? 그녀의 언니? 동생?아니면 절친한 친구? 누구라도 좋으니, 그녀의 안부를 묻지 말아주세요.“정안아, 대답 좀…….”“전화, 받았습니다.”내가 대답하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툭하고 끊겼다.항상 이런 식이다. 다음에 물어올 말도 알고 있다. 누구세요.“누구세요?”“저는 정안 씨가 묵고 있는 여관의 주인 되는 사람입니다.”어디 여관이요.“어디 여관인가요? 어딘가요? 지금 서울시에는 있는 건가요?”왜 당신이 받나요. 정안이는요.“정안이는 어디 갔기에 여관 주인께서 전화를 받죠?”정안이 좀 바꿔주세요.“정안이 옆에 없나요? 바꿔 주세요.”나는 항상 이 부분에서 할 말을 잃는다.“정안 씨가 돌아가셨으니, 유족 분께서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혀에서만 빙빙 도는 말은매번 굳게 다물어지는 입술에 저항당하여 목소리가 되지 못한다.그리고 찾겠지. 여보세요. 하고.“여보세요?! 여보세요!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부탁드릴게요.”제가 가겠습니다.“우리 정안이 잘 있는 거 에요? 거기 어딘가요, 아저씨. 제가 지금 갈게요. 지금 갈게요!”“저, 지금…… 정안 씨가, 그……….”뜸을 드리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 성민이는 “형 요즘 왜 이래?” 하며, 전화기를 빼앗아 들었다.성민이는 업무상 전화라도 받듯 정안씨는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할 듯싶으니,유족들과 찾아오셨으면 합니다. 여기는…… 하며, 기세 좋게 말을 이어갔다.“아니요, 이 저희도 뱃사람들에게 부탁을 드려봤는데, 시체를 배에 태우고 싶지가 않답니다. 그리고 전화 받으시는 분 어떻게 되는 분인지 모르지만, 고인을 인계하시려면 직접 섬으로 찾아오셔야 맞는 거죠. 고인이 무슨 택배 화물입니까?”고인이 무슨 택배 화물입니까. 내가 젊은 날 자주 써먹던 수법이다.아직 애 허리까지도 키가 오지 않던 성민이가 보던 앞에서 읊고 또 읊었으니,성민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배워버렸을 것이다.시체 팔이 장사의 수법을.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성민은 “쯧” 하고 혀를 한 번 찼다.그리고 언제 성화를 냈냐는 듯 본연의 목소리로 돌아가 내게 물었다.“형, 장 선생님 모셔와야지?”“전화 드려.”“내가?”“그래. 네가 드려.”“왕눈이 형한테는?”“그것도 네가 해.”장 선생. 우리 섬사람 들 중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장의사 선생님. 장의사. 장 선생. 부를 호칭이 마땅찮아, 그렇게 불렀다고 들었다.장 선생을 장 씨 선생님처럼, 장 선생 장 선생, 처음 부르기 시작한 것은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라는 것도 들어 익히 알고 있다.장 선생이 도착하기 전, 몇 안 돼는 섬 경찰 왕눈이를 불렀다.왕눈이. 놈이 어떤 경로로 경찰이 됐는지, 아니면 어떤 경로로 경찰이 넙치에게 붙어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왕눈이는 넙치의 수하였다. 왕눈이는 섬에서 나오는 어떤 시체에게도 자살이라는 조서를꾸며주는 쉽게 말해 섬의 방패 같은 놈이었다.왕눈이 놈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하루 많으면 다섯 건도 넘는 자살을어떻게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정리 할 수 있냐는 것이다.장 선생이나 왕눈이가 도착하기에 앞서 방안에 대롱거리는 시체를 내려놓고 싶었다.내가 103호 실로 걷자, 성민이는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따라붙었다.“몸 안 상하게, 잘 잡아라.”“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닌데, 무거우니까 빨리 풀어 형.”냄새. 침 냄새가 난다. 아, 버러진 입으로 흘러내려온 침 냄새에 섞여, 그녀가 몸에서 쏟아버린……허벅지며 발에 흥건히 흘러버린, 오물이 툭툭하며 물방울 소리와 함께 갖은 냄새를 풍겼다.성민이가 그녀의 몸을 얼싸안아 들자, 그녀의 힘없는 목은 머리를 지탱치 못하고 픽하며 꼬꾸라졌다.사람 턱이 가슴으로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나로 하여금 그녀의 사망을 실감케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아직 목에는 멍 자국이 남아있지도 안다.이불을 찢어 짠 거친 면에게 쓸려 목의 살이 조금 튼 것을 제외하고, 그녀는 말짱했다.아직 체온도 남아있다. 목을 풀어 그녀를 바닥에 눕히자, 성민이가 쪼그려 앉으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손에 턱을 괘며 성민이가 혼잣말로 “예쁜데 왜 죽었을까.” 했다.성민이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젊다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젊다 마냥 젊은 사람이다.그 생각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목적으로 섬을 찾은 것은 아닐까,두 사람의 미소에서 일말 희망도 보였는데.죽을 생각이면, 뭣하러들 그렇게 옷은 말끔하게 차려입고 오니. 인간들아.사색에 잠겨있던 차, 여관의 현관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철민이! 성민이! 나 왔다.”장 선생 목소리. 성민이가 객실 문 밖으로 고개만 내밀어 장 선생에게 슬쩍 인사를 했다.“형, 선생님 오셨어.”나도 안다. 객실을 벗어나니 장 선생이 눈을 크게 뜨며 반겼다.“야~! 철민이! 야, 너 내가 을마나 걱정 했는 줄 알어?”“무슨 걱정을요?”“너 장사 접었다고, 섬에 소문이 파다해 그냥.”장 선생의 말에 성민이가 “장사를 왜 접어요!” 하고 대신 대답했다.장 선생은 성민이를 힐끔 보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며 “그렇지? 아니지?” 물었다.“접고 싶다고, 막 접히고 그런 동네인가요, 어디.”내 대답에 장 선생이 남자답지 못하게 칠랑팔랑 깔깔거리며 웃었다.뒤로 허릴 젖힌 장 선생의 입안으로 금니가 번쩍였다.“아, 근데 철민이. 내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예, 말씀하세요.”“오랜만에 철민이가 해주는 밥 좀 얻어먹자, 나 지금 배고파. 점심부터 일해가지고,아무것도 못 먹었어. 철민이! 간만에! 응? 솜씨 좀 발휘하면, 그러면 안 되나?”장 선생의 환한 얼굴을 돌아봤다.오랜만에, 오랜만에 다들 오랜만에를 입에 붙이고 다니라고 넙치한테 명령이라도 받은 것일까.말마따나 확실히 오랜만은 오랜만이다. 저 망할 객실 안에서 시체 식어가는 기운을 느끼며 밥상을 펴는 게,이게 도대체 얼마만일까.“거절하는 거 아니지? 철민이.”“가시죠. 식사는 하셔야 일 하시니까요.”왕눈이가 오면 청년의 수색을 부탁해야겠지.단정할 수 없겠지만, 병원 영안실 아니면 기암절벽 밑에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됐다.내 반쪽이라 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그녀에게도 다시 전화를 걸어야겠다.청년의 유가족도 가능하다면 함께 와주길 부탁드리는 편이 좋을 테니. 주방으로 가며 103호 안이 슬쩍 눈에 돌아봤다.그녀는 이제 세상 떠났다는 듯 무심히 고요만을 덮은 채 잠들어 있다.그녀의 유족들이 섬에 찾아왔을 땐, 찬물을 끼얹은 것만 같은 차가운 몸이 되어 있겠지.반쪽이라는 그녀가 찾아오는 날은 긴, 아주 긴 하루가 될 것만 같다.- 4부 끝 5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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