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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humorbest_658034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
추천 :
17
조회수 : 2040
IP : 119.195.***.230
댓글 : 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4/11 02:35:10
원글작성시간 : 2013/04/11 00:41:05
http://todayhumor.com/?humorbest_658034
모바일
배경음) 사람이 열리는 나무 - 완결 -
겹겹이 덮씌워진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발을 옮겨보았다.
걸음의 보폭이 아닌, 뜀박질의 보폭.
‘지연이는 계속 업은 채 였나?’
아무리 환상에 빠져, 이 흙바닥을 뛰어다녔다는 추론을 내 세워도,
발자국이 깊게 파여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좀 전까지 아스팔트를 밟았던 냉랭하고 딱딱한 감촉은 무엇이더란 말인가?
“지연아, 괜찮니?”
도로 위를 달렸던 것이 현실이든, 지금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든.
우선순위에는 변함이 없었다.
겉옷을 벗어 지연이의 몸에 걸치곤, 일으켜 앉혀 뒤에서 부터 끌어안았다.
겉옷 주머니에 넣어주려 손을 잡으니,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다행이었다. 좀 전과 같이 비현실적인 냉기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연아, 대답할 수 있어?”
정신이 있다면, 성질을 부리겠지.
선배, 어디를 껴안아요. 어서 풀지 못해요? 하고.
지연이는 성을 내는 대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무의식중의 대답일까? 아니, 잠꼬대라면, 잠꼬대라면 좋겠다.
깨기 전까지 마을로 돌아갔으면, 마을 회관 앞에 주차 되어 있는 내 차에 오를 수 있다면.
떠올리는 생각들이 희망사항처럼 느껴졌다.
이것마저 현실이 아닐지 모른다.
나무에 목을 맨 듯 지연이가 두둥실 떠있던 모습을 보았다.
‘그걸 현실이라고 말 할 수 있나?’
방금 전 직접 지연이를 끌어 내렸었다. 무섭게 떨어져 내리던 지연이를
받아 낸 그 무게감이 확실하게 손에 남아있었다.
반면, 얼음장 같았던 지연이의 차가움도 아직 등짝에 남아있었다.
양말바람인 사람에게 십 원어치 동정도 없던 아스팔트. 그 위를 달렸던 감촉도,
날이 서있던 돌멩이를 밟아 생긴 발바닥의 상처도 그대로였다.
만신창이로 체력이 방전 된 몸 상태만이, 어느 쪽에서도 설명이 가능한 유일의 사실이었다.
정말 가축처럼 가지고 놀다가, 지쳐 스스로 목을 맬 때까지 기다릴 공산일지도 몰랐다.
목을 매야 한다면, 그게 내가 이 환각같은 현실을 오가는 이유라면,
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면이라도 걸린 듯 두 개의 현실 속, 갈피 한 자락 못 잡는 상황이 기에
마음 어딘가에서 향나무에게 패배를 인정 해버렸을 지도 몰랐다.
다만, 지연이 만큼은 아니었다.
목을 맬 땐 매더라도, 후배 하나 못 챙기고 가는 팔푼이 선배가 될 순 없다.
“야, 춥냐?” 물으니 지연이가 또 웅얼대었다.
“아까부터 뭐라고 대답하니?”
지연이는 내가 묻는 말에 한 번을 안지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왔다.
하지만 매번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방언 그 자체의 웅얼거림이었다.
지연이를 업어 담장을 넘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논길에서 굴러 떨어지지 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워!”
“응?”
내가 말을 붙인 것도 아니었는데, 지연이의 알 수 없는 방언이 또 터져나왔다.
“으으으.”
완만한 언덕길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지연이의 방언이 점차 소리를 더해갔다.
아까 전과 같이 바람은 한 점 없는데, 주변의 키 작은 나무와 풀잎들이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며 사라락 요란을 피웠다.
“야!”
“아! 씨, 깜짝아.”
지연이가 버럭 고함을 치는 바람에 등골이 한 번 오싹해왔다.
이것도 혹 환각일까?
지연이의 몸이 휘청하고 내 무게중심을 흔들어 댔다.
마치 나를 넘어트릴 심보인 듯, 좌로 우로 반동을 주며 상체를 심하게 움직였다.
몸을 흔드는 기이한 힘에 휘청이며 생각했다.
이건, 지연이인가? 나는 또 나무에게 속아 담장 안에 지연이를 두고 온 것은 아닐까?
지연이를 향해 등 뒤를 돌아보자, 지연이가 내 등을 향해 푹 꺼져왔다.
지연이의 이마가 내 뒤통수를 들이받으며 소소한 충격이 일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주목해야만 했다.
“봐라! 이것이 네가 감히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존재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내게 소리치는 건가?
향나무에는 목에 줄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 나뭇가지가 빼곡히 들어 차있었다.
사람이 얼기설기 붙어 목을 매고 있는 풍경이 향나무를 버드나무와 같이 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도 도망쳐 본 일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거야?”
내가 묻자, 향나무 대신에 지연이가 또 옹알이를 했다.
내 귀에 바싹 붙어 속삭이는 목소리. 분명 아까부터 비슷한 소리만을 내는 듯,
지연이의 방언은 집요하기만 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니?”
“선, 배 이르그으.”
“뭐?”
“선, 배 일이르그르 으으으.”
지연이의 말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우연일까,
지연이가 입을 한 번씩 열 때마다, 밤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연아, 다시 말해봐.”
“선배.”
“어.”
“선배.”
“그래.”
“선배, 일어나요.”
“어?”
“선배, 일어나요.”
지연이가 다시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나는 지연이의 몸짓에 겨우 중심을 잡으며 지연이에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뭘 일어나!”
“선배! 일어나요! 일어나요! 제발 좀!”
“왜, 내가 일어나!”
“선배! 일어나 봐요! 나 좋아한다며! 대답 안들을꺼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좀 일어나 봐! 좀! 선배!”
지연이의 흔들거림에 결국 몸이 경사 길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지연이에게 저항하려 쏠린 무게 중심이 앞을 향하며,
이마부터 땅에 머리를 빻으려던 아찔한 순간,
나는 뜨고 있었던 눈이 다시 뜨임을 느꼈다.
마침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선배? 선배 일어났어요?”
“뭐?”
“선배, 걱정했잖아요!”
세상은 한나절이었다. 해는 중천에서 한없이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비처럼 내리는 봄날 뜨뜻한 기운에 새싹들이 고개를 번쩍 치켜세우고 있었다.
지연이는 내 머리맡에 자기 허벅지를 내어준 채였다.
내 어깨를 감싼 손에서 미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우리 여기 언제 왔지? 지연아. 언제 왔지?”
“뭘 언제와요. 아까 아침 댓바람에 선배 따라 온 거잖아요.”
“나 언제부터 누워 있었어?”
“몰라! 내가 향나무 좀 구경하고 있다 보니까, 쓰러져가지고!”
지연이가 나를 냅다 밀쳐내는 바람에 머리를 땅에 빻고 말았다.
그 어느 때 보다도 현실적인 감각.
“우리, 무슨 할머니 만났었나?”
“무슨 할머니요?”
“아니야.”
“무슨 소리해 진짜! 사람 불안하게!”
“우리 여기 얼마나 있었어?”
“두세 시간? 진짜. 핸드폰은 회관에 두고 오구. 선배는 졸도하구! 내가 진짜!”
“가자.”
“응? 사진은요.”
“사진이고 취재고 나발이고, 가자. 다 필요 없어.”
“미쳤어요? 편집장한테 어떻게 깨지고 싶어서 이래요!”
다짜고짜 지연이 손을 빼앗아 잡았다.
지연이에겐 사람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야, 너 어디 아픈데 없지?”
“없는데요? 아, 선배 손은 좀 놓죠? 선배! 손은 좀 놓죠?”
담장 앞에 늘어진 기재들을 급하게 주웠다.
반은 달리다 싶게 걸음을 큰 폭으로 걸으니 지연이가 숨이 찬 듯 헐떡였다.
“아! 이 사람 왜 이래 진짜?”
회관 앞으로 도착하니, 내 승용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번 똥차소리를 듣는 놈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야, 회관 들어가서 니 물건 다 챙겨서 나와.”
“챙길 거 핸드폰 말고는 없어요.”
“아! 무튼 빨리 핸드폰 가지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빠르게 선회시켰다.
오른쪽으로 존재하고 있을 향나무의 존재감이
가려진 시야에서도 극명하게 전해오고 있었다.
지연이가 보조석에 오르자마자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선배! 차 또랑에 빠지겠네!”
잘 달리지도 못하는 차 엑셀레이터를 있는 대로 눌러 밟아 5분 쯤
청송마을 입석간판이 순식간에 차 옆을 지나갔다.
“선배, 살살 가요! 뭐가 이리 급해?”
“야 두고 온 거 없이 다 잘 챙겼지?”
청송마을로 들어오며 지나쳤던 길들이 계속해서 옆을 스쳐갔다.
곧 있어 번화가로 통하는 2차선 도로가 나오고, 그 다음부턴 사람들이
북적대는 큰 동네가 나온다. 다 왔다 이제. 이제 곧.
“선배 이거 빠트릴 뻔 했잖아요.”
“뭘?”
“아! 선배 앞에 보고 운전해요!”
“뭘 빠트릴 뻔 했는데.”
“녹음기.”
“어?”
지연이가 자기의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검붉은 자국이 덕지하게 달라붙은 녹음기를 손에 쥔 지연이가 말했다.
“뭐야? 이거 녹음중인데요? 언제부터 켜놨지?”
“야! 그거 버려!”
“예?”
“그거 버려!”
지연이의 손에서 녹음기를 빼앗아 들었다.
녹음기에 묻어 있는 기분 나쁜 끈적임에 손을 타고 허리와 뒷목까지 소름이 돋쳐왔다.
멍청하게도 창밖으로 던지려던 녹음기는 내려가 있지 않았던
차 유리에 부딪히며 튕겨 나와 차 바닥을 굴렀다.
“야! 그거 주워서 버려!”
“왜 그래요! 아까부터 진짜!”
지연이가 소리를 빽하고 지르자, 귀가 멍멍해왔다.
싱 하는 귀의 울림이 다른 소음들을 전부 막는 와중에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볼륨 낮은 녹음기의 소리.
“사람 과일이 열매를 맺는다고, 인과. 그래서 인과목이라고 부르셨었지요.”
“향나무에서 열매가 맺어진다구요?”
할머니와의 대화. 이건 녹음되지 않았어야 한다. 녹음 될 수 없어야 하잖아.
“저 담장을 넘어간 사람치고, 저 나무에 목을 걸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어요.”
지연이는 자동차 밑에 떨어진 녹음기를 찾느라 헤매고 있었다.
“선배, 녹음기가 얼루 떨어진 질 모르겠어요.”
“지연아, 빨리 찾아, 제발 빨리.”
“그럼 차를 잠깐 세워 봐요?”
차를 세워?
“아! 찾았다!”
지연이가 녹음기를 들어보였다.
“이제 버려.”
“뭐야? 이거 내 목소리 아니에요?”
녹음기에선 지연이가 춥다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 버리라고 좀!”
“선배, 이거 이상해요. 이거 내 목소리인데.”
지연이가 녹음기의 볼륨을 높이며 녹음 된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야! 형 말 좀 들어!”
“이거, 이상해요. 고장 낫나봐.”
“야!!!!!!!!!!!!!!!!!!!!!!!!!!!!!!!!!”
지연이가 내 귀로 녹음기를 붙여왔다.
녹음기 스피커가 찢어질 듯 볼륨이 올라간 상태에서 반복 된 음성이 재생되고 있었다.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내려줘요. 선배, 나….”
정녕 나는 이곳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인가.
녹음기의 음성을 들으며 자동차는 커다란 커브를 돌아 나왔다.
시야에는 이 전보다 키가 더 높아져있는 향나무가 보이고 있었다.
지연이가 신이 난 것처럼 내 귓가에 녹음기를 들이대며 웃었다.
“가긴 어딜 가 선배. 나 여기서 내려줘요. 응? 선배, 나 내려줘요. 나 좋다면서. 선배? 선배. 나 내려줘요. 저기 향나무 앞에서 나랑 같이 내려요. 나랑 같이 내려요.”
- 사람이 열리는 나무 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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