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야? 나를 보러 다 오고?”

불쑥 “수연씨 보러 온 거 아닙니다.” 하고 정색할 뻔했다.
그녀는 나를 도발하고자, 구태여 나를 비꼬듯 말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대답을 않자, 수연은 슬쩍 입 꼬리를 올렸다.

가증스럽게도 연분홍빛 립스틱을 칠한 입은 꽃잎에
비유해도 좋을 성 싶을 만치, 여리고 투명해 보였다.

“오늘도 남자 좀 낚으셨습니까?”
“자기는 나만 보면 말을 그따위로 하더라? 내가 무슨 남자를 낚아? 처녀한테 그게 할 소리야?”

편의점 앞에서 슬쩍 안을 확인만 해볼 것을 그랬다.
몇 시간이나 청년이 편의점에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수연을 잡아 놓고 청년의 행방을 묻기가 껄끄러웠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연은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취하려 할 것이다.

수연은 마음에 병이 있는 여자였다.

그 병을 뭐라 정신학적으로 꼬집어 이것이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미친 사람이란 것에는 이의가 없었다.

그녀는 관광객, 특히나 자살할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여자였다.

절망에 절망을 한 번 더 보태여 주고 싶은 것인지, 그녀는 내일 자살할 관광객 따위
마음에도 없으면서 은근히 속살을 노출하거나, 속삭이는 말 따위로 그들을 꾀었다.

수도꼭지가 망가져 물이 쏟아지듯,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추파 끼로,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린 남자는 족족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섬 안 유부남도 몇이나 나가떨어졌는지,
조금 전에 만났던 K 아주머니도 그녀와 망측한 소문을 낸 남편과 이혼을 했다.

남편이 섬을 떠나던 날, 수연은 항구에서 남편을 배웅하며
보란 듯 사람들 앞에서 그와 입맞춤을 했다.

그 소문이 분명 K의 귀에도 닿았을 것이었지만, K는 절대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K의 남편이 떠나고 한동안 그의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내용인 즉 K의 남편은 수년간 남자구실을 못하는 불구자였다는 것이었는데,
그 소문에는 K가 소문을 직접 퍼트린다는 소문이 꼬리처럼 붙어 다녔다.

시간이 지나서 그 소문은 K가 아닌 수연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남자…… 안서.”

나는 그런 수연의 행동에 진저리가 났다.

철들 무렵까지는 뭍으로 함께 나들이를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와선 생판 남과 같이 여기고만 싶었고, 그렇게 대했다.

섬에서 수연과 이상한 소문 하나 갖고 있지 않는 남자는 나와 성민이 정도였다.
아마도 우표모음집 앨범처럼 페이지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녀의 말장난에 장단을 맞추느니, 넙치를 찾아가 수소문을 도움 받는 게 나을 듯 했다.

“내가, 너 여기 왜 왔는지 맞춰볼까?”

대답할 가치도 없는 도발이나, 나의 무의식은 고갤 수연에게 향하게끔 하였다.
수연은 나와 시선을 맞추고 시간을 끌었다. 그녀 입가의 미소가 미묘하게 깊어져 간다.

“너 손님 잃어버렸지?”

때려 맞췄다. 그 왜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여자의 육감? 나는 그런 말을 신용하는 성격은 못 된다.
그 외에 하나의 가능성, 그것은 수연이 낮에 수상쩍은 남자를 하나 보았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낮에 남자 하나 왔었죠.” 묻고 싶었으나, 남자가 한둘 편의점에 들렀으랴.
관광객이 아니고서도, 하루 몇이고 남자를 휘둘러 댈 여자였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에게서 수확을 얻으려던 나를 탓하며 편의점을 나섰다.
등 뒤로 수연의 한마디가 차갑게 날아들었다.

“위선자 새끼.”

그 말에도 대꾸를 않자, 수연은 “왜 자꾸 존댓말 해? 열 받게?” 소리쳤다.
닫힌 편의점 유리문으로 둔탁한 소리가 후드득하고 연달아 들려왔다.

돌아보니 수연은 카운터의 볼펜이며, 연필꽂이 따위를 내 등으로 던져대고 있었다.
웃기는 여자. 그녀를 무시한 채 큰길로 벗어났다.

청년이 섬을 벗어났을 리는 없었다.

노를 저어 갔을 리도, 헤엄을 쳐 갔을 리도 없으니,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섬에는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조명이 들어 온 녹색 십자가가 밤거리에 걸려있었다.

녹색의 어두침침함은 조명의 밝기와는 상관없이 이 섬 유일의 살풍경이다.

병원을 찾아갈까, 아니, 넙치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두 가지 모두 탐탁찮은 선택을 양손에 들고 고민이 들었다.

어느 쪽 하나, 깔끔한 느낌으로 접촉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넙치보다는 병원으로 연락해보는 것이 나았다.

핸드폰이 없는 관계로 다시 여관으로 향해야 했다.
찾아가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병원 원장의 낯을 앞에 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얼굴에 철가면을 조립해 둔 사람만 같아 징그럽다. 표정 없는 징그러운 사람.


여관으로 돌아오자, 여자와 성민이는 마당에 없었다.
혹시나 청년이 그 사이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 돌아왔어?”

카운터에 자릴 차지한 성민에게 물었다. 성민은 목을 길게 빼들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핸드폰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
“여자는?”
“객실에 안내했어.”

병원에 전화를 하기 위해선 중앙 로비에 설치 된 전화기를 써야했다.
나는 카운터를 지나, 로비로 가다 발이 멈춰서고 말았다. 다시 성민에게 돌아가 물었다.

“너 핸드폰.”

낮에 산산조각 났던 핸드폰을 그 사이 수리 해 왔을 리는 없었다.
핸드폰을 사려면 뭍까지 나가야만 한다.

나는 핸드폰은 갖고 있지도 않기에 성민이 손의 핸드폰은 나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 손님한테 잠깐 빌렸어.”
“빌려?”

달려가 103호 실의 문을 열었다. 노크도 없이 열어젖힌 문.
안에서 놀라는 여자의 비명은 손톱만큼도 들려오지 않았다.

목을 매다는 용도로 쓰세요, 하고 설치해 둔 것 같은 대들보.
여자는 객실 이불을 찢어 엮은 듯 보이는 지저분한 줄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발버둥을 쳤건, 몸을 줄에 의지하는 동안 반동이 있었건,
그녀의 몸은 아직 흔들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슬금슬금 왼쪽으로 돌아가는 몸이 서서히 등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처참하게 넘어가 있는 좌식 소파 등받이가 아슬아슬 그녀의 발뒤꿈치에 가 닿고 있었다.

“목맨지 좀 지났어. 병원까지 다녀 온 거야? 시간이 늦었네?”

어느새 다가온 성민이 물었다. 나는 물어봐야 했다.
묻고 나서 대답을 듣기가 두려웠으나, 묻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너, 핸드폰 언제 빌린 거야.”

여자가 죽고 나서 빌린 건, 아니지. 죽은 다음에 빌려 온건 아니지?
저 여자 매달려 있는 동안 주머니에서 꺼내 온 거 아니지?

“형답지 않게 호들갑 떨지 마.”

이 섬에 사는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돌림병을 앓는다.

정신병도 전염이 되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 섬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이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사람이길 잊어버린 이 병을 뭐라고 부를까. 사이코패스?

아니, 아니다. 차라리 암이나, 종양이 더 맞는 병명만 같다.

죽을 병.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죽어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람됨으로서, 모두 죽어있는 것이다.

죽어서 산 사람처럼 걷고 말할 뿐, 우리는 그 뿐이다.

그래, 핏대를 세우는 나는 그저 위선자이다. 이 섬에서 살아온 날이 몇 해던가.
성민이의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호들갑 떨 것 없다.

어차피 우리는 이렇게 살아 온 사람들이다.

“형 전화 왔다.”
“어디서.”

성민이가 핸드폰을 내게 넘겼다.

방에서 목을 맨 여자의 핸드폰. 액정에는 ‘♡내 반쪽♡’ 이라는
글자와 목을 맨 그녀의 사진이 한 화면에 표시되었다.

내 반쪽. 청년일까? 이 천치 같은 놈이 살아서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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